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대표를 바라보는 나는 엄마를 내버리고 첩을 들여 첩의 말만 듣는 혼을 놓은 아버지를 보는 마음이었다. 큰딸로서 막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홍 대표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이 주인 행세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한 보수우파 지지자들의 시선이 싸늘한데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자유한국당 당무감사 결과 당협위원장(서울 서초구갑) 자격이 박탈되고 26일 오후 당 윤리위원회 징계를 앞둔 류여해 최고위원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홍준표 대표를 향한 독설을 쏟아냈다.

하지만 류 최고위원이 당협위원장에서 밀려난 후 홍 대표와 벌이는 계속되는 설전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 아니라 정치 혐오를 불러온다는 지적이 많다. 류 최고위원은 홍 대표와 날 선 대립 구도를 만들며 ‘여성’과 ‘청년’ 이미지를 강조하지만, 실제 두 사람의 싸움에는 여성 비하적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최근 두 사람 간 ‘주막집 주모’ 발언이 대표적이다. 지난 21일 홍 대표가 자신에 대한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는 류 최고위원을 향해 “주막집 주모의 푸념 같은 것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자, 류 최고위원은 “그럼 내가 술 따르는 여자냐”고 반발했다.

류 최고위원은 “당원들이 뽑은 2등 최고위원인 나를 여자라는 이유로 주모라니. 낮술 드셨냐”며 “여성 비하에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홍 마초’, 지금도 돼지 발정제 갖고 다니시는 건 아니냐”고 힐난했다.

이 외에도 류 최고위원은 본인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홍 대표와 한국당이 여성 비하를 일삼는 마초(macho) 집단이라고 공격하는 중이다. 지난 17일엔 한국당 내 여자 당협위원장이 5.9%에 불과하다면서 “정치는 남성의 전유물이라 생각지 마라. 여자를 예쁘게 세워두는 꽃이라 생각지 마라”고 했다.

▲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날 오후 자신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 징계 논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류여해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날 오후 자신에 대한 당 윤리위원회 징계 논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제천 사우나 화재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셨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피해자가 있었다는 것 알 거다. 이 사회는 사우나조차도 남자는 더 탕이 크고 여자는 더 탕이 작다. 항상 여자에게는 가만히 있어 달라고 얘기하는 사회다. 나는 한국당이 이번 참사처럼 무너져 내려가는 걸 막고 싶었다. 청년이, 여자가 모두가 사랑할 수 있는 한국당이 되기 위해 나선 것뿐이다.”

지난 22일 제천 화재 참사를 자신의 처지와 비유한 류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성별 대립 구도라는 프레임을 이용했을 뿐, 지난달 “포항 지진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경고”라는 발언해 물의를 빚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적 재난과 참사마저도 정치공세에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류 최고위원이 주장하는 성차별 피해 의식이 공감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그가 여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변하기보다 외려 남성성을 강조하며 당내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는 지난 전당대회 선거에서 “치열한 대선 전쟁의 최전선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적반하장’이라는 기관총을 부여잡고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싸웠다”고 말하는 등 ‘여자 홍준표’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대선 때부터 류 최고위원을 지켜본 한 정치부 기자는 “류 최고위원도 선거 때는 머리 풀고 힐 벗고 여성성 다 버릴 것처럼 말하더니 여성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건 홍 대표와 별다를 것이 없다”며 “여성 정치인의 입에서 ‘첩’ ‘조강지처’ 이렇게 여성을 대상화하는 말이 나와서 몹시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한국당 혁신위원회가 주최한 토크콘서트 ‘한국 정치, 마초에서 여성으로’ 발제자로 나와 홍 대표와 한국당을 향해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일침을 가한 강월구 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강릉원주대 초빙교수)은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류 최고위원이 외려 여성 전체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조강지처’ ‘첩’ 단어도 이게 문제가 있어 개선하는 식으로 꼭 필요할 때 써야 하는 단어지 그냥 막 갖다 붙이면 외려 여성이 그동안 받은 불평등을 희화화할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성 문제를 인식하고 불평등을 고치려는 많은 여성과 진짜 피해를 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서도 적절치 못한 표현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홍 대표의 ‘주모’ 발언에 대해서도 “같이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서 ‘주모의 푸념’이라고 표현한 건 너무 비하한 것”이라며 “정치는 남자가 하고 여자는 술 따르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홍 대표의 여성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혜연 정의당 부대표는 “류 최고위원이 홍 대표와 자신의 남녀 대결 구도를 이용해 자신이 마치 여성 권리를 대표하는 것 마냥 하고 있지만 그동안 그의 행적이나 발언들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밑바닥 여성 노동자나 가정주부, 비혼모 등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여성의 삶은 전혀 대변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차별받는다고 호소하는 것으론 여성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여성 권리도 신장시킬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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