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으로 끝나고, 평화협정 체결까지 가려면 북한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긴밀한 대화가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한 북미 중재자 역할이 핵심이다. 그런데 좀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가 등장했다.

남북관계가 꼬인 시발점은 16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이다. 정부가 제안해 북한이 수용했지만 15시간 만에 북한은 회담 취소를 전격 통보했다. 한미 공군연합훈련에 참가한 핵전략 자산 무기와 태영호 전 주영북한대사 때문이라고 명시했다.

핵전략 자산 무기의 한반도 군사 훈련 참가를 놓고 북한은 판문점 선언을 언급했다. 판문점 선언 2조 1항은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고 돼 있다. 북이 “판문점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라는 표현을 쓰며 분노한 것은 핵전략 자산의 훈련 참가를 곧 ‘적대행위’로 봤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이 같은 문제를 예측하지 못한 건 실책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 공군연합훈련이 연례적인 방어훈련이라며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하기로 하면서도 문제가 된 장거리 전략폭격기 B52의 전개 훈련은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토퍼 로건 미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도 “당초 (B52는)맥스선더(훈련)에 참가할 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양국 입장에선 한미 군사훈련 문제는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

오히려 문제가 커지는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하며 북한이 정권 유지를 위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태영호 전 주영공사이다. 북한은 체제 비방 행위를 ‘적대행위’라고 보고 남한 당국의 조치가 전무하다고 비판한다. 공교롭게도 태영호 전 공사의 출판기념회가 국회에서 열리자 언론이 주목하며 보도가 쏟아졌다.

또 중국 류경식당의 북한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은 꼬일 대로 꼬였다. 기획탈북이라는 폭로와 함께 당사자의 자유 의사가 아니었다는 당사자 증언(jtbc 보도)이 나오면서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유인 납치라는 주장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북한은 종업원들 송환을 주장해왔다. 지난 1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종업원의 송환을 전제조건으로 내걸면서 무산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우리 남쪽에 자유 의사로 와서 정착한 사람이어서 북측에서 얘기하는 것은 검토할 수 없다고 답했다”며 송환 요구를 일축했다.

▲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사진=청와대
▲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사진=청와대

집단탈북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지만 지난 10일 jtbc 보도가 나오면서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급부상했다. 집단탈북사건을 풀지 못하면 오는 8월 남북이 합의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합의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이 8월에 이루어질 예정”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도 응당 가셔야지만 정치에 악용하려고 꾸며진 집단 유인 납치 사건의 피해자들도 가족이 기다리는 조국의 품에 당장 돌려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도 “남조선 당국은 박근혜 정권이 감행한 전대미문의 반인륜적 만행을 인정하고 사건 관련자들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우리 여성공민들을 지체 없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써 북남관계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재 정부 입장은 여종업원들은 자유의사로 와서 한국에 정착해서 지내기에 대한민국 국민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일부의 해명도 조금씩 바뀌면서 사안을 축소하려는데 급급하다는 인상을 준다. 통일부는 여종업원들을 직접 면담하지 못했다지만 지난 18일 지배인 허강일씨와 여종업원 1명은 지난달 초 통일부 담당자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서 이들은 기획 탈북 의혹과 관련한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탈북이 사실로 드러나면 국제사회에서도 큰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제출한 북한인권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특별보고관은 중국 출국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서로 상반된 설명을 확보했다. 그중엔 종업원 중 일부는 집단 탈출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진술이 있다”고 기술돼 있다. 지배인 허강일씨에게 속아 남으로 온 경우라면 국제법상 ‘납치’에 해당한다. 국제사회 기준으로 ‘원상복귀’ 의무가 있다. 다만 현 시점에서 북송을 원하지 않은 사람이 나오면 인도주의적 조치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태영호 전 공사의 경우 범법(탈북 원인) 사실이 예전부터 얘기가 됐는데 국회에서 출판기념회 연설을 하고, 집단 탈북 사건도 지배인이 기획탈북이라고 실토했는데 통일부도 자유의사로 왔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며 “판문점 선언은 평화의 시작이고 정상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한 행태를 보인 남측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정 대표는 “비핵화 문제는 쏟아져 나오는데 정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대북 적대시 철회 문제들이 거의 언급이 없는 상황에서 최대 압박과 같은 말이 나오고 궁지에 몰리면서 북한이 쌓여있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같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 핵심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위협 요소 등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논의와 발표가 한미정상회담에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 우리 취재진이 가지 못할 경우 북이 ‘통미봉남’ 정책을 쓴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금이 가면서 대북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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