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여론조작 논란이 새 국면을 맞았다. 한겨레는 지난 5일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매크로를 통한 댓글 여론 조작을 해온 정황을 폭로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관계자는 2004~2012년까지 매크로를 활용해 댓글을 달거나 공감 수를 조작하는 행위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다른 관계자는 2014년 지방선거 때도 매크로를 돌렸다고 밝혔다. 이들은 매크로 작업 지시를 주고 받는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도 공개했다.

한겨레의 단독보도는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됐다. 7일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중앙지검에 한나라당·새누리당 매크로 여론조작 고발장을 제출했다. 8일 한겨레가 아닌 다른 언론들도 사안을 다뤘다. “여 드루킹 공세 반격... 한국당 겨냥 매크로 조작 고발”(한국일보) “한나라 새누리당 매크로 의혹 민주당 '헌법 훼손 행위' 고발”(경향신문) 등의 기사가 나왔다.

▲ 8일 경향신문 보도.
▲ 8일 경향신문 12면

그러나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고발 소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조선일보가 민주당의 검찰 고발 소식을 다뤘지만. “여 ‘드루킹 특검서 함께 수사하자’ 야 ‘김경수 면죄부용 물타기’” 부제에서 보 듯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반론이 큰 비중으로 담겼다.

대신 8일 조중동에 대서특필된 건 ‘드루킹 특검’이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와 달리 조중동은 1면에 ‘허익범 드루킹 특검’ 출범을 다뤘다. 

이들 보수신문의 사설 역시 여권이 연루된 ‘드루킹’에만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드루킹 특검, 최악 여건 넘어 대선 여론조작 전모 밝히길” 사설을 통해 “검경의 부실 수사와 청와대의 은폐의혹도 특검이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역시 “난산 끝에 출범한 특검... 드루킹 게이트 끝까지 파헤쳐라” 사설을 내고 “특검은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들이라고 해서 수사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좌고우면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똑같이 허익범 특검을 다룬 다른 신문의 사설 내용은 달랐다. “허익범 특검은 성역 없는 수사를, 검은 새누리당 의혹 밝혀야”(한국일보) “여론조작 세력, 여야 가릴 것 없이 발본색원하라”(국민일보)처럼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매크로 조작 의혹 역시 진상을 규명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8일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국민일보, 한국일보의 사설.
▲ 8일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국민일보, 한국일보의 사설.

경쟁 언론사의 단독보도를 그대로 받아쓰는 건 언론 입장에서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언론사들은 보완 취재를 하거나, 수사기관이나 정치권 등의 입장이 나오면 그 내용을 인용하며 이슈를 다룬다. 5일 한겨레의 단독 보도가 나온 이후 지난 6일과 7일 다수 신문이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쟁점이 되고 더불어민주당이 고발하고 나서면서 다루기 수월해진 이슈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언론은 어떻게 봐야 할까.

더불어민주당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 특검으로 이번 매크로 여론조작이 지지자들의 자발적 활동을 넘어 김경수 전 의원을 비롯해 정부여당 관계자들이 연루됐다면 마땅히 비판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여당에서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반면 한나라당, 새누리당 매크로 의혹은 지지자가 아닌 당이 직접 벌인 일이다. 드루킹 논란을 정권 차원의 게이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론조작으로 규정하고 기사를 쏟아낸 언론은 최소한 같은 잣대로 사안을 바라봐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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