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옹졸한 처사입니다. 저 세상에서 요즘 몹시 마음이 괴로울 박정희 전 대통령님,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 지난해 7월13일, 전원책 전 TV조선 앵커가 TV조선 종합뉴스9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이 취소된 점을 지적한 ‘앵커 멘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실질적인 제재 효과가 없는 행정지도인 ‘권고’를 내렸다.

“떼놈이 지금 우리 보고 절 하라는거 아닙니까?” 차명진 전 의원이 지난해 12월15일 방영된 MBN ‘뉴스와이드’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를 논하던 중 중국인 비하 발언이 여과되지 않고 방송에 나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제 없음’이라고 결론 냈다.

“시민들의 분노를 알리고 싶었다.”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실에서 김언경 사무처장을 만났다. 지금까지 ‘오보’ ‘막말’ ‘편파’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넣어온 민언련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시민 참여 심의’를 준비하고 있다.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진=민언련 제공.
▲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진=민언련 제공.

민언련은 오는 23일 저녁 국민TV에서 포럼을 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방송심의위원회’ 활동을 시작한다. 이날 박근혜 정부 때인 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한 안건을 ‘재심의’한다. 강제력 없는 ‘권고’제재를 받은 MBC 박상후 당시 전국부장의 세월호 유가족 모욕 뉴스, 장성민 당시 앵커가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켜 ‘종북 숙주’라고 지칭했음에도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은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동성키스 장면으로 법정제재를 받은 JTBC ‘선암여고 탐정단’ 등이다.

이후부터는 아직 심의를 받지 않은 최근 방송 내용을 일주일에 1건 이상씩 온라인 설문을 통해 시민들이 심의한다. 설문에는 징계 기준과 해당 방송이 심의 규정의 어느 조항에 위반되는지 설명하면서 시민들의 판단을 도울 계획이다. 김언경 처장은 “방통심의위가 논란이 되는 방송은 비교적 징계를 잘 하는 편이다.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보다 집중적으로 심의에 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구성 후 100일이 지났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민주언론시민엽합은 여전히 심의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언경 처장은 “양성평등적인 면은 개선됐다. 방송심의소위원회 5명 가운데 2명이 여성이기도 하고, 연령대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그러나 종편 심의에 있어서 지난 심의위 때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많은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9명 중 6명을 차지하는 방통심의위는 정부여당을 비판한 방송에 유독 강한 제재를 내리고, 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방송은 솜방망이 심의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문재인 정부 때 들어선 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치 심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지금까지 심의 방식을 종합해보면 △진행자와 달리 패널이 한 발언은 다소 편파적이더라도 허용하고 △문제적 내용이 나왔더라도 이후 사과, 재발방지 교육 등의 사후대처를 할 경우 정상참작하고 △처음 심의에 걸린 방송은 비교적 낮은 수위로 제재하는 식으로 심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기조 속에서 방통심의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이영학 아내의 자살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뉴스에 반복적으로 내보낸 TV조선에 ‘법정제재’가 아닌 강제력 없는 권고를 전원합의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김언경 처장은 “왜 이게 고작 ‘권고’인가. 이런 방송을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 건 국민들에게 가는 피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걸 용인하면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보내는 방송을 멈출 수 없고, 시청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 

TV조선의 자살장면 방송 심의에는 TV조선이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등 사후조치를 한 점이 감안됐다. 김언경 처장은 이 같은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송사의 사후조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다. 이와 별개로 심의는 방송에서 문제된 점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후조치를 보고 죄를 탕감해주는 건 우스꽝스럽다. 이러면 방송사는 개선하는 척만 하고 같은 문제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패널의 발언이 다소 편향적이더라도 용인하는 것과 처음 심의를 받는 프로그램에 비교적 낮은 제재를 하는 경우 시청자의 ‘시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종편 패널들은 어쩌다 인터뷰 한 번 한 분들이 아니라 ‘방송인’으로서 캐릭터가 더 강한 단골패널이 많다. 이런 분들에게는 조금 더 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패널이 문제 있는 걸 알면서도 계속 쓰는 문제가 고쳐진다. 처음 심의에 걸린 프로그램이라고 봐주는 건 이해를 못하겠다. 그 방송사는 같은 문제를 반복해왔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처음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문제적인 내용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 회의. 왼쪽부터 심영섭 위원, 박상수 위원, 허미숙 소위원장, 전광삼 상임위원, 윤정주 위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소위 회의. 왼쪽부터 심영섭 위원, 박상수 위원, 허미숙 소위원장, 전광삼 상임위원, 윤정주 위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종편에 대한 낮은 수위의 제재가 유지되는 배경에는 여야 위원 간 합의를 중시하는 태도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 대부분의 안건이 전원합의로 의결됐다. 김언경 처장은 “합의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방송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면 흥정할 게 아니라 표결을 해 엄중한 결과가 나오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원칙에 따른 엄중처벌’. 김언경 처장은 심의로 인한 실질적 개선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한 심의가 언론자유 탄압이라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강한 조치가 나와야 방송이 나아진다. 방송사 관계자 말로는 성폭력 보도를 하면 시청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관련 보도를 1건으로 할걸 2건으로 늘린다고 한다. 심의에 걸려서 받는 불이익이 시청률을 올려 얻는 이익보다 크다는 걸 방송사가 인지하게 해야 한다. 그런 메시지를 주라고 심의제도가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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