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사의 한 하청업체에서 “직원을 소모품 다루듯 하느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하루 17시간’ 고강도 노동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직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소속 업체를 변경하는 강압적인 집단 사직 사태가 연이어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내부에선 잦은 업체 변경이 아시아나항공사 하청업계 관행이라며 ‘퇴직금 쌓일 시간도 없다’는 자조섞인 농담도 나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퇴직금을 자주 정산해 비용 절감을 꾀한다’는 의혹에서부터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회사를 잘게 쪼개고 있다’는 의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통상 이 같은 분사(회사 분할), 업체 변경 등의 의도로 인건비 절감, 인력 관리 편의, 노동조합 무력화 등을 지목해 왔다.

아시아나항공 지상조업 업체 ‘KA’는 지난 1월1일 전체 직원 800여 명 중 400명 가량이 속한 ‘외항기여객팀’을 자회사 ‘AH’로 일방적으로 분리시켰다. KA는 아시아나항공 및 아시아나항공사와 계약한 외국항공사의 여객 서비스를 도급받은 1차 하청업체다. 이 중 외국항공사 업무만 떼어 내 AH에 준 것이다.

▲ 2014년 6월25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여행객이 아시아나항공 창구를 방문해 항공권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014년 6월25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여행객이 아시아나항공 창구를 방문해 항공권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KA의 지분을, KA가 AH의 지분을 각각 100%씩 소유하고 있다. KA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자회사, AH는 손자회사인 셈이다.

문제는 ‘강제 이직 과정’이었다. 외항기팀 직원들은 소속 업체가 변경되기 불과 2~3일 전 관련 사실을 통보받았다. 회사가 AH로의 이동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시간은 없었다. 새 업체 대표이사와의 간담회는 이미 이직이 결정된 후인 1월 4~5일 경에 열렸다.

외항기팀엔 불과 한 달 전인 12월 초에 입사한 신입직원이 많았다. 이들은 하루 전인 12월31일에 이 사실을 통보받았다. 복수의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한 달 전에 KA와 근로계약서를 썼는데 내가 왜 다른 회사로 가야 하느냐” “회사가 고용계약 약속을 안지킨 것이 아니냐” “설립 준비는 미리 했을 텐데 왜 미리 말을 안해줬느냐” 등의 분통을 터뜨렸다.

KA는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AH와 고용계약을 다시 맺으라고 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과정은 강압적으로 이뤄졌다. 12월28일 직원들에게 AH 설립 통보 메일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인 12월29일 “첫번째 작업은 사직서 작성이니 1월3일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통지를 보낸 식이다.

직원들은 사직서, 재직증명서, 근로계약서 등을 최대한 늦게 내는 것으로 반발심을 표현했다. 사측은 “아무도 마감기한을 지키지 않았다”며 “연장 기간까지 지키지 않으면 휴일 지정 신청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했다. 강제 이직 후 2주 가량이 지났을 무렵, 직원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둘씩 사직서를 제출했다.

▲ 2017년 ○월 입사한 한 KA 직원은 사직서를 작성하지 않고 버티다 업무 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2주 가량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일자는 2018년 1월1일로 맞췄다.
▲ 2017년 ○월 입사한 한 KA 직원은 사직서를 작성하지 않고 버티다 업무 상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2주 가량 후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제출일자는 2018년 1월1일로 맞췄다.
직원들은 적잖이 동요했다. KA 직원 B씨는 일부 직원들이 대표이사와의 간담회에서 ‘퇴직금은 어떻게 되냐’ ‘은행에서 대출받는 데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B씨는 “퇴직금을 중간에 강제로 정산받아야 했다”며 “입사한 지 5개월 된 직원은 당연히 퇴직금을 못받고 신규로 입사한 꼴이었다”고 비판했다.

분리 당시 회사는 ‘근무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회사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B씨는 “이번에 오른 최저시급만큼 급여가 올랐고 ‘국내선 항공권 왕복 1매’를 제공해줬다”며 “그 외엔 대부분 그대로”라고 밝혔다.

8년 넘게 KA에서 일한 한 직원 C씨는 최근 5년 간 퇴직금만 두 번 정산했다. 모두 소속 업체가 변하면서다. C씨는 8년 넘게 같은 곳에서 동일한 업무를 봤지만 업체는 네 차례 변했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 직원들에 따르면 이런 잦은 업체 변경은 아시아나항공사의 관행이다. 2018년엔 AH였지만 2015년엔 ‘KR’, ‘KO’ 등의 자회사에서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10년 전 하청업체 ‘아셈스’에 입사했던 D씨는 2013년 KA로 강제로 옮겨졌고 2015년 다시 KR로 이직됐다. 모두 직원 동의를 받는 과정 없이 급작스럽게 진행됐고 퇴직금도 매번 정산받았다.

강제 사직서 작성 및 이직 과정에 대해 KA 측은 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B씨는 “사직서를 언제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퇴사 처리될 것”이라고 강요받았다며 사측이 “회사에 들어올 사람은 많다. 신입을 또 뽑으면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밝혔다. 한 직원 E씨도 “우리 의견을 하나도 묻지 않고 마음대로 굴리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너희를 소모품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홍종기 노무사(노무법인 삶)는 이와 관련해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근로자 의사에 반해 퇴직시킨 것이므로 실질적으로는 해고에 해당될 수 있다”며 “강제로 사직서를 쓰는 것을 ‘강요에 의한 비진의표시’라고 하는데, 기존 판례는 이를 엄격하게 해석해왔지만 근로자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한 판례도 있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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