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성 조애너 데마펠리스는 돈 벌려고 쿠웨이트 부잣집에 가사도우미로 들어갔다. 조애너는 집주인 부부에게 살해당한 뒤 1년이 지나 냉장고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석 달 전 일이다. 화가 난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자국 노동자 25만 명에게 쿠웨이트 철수를 명령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귀국 비용까지 정부가 대겠다고 했다.

필리핀 정부는 최근 정부 요원을 쿠웨이트로 급파했다. 남의 나라 쿠웨이트에서 집주인의 학대를 신고한 자국 가사도우미 26명을 필리핀 대사관으로 탈출시켰다. 쿠웨이트는 주권 침해라며 발끈했다. 쿠웨이트 정부도 필리핀 대사를 추방하는 맞불을 놨다. 외교전쟁으로 비화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국제면(17면)에 ‘가사 도우미가 부른 외교전쟁’이란 제목의 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포퓰리스트인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앞으로 쿠웨이트엔 영원히 노동자 송출을 금하겠다”고 했다.

세계엔 6700만 명의 가사도우미가 일한다. 80%는 여성이다. 20%는 이주 노동자다. 한국에도 30만 명의 가사도우미가 있다. 한국의 가사도우미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 받는다. 당연히 산재도 실업급여도 못 받는다. 국제노동기구와 유엔은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이 조항을 고치라고 권고했다.

▲ 가사 노동. ⓒ gettyimagesbank
▲ 가사 노동. ⓒ gettyimagesbank
국제노동기구는 2011년 가사노동자 보호협약을 채택했지만 우리 정부는 7년째 비준을 미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월 정부에 가사노동자의 근로기준법 적용을 권고했다. 유엔 사회권 위원회는 지난해 10월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정부에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라”고 권고했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지난해 7월 30만 명의 유령에게 공민권을 주려고 ‘가사노동자 존중법’을 발의했지만, 또 다른 한 국회의원은 급식노동자를 밥하는 아줌마라고 불렀다.

조양호 일가가 필리핀 가정부를 불법고용하고 갑질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면 대한항공 필리핀 지점장을 통해 다시 데려와 도망가지 못하도록 여권을 빼앗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SBS가 지난 12일 이렇게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이주노동자에게 여권을 빼앗는 걸 엄히 금한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조 회장 일가가 외국인 가사 도우미를 현지에서 채용한 뒤 대한항공에 연수생으로 파견해 정작 자기 집 도우미로 일을 시켰는지 조사 중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테르테 대통령 귀에 이런 얘기가 들어가면 한국도 필리핀 가사도우미 송출금지국이 될지도 모른다. 강남 귀부인들에겐 청천벽력이다.

▲ 지난 5월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을 요구하는 첫 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5월4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을 요구하는 첫 번째 촛불집회를 열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씨 일가 퇴진을 위한 두 번의 촛불집회를 열었다. 혹자는 민간 재벌회사 오너를 어떻게 그만두라고 하겠냐며 도가 지나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가 법까지 제정해 만든 공기업으로 출발했다. 산업은행이 KAL 주식 96% 이상을 갖고 있었다.

공기업 대한항공의 한진 인수가 기정사실로 굳어 갈 무렵 경향신문은 1968년 11월 18일 2면에 ‘KAL 민영화 문제점’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에서 “신흥재벌 한진은 정부가 KAL에 불입(투자)한 총자본금 15억원의 51%에 해당하는 8억원으로 27억원짜리 기업체를 인수”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것도 10년 분할상환이란 파격적인 조건이라 누가 봐도 특혜였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 끝에 “한진의 KAL 인수는 ‘항공정책의 일대패배’”라고 했다.

50년이 지난 오늘 그 말이 딱 맞다. 한진상사에 KAL을 넘긴 건 항공정책의 일대 패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