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면접에서 현 정부 ‘탈원전’ 정책에 찬성하는 후보자가 떨어지고 전 정부의 원자력 규제기관의 요직에 있던 인물이 추천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이에 원자력 정책 인선이 정책 방향과 역행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임원추천위원회(위원장 제무성 현 KINS 이사장·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지난달 30일 신임 원자력안전기술원장 후보자 3인을 면접심사해 손재영 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장과 정해동 전 원자력안전기술원 가동원자력규제단장 등 2인을 최종 원장 후보자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추천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KINS 임원추천위는 이날 면접을 본 후보 가운데 박원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방사선폐기물평가실 책임연구원(박사)만 유일하게 탈락시켰다. 박 후보자는 지난 2016년 원자력학회 이슈위원장을 맡으면서 원자력 축소와 에너지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문제는 박 후보자 면접에서 나온 질의 답변이 논란이 됐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찬반을 물었을 뿐 아니라 의견을 밝혔는데도 제무성 위원장(제무성 KINS 이사장)이 계속 질문했기 때문이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이기도 한 제무성 KINS 이사장은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417명의 교수 명단에 서명한 친원전파 학자 중 한 명이다.

박 후보자는 “한 심사위원이 현 정부의 원전 정책, 에너지 전환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맞다. 다만 적용할 시기와 속도는 논의해봐야 한다’고 했더니. (임원추천위원장인) 제무성 의장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그래서 ‘선진국 사례를 보면 그렇다’고 했더니, 다시 제 의장이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고 계속 물어본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답변에 불만족하는 느낌이었느냐는 질의에 박 후보자는 “예, 분명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가졌다. 질문의 분명한 뉘앙스가 있다. 다시 물어보는 느낌, ‘왜 그렇게 생각하지’ 하고 다시 물어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 녹색연합 등 3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14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자력연의 방사성 폐기물 무단 폐기와 관련, 원자력연구원장과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을 각각 원자력안전법 위반,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연합뉴스
▲ 녹색연합 등 3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14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원자력연의 방사성 폐기물 무단 폐기와 관련, 원자력연구원장과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을 각각 원자력안전법 위반,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진=연합뉴스

박 후보자는 자신이 이력서나 경영계획서에 쓰지도 않았는데도 이를 한 심사위원이 거론했다고도 전했다. 박 후보자는 “원자력안전기술원 당연직 이사이자 심사위원이던 손명선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전정책국장이 질문하면서 ‘파이로 프로세싱’을 거론했는데, 나는 이력서나 경력증명서나 직무계획서, 경영계획서에 ‘파이로 프로세싱’이라는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손 국장은 나에게 ‘원자력학회 이슈위원장으로 사회적 비용, 파이로 프로세싱 부분에서 많은 얘기를 국회에서 하셨는데, 그런 입장이면 균형적으로 어떻게 기술원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며 “나는 ‘그동안 그런 (취지의) 기고나 의견을 내면서도 분명히 개인의견이라는 말을 발표문에 명시했다, 원자력은 항상 첨예한 이해를 갖기 때문에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의견과 저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학회 회원에게 들려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목적’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박 후보자는 “경영계획서에 ‘후행핵(연료)주기’를 넣었으나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후행핵주기와 파이로프로세싱이 일치하는 말은 아니다. 후행핵주기(후행핵연료주기)는 핵연료가 원자로 내에서 연소되고 난 뒤 원자로 밖으로 인출돼 최종 처분되기까지의 ‘주기’를 뜻한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원자력발전을 하고난 뒤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해 다시 원자력발전의 핵연료로 이용하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박원재 후보자는 자신이 바라보는 원자력정책 방향을 “현재 (원자력학계나 업계가) 주도하는 방향과 다르다”라며 “저는 균형도 필요하고, (기존 견해와) 다른 의견도 합리적으로 보고 판단할 시각을 원자력계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원자력학회에서 이슈위원장도 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일방적 입장이 많이 나왔다. 다양한 의견이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원자력안전기술원 임원추천위원회 측은 탈원전 찬반을 묻는 질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손명선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전정책국장은 11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원칙적으로 임원추천위에서 논의된 것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한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원전 찬반을 질문했다기 보다는 면접을 본 후보자 모두에게 ‘새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KINS 원장 으로서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를 질문했다”고 말했다.

손 국장은 “탈락자가 느낀 부분에 대해서까지 (심사위원의 입장을)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사장이 탈원전 반대성향의 학자로서 입장을 달리하는 박 후보를 배제하고 친원전 성향의 인사를 추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손 국장은 “그런 것에 일일이 해명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중립성, 독립성을 중시하는 기관이기에 여기서 근무하는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제무성 이사장은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 SNS메신저 등을 통해 질의했으나 12일 오후 6시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면 원자력안전기술원장 후보 2배수 추천자에 포함된 손재영 현 원자력통제기술원장은 이명박정부와 박근혜 정부 당시(2011년 10월~2013년 5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내는 등 지난 정부의 원자력규제정책 실무책임자였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주변에서는 손 후보자의 원장 선임이 유력하다고 알려졌다.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로고.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로고.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11일 “박원재 박사는 원자력학회 이슈위원장을 맡으면서 원자력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를 주도했던 분으로, 면접에서 박 후보자에게 질문을 저렇게 하고, 결국 박 후보자를 떨어뜨린 것은 자신들과 견해를 달리한 사람을 떨어뜨리고자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박 후보자는 KINS 내에 신망도 있고, 원만한 성격에다가 원자력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기 때문에 재야와도 관계가 좋다.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떨어뜨린 것은 손재영 후보를 선임하기 위해 처음부터 떨어뜨린 것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전 정책 방향을 바꾸려면 인사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사단법인 원자력 안전과 미래 소속 인사들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특정인을 밀고, 배제하려고 KINS 이사장과 원안위 안전국장이 의도적으로 임추위 회의를 주도한 것은 아닌지, 공정성 여부에 객관적 조사가 필요하다. 편파적으로 원자력 안전 전문 기관장 임명절차가 진행되는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 원자력 안전과 미래 이정윤 대표가 지난 2015년 5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공개된 월성 1호기의 주기적안전성검토보고서 검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 원자력 안전과 미래 이정윤 대표가 지난 2015년 5월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공개된 월성 1호기의 주기적안전성검토보고서 검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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