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MBC가 보도한 안철수 당시 대선 후보의 ‘논문 표절 의혹’ 보도가 단순 오보가 아닌 의도적 조작보도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현원섭 MBC 기자는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MBC는 18일 “정상화위원회는 MBC 뉴스가 특정 후보와 정치인을 표적 삼아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편파 보도로서 여론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려 한 보도 행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첫 번째 활동 결과로 ‘안철수 후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보도’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둔 추석 연휴 마지막 날(2012년 10월1일)부터 총 세 차례에 걸쳐 안철수 후보의 박사학위 논문에 표절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여론 조사에서 안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오차 범위 내 우위를 보인 시점이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당시 새누리당을 출입하고 있었던 정치부 현원섭 기자다. 정상화위는 현 기자가 제보자로부터 안 후보 논문과 표절 대상 논문을 비교한 자료를 받았고, 이에 대해 몇몇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표절 여부에 대한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다고 밝혔다.

정상화위 보고서에 따르면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은 관련 보고를 받은 당일 현 기자에게 아이템 제작을 지시했다. 현 기자가 제작 준비와 반론을 구할 시간이 촉박하다며 보도 연기를 요구했으나 김장겸 부장은 ‘후속 보도에서 반론을 처리하면 된다’며 보도를 강행했다.

▲ 지난 2012년 MBC '뉴스데스크'의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상 조작됐다는 MBC 정상화위원회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쳐
▲ 지난 2012년 MBC '뉴스데스크'의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 논문 표절 의혹이 사실상 조작됐다는 MBC 정상화위원회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진=MBC 뉴스데스크 캡쳐
이날 보도 요지는 1990년 안 후보의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에 ‘볼츠만 곡선’을 유도하는 설명 부분이 2년 전 서아무개 교수 논문을 복사한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안 후보가 참여한 연구팀 논문이 서울대 대학원생 석사 논문을 베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가 인터뷰는 익명으로 담았지만 앞서 현 기자에게 표절이 아니라고 자문했던 교수들의 의견은 담기지 않았다.

실제 현 기자 등 정치부 기자들이 방송 전 취재한 인터뷰를 보면 김아무개 교수는 “(표절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오버하는 것”이라고 했고, 황아무개 교수는 “한마디로 표절은 아니다.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서 결론 도출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 과정에서 문장이나 단어의 유사성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예비 조사에서 ‘안 후보 논문은 표절이 아니’라는 결정(2012년 11월16일)을 내렸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이 보도가 공정성, 객관성, 반론 기회 제공 등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며 경고 처분(2012년 10월23일)을 내린 바 있다.

정상화위에 따르면 해당 보도는 △제보에 대한 검증 부재 △사실 확인의 오류 △공정성 외면 △취재원 보호 오용 △검증 방식 오류 등의 사유로 MBC 방송강령 및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

정상화위는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익명 처리하고 목소리까지 변조해 보도한 반면 표절이 아니라는 교수들의 인터뷰는 확보하고도 의도적으로 보도에 사용하지 않는 편파적 불공정 보도를 했다”고 지적했다.

최초 제보 내용에 대한 검증 부실도 지적됐다. 조사에 따르면 담당 기자는 2012년 9월 말 국회 복도에서 우연히 지인 소개로 취재원을 만나 표절 의혹이 정리된 문건을 받았지만 취재원 이름과 소속을 기억하지 못했고 취재원을 소개해준 지인은 사망했다.

정상화위는 “해당 보도가 2012년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대선 유력 후보에 집중된 점을 주목하고 있다”며 “평소 보도 행태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널리즘의 ABC를 지키지 않은 점으로 보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 기사를 작성한 현 기자는 사규 취업 규칙 제6조의 1(정치적 중립성), 방송강령과 방송제작가이드라인, 윤리강령 위반 등으로 인사위에 회부됐다. 이미 퇴사한 김장겸 당시 부장에 대해서는 법률 위반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는 이날 정상화위 조사 결과에 대해 “이 보도는 안 후보를 음해하고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한 보도 공작이었다”고 규정했다.

MBC본부는 “보도 직후 박근혜는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현 기자는 특파원 발령을 받았고 보도를 지시한 정치부장 김장겸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사장에 올랐다”며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오염시키고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의 흑색선전 도구로 전락시킨 중대 범죄 행위 전모를 끝까지 밝혀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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