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이 공산주의자라고 확신한다.”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다. 지난 9년 자유한국당 집권기 동안 공영방송이 망가진 배경에는 극단적 성향의 이사들로 구성된 공영방송 이사회가 있었다.

이 같은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공영방송 이사회에 여야에서 독립적인 인사들로 ‘중립지대’를 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이하 방송발전위)는 2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제작 자율성 제고 방안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방송발전위는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정책과제로 내건 데 따른 후속조치로 만들어진 자문기구로 지난해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됐다.

개선안의 핵심은 공영방송 이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여야가 아닌 중립지대 이사진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여당과 야당 추천 이사가 4명씩이면 중립지대 이사는 5명으로 구성된다.

이는 현재 KBS(7:4),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6:3) 모두 정부여당 추천 이사가 과반으로 정부의 의도대로 이사회가 진행되는 것과 정치권에서 사실상 추천권을 독점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다.

▲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이하 방송발전위)는 2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제작 자율성 제고 방안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이하 방송발전위)는 29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제작 자율성 제고 방안 논의 결과를 공개했다.

중립지대 이사는 국회 또는 방통위에서 학술·직능·시민단체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한 다음 ‘합의’를 통해 선임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추천권을 갖는 한 극단적인 성향의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있는데, 방송발전위는 국회 또는 방통위 중 한 곳에서 부적절한 이사를 추천할 경우 일부 거부권을 둘 수 있도록 했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사장을 뽑는 방식은 2015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한 ‘특별다수제’(이사회 3분의 2가 동의할 경우 선출)와 현재와 같은 과반 의결 방안 등이 거론됐다. 개선안에 따르면 중립지대 이사가 3분의 1 이상 의석을 점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힘든 구조가 된다.

이 외에도 방송발전위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으로 △이사진 임기 교차제 및 연임 제한 △회의록 공개 등을 통한 운영 투명성 강화 등을 제시했다.

또한 방송발전위는 방송업계의 제작·편성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지상파·종편·보도채널 등 보도기능이 있는 방송사업자의 경우 노사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편성위는 △방송종사자가 제작 자율성을 침해받는 경우 △편성규약의 제·개정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사진=이치열 기자.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사진=이치열 기자.

또한 편성위에서 원만히 합의되지 않을 경우 이를 조정하기 위한 ‘임시 분쟁 중재기구’를 설치하도록 했다. 중재기구는 방통위, 시청자위원회, 사업자, 종사자 등이 추천권을 갖게 된다. 이는 노사동수로 편성위가 구성될 경우 합의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에 따른 조치다.

방송발전위의 발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개선안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시민사회단체와 방송사에서 나온 패널들은 개선안이 △방통위나 국회가 추천권을 갖는 이상 정치적 입김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고 △중립지대 구성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고 △실질적으로 시민의 참여를 늘려야하며 △이사 구성 등 제한적 논의보다 공영방송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방송발전위의 논의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러자 방송미래발전위원회 위원장인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단체나 정당이 좀 더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개혁을 지향하되 불확실성이 이어지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미래발전위원회의 개선안은 최종 논의를 거친 후 법안 형태로 국회에 제출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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