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핀란드의 노키아 부회장은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운전하다 약 1억 6천만원, 스위스의 재벌은 과속으로 약 3억 2천만원의 범칙금을 냈다. 범칙금의 목적은 세금 확보가 아니라 범칙금으로 교통 위반을 줄이자는 데 있다. 그렇다면 소득에 비례해 범칙금을 매겨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1톤 트럭 행상이 과속 했을 때 똑같이 4만원의 범칙금을 낸다. 트럭 행상에겐 큰 부담이라 교통범규 준수율이 오르겠지만, 이 부회장에겐 그런 유인 효과가 없다.

2002년 핀란드의 ‘노키아’ 전 세계 휴대폰 판매 1위를 달리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당시 40대 후반인 노키아의 ‘안시 반요키’ 부회장은 오토바이 스피드광이었다. 반요키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제한 속력 50킬로미터인 도로를 75킬로미터로 달리다가 단속에 걸렸다. 당연히 과속 스티커를 받았다. 그런데 단 한 번 과속하다 걸려서 그가 내야 했던 범칙금은 1억 3천만 원이었다. 핀란드는 범칙금과 벌금은 재산과 수입에 비례해서 부과한다. 한 달에 수십 억원을 버는 재벌도 과속하다가 걸리면, 한 달에 150만원 버는 최저임금 노동자와 같이 범칙금 4만원을 내는 우리 눈에는 많이 이상하다. 어느 쪽이 더 공정한가.

21세기 양극화가 무덤 속 마르크스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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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부회장의 억대 범칙금 기사를 유일하게 종이지면에 썼던 이가 당시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부 차장이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채인택 기자는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로 한 길을 걷고 있다. 채 기자가 오늘자(5월 3일) 중앙일보 14면에 한면을 털어 <21세기 양극화가 무덤 속 마르크스를 깨웠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것도 오는 5월 5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용도 폐기된 마르크스주의를 25년이 지난 오늘 다시 소환한 이유는 뭘까. 채 기자는 “소외된 노동자에 주목했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실업과 공항이 마르크스가 본 자본주의의 폐해라면 오늘 자본주의는 양극화와 금융위기, 갑질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을 썼던 선진 자본주의 나라 영국에선 당시 10~18살 어린이와 청소년이 하루 12시간씩 중노동하면서 힘겹게 자본주의를 떠받쳤다. 채 기자는 “사람이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마르크스를 소환했다.

<자본>은 1권부터 수학공식 같은 난해한 문장에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스토리텔링 구조 때문에 동양권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게 꽤나 딱딱한 책이다. 그러나 제3권쯤 가면 워킹푸어에 대한 탐사보도 기사처럼 술술 읽히는 조지 오엘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도 자주 나온다.

다만 무덤 속 마르크스를 소환하면서까지 양극화에 주목하는 기사를 실은 오늘자 중앙일보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에 1면과 3면, 경제 3면까지 동원해 주주 자본주의 방어에 나선 점은 아쉽다. 1,3면은 그래도 논란을 양비론으로 다뤘지만, 경제3면 <회계처리 의혹, 대장주 약세 겹쳐... 울고 싶은 바이오주>란 제목의 기사는 과유불급이다.

신문 1면과 사설로 ‘교과서 논란’ 재연

거의 모든 일간신문이 교육부의 새 중고교 교과서 집필기준 발표안을 1면과 사설로 다뤘다. 신문마다 진보와 보수 두 갈래로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논란의 중심이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교과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뺀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데 이어, 사설에서도 <교과서에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지운다니>라고 불편해 했다. 조선일보는 2면도 전면을 털어 <좌파학자들 ‘유엔 결의 오역’ 되풀이>라는 제목으로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제목을 <자유민주주의서 굳이 ‘자유’ 빼는 교과서 기준, 의도가 뭔가>라고 달아 문재인 정부에게 의도를 물었다. 보수 신문들은 한결같이 참여정부의 ‘편향 교과서’로 되돌아 갔다고 단정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9면 해설기사에서 ‘국정화 왜곡 바로잡기’로 해석했다. 한겨레는 달라진 집필기준을 좀 더 세밀하게 ‘북한 인권’ 용어는 빠지고 ‘정경유착’, ‘노동운동’ 같은 용어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2면 머리기사에서 <소홀했던 세계사 교육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경향신문은 논란의 중심이 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에 대해 “정권 따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한 점을 지적해 칭찬 일색만은 아니었다.

‘문정인 때리기’ 판 펴는 보수신문

보수신문은 한결같이 문정인 대통령 특보 때리기에 나섰다. 이 문제를 가장 강조하고 나선 건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1면에 <비핵화 발도 때기 전 / 돌출한 미군 철수론>이란 제목의 머리기사에 이어 사설에선 <문정인의 주한 미군 관련 망언, 경고로는 부족하다>며 청와대의 해임을 요구했다.

문 특보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한 중앙일보는 이틀전 5월 1일자에 두 면을 털어 남북 정상회담 평가 기사를 썼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는 이 기사에서 “비핵화가 된다면 한미동맹에 대한 재검토, 조정 내지 재구성은 불가피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현재와 똑같이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나 지금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로 발언했다. 이 말이 문 특보의 ‘망언’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독자들이 판단해 줘야 한다.

중앙일보는 문 교수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해 다른 보수신문보다 한 발 더 나갔다. 반면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을 <文대통령 “주한미군, 평화협정 무관”>으로 달아 문 특보의 발언을 경고하고 나선 정부 입장에 비중을 뒀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주한미군 철수 카드 안 돼”라고 못 박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문 특보의 발언을 망언으로 몰아붙이며 정부와 문 특보가 같은 속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반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 반대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도라 강도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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