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을 위한 입법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불성실한 국회 입법이 많다.” 지난 5일 ‘입법선정주의와 인터넷생태계의 위축 세미나’에서 황용석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장(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포털은 분명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변화한 환경에 맞는 규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법적 근거나 타당성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규제법안이 발의되는 데 대해 학계는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20대 국회에서 쏟아진 포털 규제 법안은 크게 ‘표현물 규제’와 ‘시장 규제’ 두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포털이 가짜뉴스를 비롯해 문제적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는 등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제재를 내리는 방안이고, 후자는 포털이 시장지배적 사업자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다.

표현물 규제는 포털에 가짜뉴스 삭제 의무를 지도록 한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의 ‘가짜뉴스 방지법’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 역시 포털을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 처벌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시장 규제는 포털에 경쟁상황평가를 실시하고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부과하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뉴노멀법’이 있다.

포털에 대한 가짜뉴스 법안은 오히려 ‘무분별한 사적 검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송시강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가짜뉴스 유통을 감독하지 않았다고 사업자를 처벌하는 제도는 사적 검열이 자의적으로 이뤄지게 할 위험이 있다”면서 “(진위를 판단하는) 법원의 역할을 함부로 침해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 네이버 사옥. ⓒ 연합뉴스

가짜뉴스는 ‘언론 보도로 위장한 허위정보’라는 본래의 의미를 넘어 오보나 왜곡보도 등에도 널리 쓰이고 있어 기준에 대한 정의가 분명하지 않다. 또한  의혹제기를 할 경우 당사자가 부인하거나 실체적 접근이 어려워 진위를 즉각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털이 합리적 문제제기까지 삭제하는 등 ‘자의적인 검열’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다.

국내의 가짜뉴스 관련 법안은 독일에서 최근 제정된 ‘네트워크 법집행 개선에 관한 법률’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송시강 교수는 독일의 법이 한국에 잘못 알려졌다고 지적한다. ‘네트워크 법집행 개선에 관한 법률’은 페이스북 등 대형 인터넷사업자가 가짜뉴스를 삭제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법이 아니다. ‘불법 콘텐츠’를 삭제 대상으로 하는데, 불법콘텐츠는 한국과 달리 형법에 언급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처벌 근거가 마련된 내용들이다.

또한 사업자가 무조건 불법 콘텐츠를 삭제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율규제 기구’의 판단에 따를 것을 명시하고 있고, 콘텐츠의 불법성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송시강 교수는 독일의 법으로부터 배울 점은 “사적인 검열을 사업자에게 의무로 강제함에 있어서 자율규제의 속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자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라며 정부개입이 아닌 자율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시장 측면의 규제 역시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대호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검색 시장을 기준으로 한 포털의 시장 규제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업을 하는 사업자들 사이에서 특정 서비스의 ‘시장지배력’이 어느정도인지 측정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의 포털에서 검색, 동영상, 블로그, 웹툰, 커뮤니티 등 다양한 서비스가 혼재돼 있고 경쟁사업자들이 웹툰앱, 동영상서비스 등으로 포괄적이기 때문에 개별 서비스의 시장 지배력 여부를 판단하기 매우 까다롭다.

이대호 교수는 “이미 2014년 대법원이 시장지배력 기준을 포털에 적용하는 게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면서 “학계에서는 인터넷 산업의 특성상 기존의 시장획정 방법론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전했다.

물론, 포털을 지금 그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건 아니다. 황용석 교수는 “과도한 규제를 재생산하거나 정치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는 대신 합리적 정치담론이 반영되도록 입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인터넷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지에 대해 항상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 “한국에선 사회적 책임이 곧 정부규제, 법적 규제라는 인식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목적성(효과성)·효율성·체계정당성이 고려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이 지난 10월 30일 오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 중 언론 기사 검색 순위 조작에 대해서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이해진 네이버 전 의장이 지난 10월 30일 오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 중 언론 기사 검색 순위 조작에 대해서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사업자들의 태도에 대한 쓴 소리도 나왔다. 네이버를 비롯한 한국 인터넷서비스 사업자들은 ‘역차별’ 프레임을 내세우며 해외 기업에도 동등한 수준의 망사용료, 규제를 적용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와 관련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기업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려는 노력만 하면 충분하다는 시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면서 “역차별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과 미래 산업발전에 맞는 규제환경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 제시하고 설득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역차별 논의에 앞서 국내 규제 수준이 적당한지부터 들여다보고, 개선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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