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던 절반의 방송노동자 위한 첫발 뗐다
외면 받던 절반의 방송노동자 위한 첫발 뗐다
정부, 독립제작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 발표…“정부 차원 첫 대책 마련, 긍정적”

문재인 정부가 역대 정부가 외면해온 독립제작 ‘갑질’ 문제에 칼을 대면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던 절반의 방송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고용노동부·문화체육관광부·공정거래위원회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앞으로 재허가 심사에 독립제작 문제를 반영한다. 방송사의 독립제작 프로그램 제작비 제출을 의무화하고 합리적인 단가 선정 여부를 평가한다. 방송사-독립제작사 계약시 제작 인력에 대한 상해·여행자보험 가입 확인 등 안전대책 적용을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하고 방송평가에도 반영한다. 정부는 업계와 함께 인권선언문을 제정하고, 준수여부 역시 재허가 조건으로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독립제작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과 관련한 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19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독립제작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과 관련한 부처 합동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방통위는 △방송사-독립제작사 간 자의적 협찬 배분 △저작권 양도 강요 △계약서 작성거부 등을 방송법상 ‘금지행위’에 포함하는 방송법 개정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표준계약서도 개선된다. 문체부는 기존 방송프로그램 제작 표준계약서 외에 ‘방송작가 집필표준계약서’를 제정한다. 공정위와 문체부는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 ‘방송업종 표준하도급 계약서’ 개정을 비롯해 저작권 및 수익배분 등 핵심조항이 제외된 표준계약서의 형식적 사용을 막기 위한 새 기준을 마련한다.

노동부는 방송 분야를 주간 연장근로 한도(12시간)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으로 지정한 기존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지 또는 최소화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한다. 노동부는 또한 독립제작사를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하고 최저임금, 임금체불, 장시간 근로 등 취약사항에 대한 집중 근로점검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문체부와 방통위는 ‘콘텐츠 상생 신고센터’를 합동으로 운영하고 계약서 미작성, 구두계약, 인권침해 문제에 대응한다.

독립PD들은 정부의 ‘종합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권용찬 독립PD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이전 정부에서 다루지 않았던 문제를 현 정부가 부처 합동으로 직접 나서서 종합대책을 내놓은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내용 역시 독립PD들이 요청했던 사안들이 잘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2016년 방송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방송사 독립제작 비율은 SBS 69.4%, 서울MBC 60.1%, KBS 50.1%, EBS 35.2%에 달한다. 방송의 절반 가까이를 방송사가 아닌 독립제작 노동자들이 만들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책을 내놓는 것만으로 고질적인 문제가 뿌리 뽑히는 건 아니다. 특히 ‘갑질’과 부당노동행위 개선을 위해서는 방송법,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해 업계 또는 야당이 반발한다면 후퇴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 지난 7월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 PD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제작비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늦은 시간에도 두 PD가 직접 차를 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환성 PD는 출국하기 직전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앞장 서서 공론화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 7월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 PD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제작비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늦은 시간에도 두 PD가 직접 차를 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환성 PD는 출국하기 직전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앞장 서서 공론화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정책 추진의 당위성은 충분하지만 시장 상황을 고려한 대책이 병행되지 않다보니 사업자의 반발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방송사 재정이 열악한 상황에서 종합대책을 따르게 될 경우 제작비 상승이 예상돼 방송 사업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관계자는 “갑질 문제는 당연히 개선해야 하고 지상파가 큰 잘못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대안으로 꼽는 외국사례들은 안정적인 재원이 뒷받침됐다는 점이 다르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종합대책’ 다수가 ‘계획’이고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지속적인 ‘의지’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권용찬 독립PD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은 “현장에서 어떻게 잘 이행이 될 것인지에 대한 사후 관리감독이 늘 걱정”이라며 “독립PD에 대한 인식은 다소 개선 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갑을관계로 여기는 인식에 대한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월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가 열악한 여건 속에서 EBS 다큐멘터리 제작 중 사망하면서 독립PD ‘갑질’ 문제가 대두됐다. 박환성 PD는 출국 직전까지 EBS가 정부 보조금 일부를 간접비 명목으로 요구했다는 점을 폭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독립PD들은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제작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고 정부 차원에서 개선방안을 논의하면서 종합대책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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