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뱉는 침
내 얼굴에 뱉는 침
[미디어현장] 박세경 아리랑 국제방송 PD

나이가 들고 회사에 다닌 시간이 켜켜이 싸여가면서 몇 해 전 부터 나는 회사 흉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 회사의 이름은 국제방송교류재단, 사람들이 흔히 아리랑 TV라 부르는 곳이다. 나는 지난 15년간 이곳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PD이다. 지난 15년의 시간 안에서 회사와 나를 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어릴 적엔 회사 흉을 참 많이 봤더랬다. 월급이 적었고, 예산은 항상 부족했다. 비정상적인 주무부처 구조와 예산구조, 법제화 문제, 낙하산 사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정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등 동료·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안주삼아 회사를 참 많이도 씹었더랬다.

하지만 나는 아리랑TV에서 PD로 일하며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다. 프로필에 자랑스럽게 내보일만한 프로그램도 몇 개 만들었고, 누군가가 잘했다고 주는 상도 받았으며, 또 동시에 승진에 미끄러져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동료들과 매일 출근해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회사 흉을 보고 나면 꼭 누군가가 내 아내, 내 아이를 욕한 것 같은 그 찜찜함이 남았다. 회사가 나 자체인 것이었다. 회사에 애정이 있었다. 내 청춘을 바치고, 내 가족을 먹여 살린 나의 회사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회사 흉을 보는 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회사 흉을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회사가 또 자랑할 거리도 참 많은 회사였다. 회사의 주 업무인 한국의 모습을 해외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는 것.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외 시청자들에게 선보인다는 건 15년간 자랑스럽게, 재미있게 회사를 다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해외의 시청자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알았다며 고맙다는 팬레터를 보내주기도 했고, 독도나 전쟁 성노예 관련 주제에 일본 시청자의 악플에 대응하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살아있음을 느꼈고, 국제방송 존재의 중요성의 절실히 느끼며 보람 속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류가수와 외국에 나가 콘서트를 진행하고 취재할 때의 희열과 보람은 또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던가.

그 힘으로 정권의 낙하산 사장이 하늘에서 떨어져 일선 제작진들은 제작비 한 푼이 아쉬워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못하게 망가뜨리고, 프로그램을 초토화 시키면서도 본인은 미국출장에 가족을 동행하고 고급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것이 온 세상에 까발려 질 때도. 최순실이 조카인 장시호를 통해 아리랑TV 사장을 알아보라고 했다는 언론보도가 흘러나올 때도. 무형의 루트를 통해 정권 홍보에 동원돼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대통령 관련 이벤트를 촬영하라 할 때도.

너무나 모욕적이고 괴로웠지만 끝끝내 버텼다. 회사 흉을 보지 않았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회사 흉을 보려고 한다. 내 얼굴에 침을 뱉기로 한다. 나와 함께 매일을 열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청춘을 바쳐 일하고 있는 프리랜서, 파견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내 동료, 후배들이. 내 새끼들이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국가 홍보가 목적인 영어 방송사. 광고가 붙기 힘들고, 주무부처와 예산창구가 이원화 되어있는 구조적 문제. 해마다 인건비 부족분을 기금에서 감당하고, 그 기금이 고갈되고, 그러던 와중에 정부와 국회는 방송통신 위원회의 아리랑 국제방송 지원 사업 예산을 올해 수준으로 결정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일반회계 예산으로 신청한 108억 원은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또한 이 중요한 시국에 회사에는 사장이 없다. 전 정부의 낙하산 사장은 우리 회사를 침몰하는 배라고 판단했는지 이미 배에서 도망쳐 버린 지 오래다. 제작비가 없어 프로그램을 못 만들게 되면 각 프로그램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일자리도 사라진다.

내가 책임 PD로 있는 경제뉴스 프로그램은 주중 매일 30분씩 방송된다. 책임 PD와 앵커만이 정규직이고, 진행PD, 조연출, 작가, CG, 출연자등 필수인력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의 형태도 다양하다. 누구는 파견회사에 소속된 파견직이고, 누구는 일 년씩 계약서를 쓰는 프리랜서이며, 어떤 이들은 개인사업자이다. 다른 프로그램의 구조도 이와 많이 다르지 않다.

모두 방송이 좋아서 모여 있는 사람들이다. 열악한 처우와 가벼운 월급봉투도 열정으로 견디는 국가의 이미지를 만드는 좋은 방송을 만드는 소중한 자원이다. 내년 예산은 이미 확정됐고, 나는 조만간 그들에게 해고 통보를 해야 한다. 결국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인력이 사라지면 아리랑 TV의 존재의 이유를 묻는 이들도 많아질 것이다.

중국의 CGTN이 일 년 예산으로 2조7000억 원을 쓰고 있고, 일본의 NHK는 2600억 원을 쓰면서 자국의 입장을 세계에 전파중이다. 이 와중에 우리는 예산부족으로 양질의 국가 홍보 프로그램을 생산해 내기는커녕 비정규직 인력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우리의 절규는 그 어디에도 닿지를 않는다.

▲ 박세경 아리랑 국제방송 PD
▲ 박세경 아리랑 국제방송 PD
방송도 사람이 먼저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내 동료, 내 후배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엄동설한에 또 다른 직업을 찾아 가야할 열정 가득한 방송인들을 이렇게 쉽게 보낼 순 없다. 나는 이들과 함께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계속 한국을 알리고 싶다. 그래서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이곳저곳 목소리를 높여 회사 흉을 보고 있다. 날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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