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독일 이데올로기 등 사회주의 서적 및 북한 소설 등을 소장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던 전자도서관 운영자 이진영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김대웅 부장판사)는 11일 오후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등)으로 기소된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씨에 대해 “검사의 항소를 기각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관련 증거와 1심 판결을 살펴보면 검찰이 주장한 내용을 다시 한 번 봐도 이 사건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검찰 항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2017년 1월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진보성향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전시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 2017년 1월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진보성향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전시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노동자의 책은 2002년 설립된 전자도서관으로, 사회주의 사상, 노동운동 등 사회변혁 담론을 다룬 서적을 소장하고 이를 회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회원은 1300여 명이며 4000여 권의 서적과 3000여 권의 PDF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검찰은 이씨가 전자도서관을 운영하며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했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북한의 사상’, ‘강철서신’, ‘김일성 선집’ 등의 서적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다루거나 김일성을 다룬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이라 규정했다. ‘용해공들’, ‘1932년’ 등 북한 서적 등도 이적표현물에 포함됐다. ‘노동해방문학’은 사회주의 운동조직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간부가 썼다는 이유로 이적표현물로 분류됐다.

검찰의 기소는 당시 ‘정치적 자유를 탄압한다’는 비판을 샀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교수·학술단체는 “찬양.고무죄는 유엔 등 국제인권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폐지권고를 받아온 반민주반인권조항이라는 점을 주지해야 할 것”이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이씨 사건은 기소 전부터 ‘공안몰이’, ‘표적수사’라는 논란을 샀다. 경찰은 이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제국주의론’, ‘무엇을 할 것인가’, ‘러시아혁명사’, ‘막심고리키의 어머니’ 등 공공도서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적까지 압수해갔다.

이씨는 수감돼있던 서울구치소로부터 ‘서신검열 대상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교도관은 서신검열 대상자가 교도소·구치소에서 주고받는 편지를 제한없이 열어볼 수 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씨와 메일을 교환한 일부 관련자들의 네이버·다음·카카오톡 계정도 압수수색했다.

이씨는 6개월여 간 구속돼있다 지난해 7월20일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서울남부지법은 “일부 표현물에 이적성이 있으나 이씨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1심 재판 당시 “폭력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이 이씨의 진정한 목적”이라며 이씨에게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1심 무죄 선고 직후 항소를 제기했다.

이씨는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직후 “비록 저는 무죄로 나왔지만 지금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모순적이다. 이를 볼 때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 정권의 이중적 잣대와 기만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의 책’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은 11일 선고공판이 열리기 직전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보안법은 그 역사 자체가 수많은 노동자민주의 저항을 짓밟고 정치·사상의 자유와 노동자투쟁을 가로막았떤 이 사회 대표적인 악법”이라면서 “무고한 사람을 기소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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