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는 무슨 말을 했는가
미투 운동 창시자 타라나 버크는 무슨 말을 했는가
텔레그래프 인터뷰 기사 놓고 한국에서 논란... 상식적 방향 재확인했을 뿐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가 지난 7일 미투 운동의 창시자 타라나 버크와 인터뷰하고 낸 기사는 영국보다 한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인터뷰에서 버크는 자신이 시작했던 미투 운동의 동기, 1월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던 아카데미 시상식, 현재 벌어지는 미투 운동에 대한 생각, 여성과 남성 사이에 생기는 간격 등에 대해 말했다.

해당 기사는 한국에 전달되면서, 버크가 현재의 미투 운동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인식됐다. 기사를 전한 연합뉴스의 포털 기사에는 48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중 다수가 현재 벌어지는 미투 운동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으며, 버크가 미투 운동을 부정한 것처럼 해석했다.

▲ 타라나 버크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 타라나 버크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텔레그래프의 기사가 제목에서 “타라나 버크, 미투 운동이 잘못 나가고 있는 데 대해 말하다”라고 하여, 버크의 인터뷰 중 부정적 평가 측면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연합뉴스 기사도 “미투 운동 변질 가능성 우려”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본문에서 버크가 말한 것은 미투 운동이 성별에 상관없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드러내고 보호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미투 운동의 출발과 본질을 다시금 밝힌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국 독자 사이에서 버크의 인터뷰가 큰 관심을 끈 것은 원문 기사에도 나오듯 집단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고 믿는 남성들의 인식과 피로감, 그리고 각계 권력이 성폭력 폭로 하나로 일거에 무너지는 현상에 대한 당혹감 같은 것들이 배경이 되고 있는 듯하다. 법조계와 문화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한국의 미투 운동이 정치권으로 비화되는 시점이라는 점도 미묘하다.

또 연합뉴스 기사 중 원문 기사의 인용을 불명확하게 한 것도 이에 일조했다. 기사는 미투 운동이 여성과 남성 사이에 장벽을 만들고 있다며 버크를 간접적으로 인용했는데, 원문을 보면 이 부분이나 미투 운동이 분열을 초래했다는 부분은 버크의 주장이 아니라 기사를 쓴 텔레그래프 기자의 서술이다.

버크가 남성은 적이 아니며 미투 운동은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성 대결의 양상을 경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초점은 여전히 여성이 다수인 성폭력 피해자를 드러내는 데 맞춰져 있다. 버크의 주장 자체는 미투 운동과 관련한 상식적인 측면을 다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사에 나타난 버크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즉 △미투 운동은 성별에 관계없이 성폭력 희생자를 위한 운동이다 △여성 피해자가 많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하는 모양이지만 남성은 적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다 △명망가들의 운동 참여는 부정적이지 않다 △남성이 일상에서 여성을 배제하려고 하는 태도는 해결책이 아니다 등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버크가 여성운동가가 아니라 성폭력 반대 운동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것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이 남녀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며 좀 더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접근을 요구한 것이다. 버크는 법적 절차가 뒤따르게 되는 공개 고발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요구하지만, 그런 주장이 미투 고발을 억제하거나 공공연한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음은 텔레그래프 기사 중 주요 부분.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드 카펫을 밟기 일주일 전, 모든 사람이 타라나 버크에게 질문했다. “무슨 성명을 낼 것인가요?” “검은 옷을 입을 건가요?” “흰 장미를 달 것인가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버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지 않다. 성명만 계속 내고 실제로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곤란에 처하게 될 것이다.”

△ 버크가 미투 운동을 시작한 것은 그녀가 성폭력 희생자를 위한 비영리단체 Just Be Inc를 창설한 것과 같은 해였다. 두 활동 모두 미국 앨라배마 주 셀마에서 곤란에 빠진 아동들을 위한 캠프에서 일할 때 겪었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헤븐이 내게 매달렸는데, 자신의 양아버지가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

△ 버크 자신이 어렸을 때 동네 젊은이로부터 공격당한 일이 있었다. 버크는 헤븐의 이야기를 듣다가 중단했다. “그녀에게 벌어진 일이 내 것과 다르긴 했지만, 일부 사항들은 거의 흡사했다. 나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까. ‘나도 당했단다(me too).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났단다.’”

△ 헤븐을 돕지 못한 게 몇 년 동안 버크를 괴롭혔다. 오늘날에도 버크는 “헤븐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래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순간에 내가 그녀를 돕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미투 운동이 폭넓은 공공의 의식으로 확산되기 열흘 전에, 하비 와인스틴이 많은 여배우를 공격했다는 주장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됐다. 또다른 여러 명망가 남성들이 비난받는 양상으로 스캔들이 비화되면서 미투 운동도 확산됐다. 미투 슬로건은 일주일 안에 1200만 번 사용되었고 2주 만에 85개 나라에 이르렀다.

△ 그러나 애초에 좋은 의도로 시작한 미투 운동은, 분열을 초래하는 양상으로 신속히 바뀌었다. 벽을 허물기도 했으나 새로 쌓기도 했는데, 특히 여성 세대간보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났다. 남성 다수는 자신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버크는 “미투 운동은 ‘우리 대 그들’의 모양이 되어서는 안 됐다”라고 강조한다. “미투 운동이 널리 대중화된 것은 여성이 그런 일을 당해왔기 때문이지만, 이건 정말 여성의 운동이 아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에서 살아남은 모든 사람을 위한 운동이다. 물론 여성 희생자가 많기 때문에 여성이 주도하고 있지만, 케빈 스페이시에 대해 말문을 연 소년들이나 성폭력을 당해 왔던 수백만 명의 남성들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남성은 적이 아니며, 바로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를 포함한 ‘100명의 프랑스 여성들’이 지난 1월에 공개 성명을 내고 미투 운동에 의해 ‘남성 및 성 활동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는 양상을 비난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쉰다. “구조와 싸우는 데 주력하지 않는 한, 똑같은 결론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랑스 여성들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성명을 보고 매우 슬펐다.”

△ (미투에 참여하는) 할리우드의 여배우들이 고통을 체험하거나 그런 고통을 돌보기에는 지나치게 엘리트들이라는 생각 역시 버크를 크게 당황시킨다. “애슐리 주드와 애너벨라 시오라는 당당히 일어나 자신들의 진실을 말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으며, 단지 자신들을 믿어주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 “개인적인 것은 여러 측면에서 또한 정치적이다”라고 말하는 버크는 아카데미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니며, “다른 사람의 트라우마를 유추하고 계량화하는” 일을 끊임없이 거부한다. “모든 사람은 나에게 ‘이 여성은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하고 어떻게 느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할 것을 기대한다.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 버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들에게 그런 권리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서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두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중 한 여성은 내게 ‘그 남자가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나는 그가 나를 밀고 당기는 그게 좋았어요’라고 말할 수 있고, 다른 여성은 ‘그런 태도가 나를 매우 두렵게 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을 싫어한 여성을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언어와 관련해 매우 특정적이어야 하고 조심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공격과 관련한 무언가를 말한다면, 거기에는 법적인 측면이 함축되게 되며 파문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버크가 보기에 더 큰 이슈로부터 일탈하는 또 다른 주제는 ‘미투 시대에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서로를 포옹하고 데이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버크는 이러한 생각에 코웃음을 친다. “인간인 우리는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남성들이 혼자서 여성들과 업무 회의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조사 결과를 놓고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성들은 성적 학대나 그렇게 했다는 주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여성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서 창피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자제력이 없거나 신뢰될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닌가?”

△ 남성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버크가 이해하여야 할까? 물론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SNS로 벌어지는 여론재판은 중단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투 운동 전체가 약화될 것이다. 정당한 법적 절차는 우회되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버크는 잠깐 뜸을 들인다. “어떤 사람들은 치유와 정의를 위해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의 실명을 목소리 높여 거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이해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그 위에 더 긴 여정과 과정이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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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2018-04-30 15:32:30
성별에 상관없이 ----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페미니스트들이 발표한 남성들의 강간문화 운운은 미투를 왜곡하는 주장이 맞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