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 승무원 A씨는 비행마다 발생하는 ‘쇼트(정산오차금액·Shortage이 준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처음엔 1000원, 2000원 씩 주머니에서 나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새 수십 만원 수준으로 누적된 것이다. 몇 달 전 국제선 비행에선 20만 원 짜리 면도기가 분실돼 팀원끼리 갹출해서 손해를 메꿨다. A씨는 ‘왜 이 비용이 승무원 지갑에서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 10년차 승무원 B씨도 10년 간 같은 생각을 했다. B씨는 입사때부터 기내 면세품 판매 후 발생한 정산 오차 금액을 자비로 메꿔왔다. B씨의 선배는 훨씬 전부터 이 관행이 지속돼왔다고 말했다. B씨는 2012년 X월X일 회사로부터 받은 ‘변제 촉구’ 메일을 꺼냈다. 하루 동안 비행기 15대에서 107만 원 정산오차가 났다. 모두 승무원들이 부담했다. 한 달치, 일 년치를 계산하면 규모는 천 만원대로 불어난다. (취재 사례 재구성)

대한항공 오너 일가 및 경영진의 비리·부당 대우 등을 제보하는 익명대화방에서 ‘쇼트 강제 대납’ 관행이 거센 질타를 받고 있다. 면세품 판매는 승무원의 부수 업무인데다 업무상 책임이 아닌 비용까지 회사가 직원에게 일괄적으로 대납하게 한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회사가 사업 리스크를 노동자 측에 전적으로 부담시켜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쇼트’는 영어 Shortage가 관행어가 된 말로 기내 면세품 판매비 정산 후 발생하는 오차를 말한다.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에 따르면 쇼트가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가지다. 물건 A를 주고 물건 B 가격을 찍거나 수납과정에서 계산 착오가 있을 때가 있다. 승무원들은 이 경우 “인력이 부족해 기내 면세품을 판매할 땐 정신없이 업무를 보게 된다”며 “같은 이유로 저연차 승무원이 ‘세일즈 듀티’(기내판매 담당자)를 맡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손실도 자주 발생한다. 마지막 정산 시 5개가 남아있어야 할 화장품이 4개만 남아 있다거나 면세품이나 ‘머니백’(면세품 계산용 현금주머니)이 통째로 도난당할 경우다. 또한 승무원들은 “명확하게 파악이 안돼지만 1000원씩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며 “1000원 단위 쇼트도 승무원들이 다 메꾼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쇼트는 10번 비행시 4~5번 발생한다. 쇼트 범위는 최저 1000원 가량부터 300만 원 가량까지 발생했다. 300여 만 원의 경우 면세품 가방 안의 물품이 통째로 도난당한 때였다. 당시 비행기에 탄 승무원이 6~7명에 불과해 정산 비용이 수십 만원씩 나와 다음 비행기에 탈 승무원까지 함께 비용을 정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경우에도 승무원들이 스스로 비용을 대는 이유는 경위서·보고서 등을 쓰지 않는 관행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요인 중 하나는 ‘과부족 게시판’이다. 쇼트 금액은 승무원들이 쓰는 온라인 커뮤니티 ‘크루넷’ 과부족 게시판에 일일이 보고된다. 이 경우 저성과자로 평가돼 인사고과에 반영될 것을 우려해 담당 승무원이 즉시 변제를 할 때가 많다. 과부족 게시판엔 “입금 조치 완료 했습니다”며 게시물 삭제 요청을 하는 적힌 승무원들의 보고가 즐비하다.

승무원들에 따르면 관리자는 쇼트가 발생하자 마자 담당자에게 “비용을 변제하라”고 지시한다. B씨는 “입사할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에 당연히 우리가 내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레포트를 내도 회사가 참고하거나 반영하지 않을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게 된다”며 “어차피 승무원 귀책 사유라고 할 것이기에 (보고서를 올려도) 1주일 내에 변상을 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승무원 사이에선 이와 관련해 업무 리스크를 담당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문다는 비판이 높다. B씨는 “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업무인데 1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물고 있는 구조”라면서 “승무원의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책임이 없는 경우다 많은데, 모든 손해를 직원 주머니에서 빼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쇼트 강제 납부' 관행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익명의 대한항공 갑질·불법 비리 제보방. 사진=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캡쳐
▲ '쇼트 강제 납부' 관행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익명의 대한항공 갑질·불법 비리 제보방. 사진=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캡쳐

또한 부수적 업무 강도가 세지면서 쇼트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복수의 직원들에 따르면 면세품 판매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객실사업본부장으로 승진한 2011년 부터 강조됐다. 승무원들은 그때부터 ‘월 기내 판매 목표액’이 지정됐고 이를 못 채울 시 ‘기내판매장려수당’을 받지 못했다. 가령 2013년 11월 목표액은 1800만 달러, 하루 목표액은 6만 달러였다.

대한항공 승무원 C씨는 “면세품이 더 많이 팔릴수록 쇼트가 날까봐 불안하다”며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실수가 날 수도 있는데 모든 손해를 승무원이 메꿔야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권두섭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여는’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없지만, 승객 책임일 수도 있고 승무원의 주업무가 아닌데다 돈이 오고가는 업무의 특성상 통상 로스가 나게끔 마련”이라면서 “모든 사업 비용·리스크를 노동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구조는 잘못됐다. 이를 보조하는 수당을 지급하거나, 이익에서 몇 퍼센트씩을 떼어내 일상적 누수에 대한 보증금을 마련하는 방식이 권장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사의 경우 면세품 판매 이익에서 일정 비율씩 ‘쇼트 변제’ 명목으로 떼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나항공사 승무원 D씨는 “보고서·경위서를 작성하고 상급자를 만나는 관행이 싫어서 자비로 변제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기내판매 대금에서 일부가 지원된다”면서 “대한항공만큼 거의 모든 승무원들이 쇼트를 변제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한항공 측은 이와 관련해 “직원 개인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경우 회사가 변제하는 공식 통로가 있다”며 ‘무조건 직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항공 측은 이어 ”직원들이 진급 누락 등 개인 불이익을 우려해 절차를 따르지 않고 현장에서 알아서 자체 해결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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