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들의 판결문을 시민들에게 전수 공개하는 ‘알 권리 증진 실험’을 시도한다.

오마이뉴스는 박근혜 정부 민간인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피고인들의 30여 개에 달하는 판결문을 온라인 게재 방식을 통해 시민 독자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공개 방식이나 시점 등 구체적인 공개 방안은 논의 중이다.

오마이뉴스 관계자는 “크게 보면 판결문 공개 제도 현황을 시민들에게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현행 제도에 대해 시민들의 판단을 직접 구하고자 하는 취지”라면서 “판결문 자체도 공개하지만 과도히 익명처리된 판결문이 얼마나 읽기 어려운지, 판결문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권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등도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 부산지방법원 자료사진. 사진=민중의소리
▲ 부산지방법원 자료사진. 사진=민중의소리

검찰·특검이 기소한 주요 국정농단 사건 중 선고가 내려진 판결문은 32건이다. 항소·상고로 2·3심이 진행 중인 사건을 포함한 건수다.

이 중 법원은 최소 6건의 판결문에 대해 공개 제한을 허용했다. △최순실씨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등 사건 1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사건 1·2심 △이임순 전 순천향대 교수의 비선진료 사건 1심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강요사건 1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2심 등이다.

법원의 이 같은 처분은 헌법에 기초한 공개 재판 제도 취지에 반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돼왔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한다. 국가의 안보나 공공질서, 사회의 선량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에 한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다.

사건관계인은 현행법상 자신의 △명예 △사생활의 비밀 △생명·신체의 안전 △생활의 평온 등이 저해될 우려가 있을 때 재판부에 판결문 공개 제한을 요청할 수 있지만 결정권한은 재판부에 있다.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판결문 공개 원칙보다 피고인의 요청 사유가 우선한다고 판단한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온라인 신청서 제출 등 공식적인 판결문 사본제공 과정을 거쳐 국정농단 사건 판결문을 모으고 있다. 비공개 처리된 판결문 5건의 경우, 사건과 무관한 법조인, 국회 보좌관 등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공유된 상태다. 판결문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오마이뉴스 측은 이들 판결문 공개 게재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비공개 판결문을 게재하지 않더라도 법원의 비공개 처분 결정 사유를 적시할 예정이다. 사유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법원 결정의 합리성에 대해 시민들이 판단할 근거를 제공한다는 취지다.

법인·대통령 이름까지 익명처리

법원의 과도한 익명 처리 문제도 다뤄질 예정이다. 이재용 부회장 2심 판결문 사본을 보면 미르재단은 ‘BF’로, K스포츠재단은 ‘BG’, 삼성은 ‘N’ 등의 이니셜로 익명처리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A’, 전 대통령 박근혜씨는 ‘V’, 최순실씨는 ‘W’로 적혀 있다.

그 결과 시민들은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판결문을 제공받게 된다. 가령 이 부회장 2심 판결문엔 “AW센터 1차 지원과 관련해 V 전 대통령이 AN을 특정해 지원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 피고인 D와 AJ 사이의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피고인 D가 AJ에게 AW센터 후원을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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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 사건 2심 판결문 중 법인 및 공인의 이름이 익명처리된 사례.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 사건 2심 판결문 중 법인 및 공인의 이름이 익명처리된 사례.

오마이뉴스 관계자는 “판결문이 일반에 공개되더라도 너무 읽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런 식의 공개 방식이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도 시민들에게 물어 볼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 측은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선고 후 판결문 사본을 제공받아 시민 독자들에게 공개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현행 판결문 공개 제도의 문제점은 국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판결문 전면 공개를 원칙으로 한 민사소송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엔 △대법원 확정 판결문뿐 아니라 모든 하급심 판결문 공개 △판결문 검색 용이하도록 검색어 입력 제도 개선 △판결문 공개 담당 공무원에 대한 면책 규정 등의 조항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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