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는 경찰 추산 1만2000여명의 여성 참가자들이 참석했다. 국내에서 여성 관련 단일 의제로 열린 시위 중 사상 최대 규모 집회다.

해당 시위의 표면적인 주장은 피해자가 남성인 ‘홍익대 누드 몰카’ 사건에서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수사가 속전속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시위에서 나온 구호는 “남 피해자 쾌속 수사, 여 피해자 수사 거부”, “공평하게 수사하라”, “동일범죄 동일처벌” 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모인 이유는 여성의 일상적 공포를 적극 보호해주지 못한 국가권력을 향한 저항이었다. 

▲ 21일 경향신문 8면.
▲ 21일 경향신문 8면.
토요일 저녁까지 행진이 진행된 해당 시위를 21일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우선 21일 아침에 발행하는 전국단위 주요 종합 일간지 중 해당 시위를 아예 다루지 않은 일간지는 서울신문과 세계일보다. 서울신문은 21일 신문에 해당 시위를 다루지 않았고, 세계일보는 사회면에 ‘여성 모델 성추행 의혹 수사 속도’라는 기사 말미에 한 단락으로 해당 시위를 소개하는데 그쳤다.

‘불법 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1면으로 다룬 것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한겨레는 1면에 ‘여성들은 왜 몰카 수사에 분노하나’라는 기사로 여성들이 모인 ‘이유’를 짚었다. 2면에도 이어진다. 특히 한겨레는 이 시위에 사상 최대 규모가 모인 이유를 ‘몰카를 둘러싸고 공유된 공포 정서와 반감’이라고 짚었다.

그래서 한겨레의 2면 기사 제목은 “몰카 제대로 처벌했다면 ‘편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던 이 문제를 장기간 방치해온 구조에 대한 반감”이 여성들을 시위에 나오게 했다고 강조했다.

▲ 21일 한겨레 2면.
▲ 21일 한겨레 2면.
한겨레는 통계를 사용할 때도 몰카 피해자 중에 여성이 대부분임을 부각했다. 한겨레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몰카 등 불법촬영 범죄는 2010년 1134건에서 2015년 7623건으로 7배나 늘었다. 불법촬영 범죄를 당한 피해자 2만6654명 가운데 여성은 84%, 남성은 2.3%, 나머지 13.7%는 각도 등의 문제로 성별이 판명되지 않는 경우였다. 여성 피해자가 대부분인 셈”이라고 썼다.

반면 동아일보 12면 ‘생물학적 여성만 오라, 분노의 붉은 옷 1만여명 도심 메웠다’ 기사는 시위현장을 전하면서도 경찰 입장, 즉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통계를 사용했다.

▲ 21일 동아일보 12면.
▲ 21일 동아일보 12면.
동아일보는 “홍대 몰카 사건은 엄연한 범죄”라며 “경찰은 범인 안씨가 몰카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해 사안이 중대하고, 몰카를 찍은 휴대전화를 한강에 버려 증거를 인멸했기에 구속한 것이지 여성인 것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수사 9일 만에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누드 크로키 수업에 있던 사람이 20명뿐이라 범인을 특정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했다”고 경찰 입장을 전했다.

통계 사용에서도 ‘편파 수사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경찰청에 따르면 2012∼2018년 5월 남성 몰카범의 2.6%(2만2155명 중 572명)가 구속된 반면 여성 몰카범은 0.9%(580명 중 5명)가 구속됐다”며 “피해자가 남자인 사건은 가해자의 0.2%(876명 중 2명)가 구속된 반면 피해자가 여자면 가해자의 1.8%(2만9194명 중 538명)가 구속됐다”고 통계를 적었다.

이렇다면 왜 여성들은 1만2000명이나 모인 것일까. 이를 잘 설명해준 기사는 중앙일보에서 나왔다. 중앙일보는 해당 시위를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을 취해한 기자의 ‘취재일기’로 보도했다.

중앙일보 홍상지 기자의 ‘1만여명 여성들이 거리로 나간 이유’는 “사실 경찰이 불법촬영 사건을 성별에 따라 ‘편파 수사’ 했다는 주장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시위에는 단순히 ‘편파 수사냐, 아니냐’를 넘어서는 함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 21일 중앙일보 25면.
▲ 21일 중앙일보 25면.
해당 기사는 “‘남자무죄 여자유죄’ 등 과장된 구호 속에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법촬영에 대한 공포, 수사기관의 미온적 태도 등에 대한 울분이 뒤섞여 있다”며 “‘더 센 증거를 찾아와라’, ‘이걸론 수사가 어렵다’고 채근하는 수사관들과 더딘 수사 속도는 불법촬영 피해 여성들이 고소 단계에서 흔히 겪는 2차 피해”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여성들의 대규모 거리 진출 이면에는 일상의 공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수사기관이 제 역할을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를 “이날 일부 남성들은 시위 장소로 찾아와 참가 여성들의 얼굴을 찍으려다 수차례 제지당했다”며 “불법촬영 규탄시위에서조차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참가해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마무리했다.

▲ 21일 한국일보 .
▲ 21일 한국일보 12면.
한국일보는 해당 시위 기사를 ‘남녀갈등’으로 부각했다. 한국일보 12면 기사 ‘몰카남에 황산테러할 것, 극단 치닫는 성추행 편파수사 갈등’ 기사는 ‘워마드’에 올라온 “몰카남에게 황산 테러할 것”이라는 게시물을 기사 첫머리로 뽑았다. 이 게시물은 17일 디시인사이드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에 페미들 염산 테러할 거다”라는 게시물이 먼저 올라온 것, 19일 ‘몰카 편파 수사’ 시위에 염산 테러를 하겠다는 게시물에 대한 반응이었음에도 한국일보 기사는 ‘워마드’의 게시물을 부각했다.

한국일보는 시위기사를 다루며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팅모델 성추행 사건 등으로 촉발된 남녀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남녀갈등을 부각했다.

그밖에 해당 시위기사를 현장기사로 처리한 언론은 경향신문(8면), 국민일보(11면), 조선일보(12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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