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9일 오전 KBS 연말 이웃돕기 모금 생방송에 출연해 “KBS 파업을 그만하라”는 말을 네 차례나 반복해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날 오후 박근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개입 혐의로 이정현(무소속) 의원이 기소되면서 “KBS 파업을 그만하는 게 국민에 대한 큰 기부가 될 것”이라는 홍 대표의 말은 궁색해졌다.

홍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진행된 ‘나눔은 행복입니다’ 생방송에서 “오늘 나눔에 어떤 마음으로 동참하셨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소외된 이웃이 따뜻한 연말이 됐으면 한다”면서 “KBS도 이제 파업 그만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어 내년 한국당의 복지정책과 관련한 질문에도 ‘KBS 파업 그만’ 발언을 거듭해 논란을 키웠다.

하지만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는 박근혜 청와대 홍보수석 당시 KBS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고발된 이정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후 해경의 구조·초기 대응 실패를 비판한 KBS 보도에 대해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 비판 보도를 막으려 한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김 전 보도국장에게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과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느냐”, “아예 그냥 다른 거로 대체를 좀 해주든지 아니면 한 번만 더 녹음 좀 해달라”, “하필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다. 극적으로 좀 도와 달라”는 등 정부의 책임을 묻는 보도를 막기 휘한 회유와 압박을 시도했다.

검찰은 시민 9명으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를 거쳐 이 의원 기소를 결정했다. 이 의원의 세월호 보도 개입은 정권의 간섭을 막기 위해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제4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의원의 발언이 청와대 홍보수석의 업무 범위를 고려하더라도 ‘항의’나 ‘의견 제시’를 넘어 방송 편성에 대한 ‘직접적 간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지난 19일 KBS ‘나눔은 행복입니다’ 이웃돕기 모금 생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 연합뉴스
▲ 지난 19일 KBS ‘나눔은 행복입니다’ 이웃돕기 모금 생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 연합뉴스
이 의원의 공영방송 통제 시도를 비롯해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수많은 보도 참사에 대한 반성과 책임자 처벌,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KBS 구성원들은 100일이 넘도록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파업 그만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느니 “방송 좀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홍 대표의 발언에 ‘망언’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생존권을 내걸고 KBS를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파업 참여자들을 국민은 안중에 없는 이들로 조롱했기 때문이다.

홍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 들어 각종 비위 혐의를 받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경영진을 극적으로 두둔하며 내부 구성원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요구를 ‘문재인 정권의 방송장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공영방송을 쥐락펴락했다는 각종 증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도 단 한 번 사과하지 않았던 이들이 외려 언론탄압 피해자들을 나무라는 꼴이다.

홍 대표는 자신의 발언 이후 이 의원의 기소 소식에 머쓱했는지 20일 페이스북에 “이 의원을 방송법 위반으로 기소한 것을 보면서 검찰이 참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 정권 중반기를 넘기면 방송법뿐만 아니라 강압적인 언론 왜곡을 시도한 유사 사건들이 봇물처럼 폭로될 것이 자명해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지난 5월 대선 후보 시절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SBS가 오보를 내자 “집권하면 SBS 뉴스를 없애버리겠다”, “사장·보도본부장 다 목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가 SBS 구성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은 “(한국당이) 집권하면서 언론자유를 이렇게 후퇴시키고 민주주의를 농단해 놓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며 “공당의 자격이 없다. 해산하라”고 비판했다.

이번 홍 대표의 ‘KBS 파업 그만’ 발언을 두고도 언론노조 KBS본부는 “당신들이 파업의 원인 제공자이고, 우리가 청산하고자 하는 언론적폐의 원흉“이라며 “대한민국의 적폐 한국당은 이제 그만 당을 해체해 국민에게 크게 기부하고 기쁨을 선사해주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문재인 정권 중반기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지만, 박근혜 정부·여당이 벌인 각종 범죄 행위와 홍 대표의 막말은 부메랑이 돼 한국당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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