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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게임의 끝은 죽음, 살아있을 때 이 게임을 끝내자”
“과로 게임의 끝은 죽음, 살아있을 때 이 게임을 끝내자”
[토론회] 전문가·유족·활동가 모인 과로사예방센터 출범… “현재 한국 노동은 암 투성이”

2016년 11월 게임업체 ‘넷마블 네오’에서 일하던 만 28세 게임개발 노동자가 심장동맥경화로 과로사했다. 그는 게임 출시를 앞둔 10월 첫 주엔 96시간 가량, 둘째 주엔 83시간 가량 근무했다. 그해 7월 넷마블게임즈에는 퇴근 후 새벽에 급성심정지로 사망한 게임 개발 노동자가 한 명 더 있었다.

노동자운동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집배노동자 연간 노동시간은 2888시간이다. 2015년 기준 취업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 2113보다 775시간이 더 많다. 매일 12시간 가량 일한 셈이다. 2016년~2017년 동안 16명의 집배노동자가 사망했다. 노조는 그 중 12명이 과로사 및 과로자살로 숨을 거뒀다고 파악하고 있다.

2017년 11월8일 ‘과로사예방센터’(이사장 이윤근·소장 정병욱)가 출범했다. 변호사, 노무사, 직업환경의학과 등의 전문가, 노동조합 관계자 등 관련 활동가, 피해당사자 등이 모여 한국 사회에 과로사 문제를 공론화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발족된 기관이다.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센터 개소식과 함께 한국 사회 과로노동의 실태, 진단 및 해법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55일 연속 근무, 주당 71시간 노동, 상시적 인격모독

△방송제작 △게임 개발 및 IT 산업 △집배노동 △마필관리 등 지난 2년 동안 과로사망자가 발생해 논란이 된 노동현장 활동가들이 토론회에서 과로노동의 심각성을 증언했다.

▲ 4월25일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 사망대책위'가 CJ E&M 앞에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4월25일 'tvN 혼술남녀 고 이한빛PD 사망대책위'가 CJ E&M 앞에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해 12월 ‘고 이한빛 CJ E&M PD 사망사건 대책위’에 함께 해 방송제작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심층 조사했던 전진희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방송제작 현장은 무제한 노동 현장”이라고 말했다. “하루 평균 20시간을 일하면서 1주일에 1~2일을 쉬지만 어차피 늦게 퇴근해 쉬는 날엔 잠을 자느라 약속을 잡을 수도 없다. 새벽 2~3시 경 귀가해 씻고 잠이 들어 다시 오전 7시에 일을 시작한다.” 전 기획팀장은 “피조사자들은 업무 과정에서 가장 감내하기 어려운 점으로 노동시간을 들었다”며 “실제로 55일 동안 연속으로 일하며 하루만 쉬거나 아예 쉬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게임산업을 포함한 IT산업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넷마블게임즈 과로사 추정 사망자의 동료였던 A씨는 2015년 7월에만 주당 71.1시간을 일했다.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A씨는 21.5주 동안 주당 60시간 이상씩 일했다. 산재보험법 등에 따르면 통상 12주 동안 주 60시간 이상 근무하면 과로사로 간주된다.

지난 8월8일 열린 ‘넷마블 과로·공짜야근 증언대회’에서는 과로 질병의 위험신호들이 쏟아졌다. “크런치(장시간 노동에 돌입하는 비상근무체제를 뜻하는 은어) 도중 마감 전주엔가 한번 쓰러졌다.” “엠브란스가 자주 왔다 간다. 오늘도 누구 한명 실려 가는구나 싶다.” 실제로 넷마블 내 뇌심혈관 질환 등 과로질환 의심자는 증가추세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1~2명이던 뇌혈관질환 진료인원은 2016년 9명, 2017년 8월까지 4명으로 증가했다. 2014년 2~3명이던 심장질환 진료자는 2015년 5명, 2016년 13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심혈관 질환만 과로사로 분류될까. 직장 내 괴롭힘,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과로자살’도 과로사의 한 종류에 속한다. 지난 8월 논란이 된 ‘말관리사 과로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5월과 8월 부산경마공원의 말 관리사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 7월엔 서울경마공원 말 관리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노조, 유족 등이 근무환경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장시간 중노동, 비인간적 대우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사망노동자는 관리하는 말이 경주에서 이상 증세를 보였다는 이유로 마주, 조교사(고용주) 등으로부터 폭언을 연이어 들었다. 또다른 피해노동자는 산재를 입어 쉬고 있는 팀장일을 대신해 격무에 시달렸다. 전국공공운수노조가 말 관리사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42%에 달하는 63명이 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주당 평균 55.3시간을 일했고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비율은 46.5%에 달했다.

유족·전문가 끈끈한 네트워크, 일본 선례 주목

과로사예방센터의 의의는 일본 사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은 과로사를 정의한 법률을 제정하고 과로사 예방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최초의 나라다. 2014년 제정된 ‘과로사방지법’(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은 유족이 주체가 돼 8여 년 간 입법활동을 벌인 결과다. ‘전국과로사를 생각하는 가족회’는 1991년 구성돼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11월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센터 개소식과 함께 한국 사회 과로노동의 실태, 진단 및 해법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 11월 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센터 개소식과 함께 한국 사회 과로노동의 실태, 진단 및 해법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가영 기자

가족회는 과로사 예방 및 해결에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집단의 구심점이다. 가족회는 연 1회 1박2일 학술캠프를 열어 전문가 집단과 함께 합숙 훈련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들 네트워크는 변호사, 노무사, 노조 등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한국 과로사예방센터의 ‘롤모델’인 셈이다.

일본에서 ‘과로사방지학회’ 설립을 주도한 일본 간사이대학의 모리오카 코지 명예교수는 8일 토론회에 참석해 “과로사 발병 메커니즘은 한 가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10여 개 과로사 원인이 적힌 그림을 제시하며 “장시간·심야 노동, 고밀도 노동 등 기본적인 원인이 있다”면서 “뿌리들이 작용하면서 이에 더해 직장 내 괴롭힘이 더해져 몸과 마음이 파괴되는 경우도 과로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 △불규칙·야간·교대 근무 △출장이 잦거나 정신적 긴장을 수반하는 업무 △비정상적 사건 △직장 내 괴롭힘 등이 과로사의 요인이다. 일본 과로사방지법은 과로사를 “과중한 업무 부하에 의해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을 원인으로 하는 사망 또는 강한 심리적 업무 부하에 의한 정신 장애를 원인으로 하는 자살로 인한 사망 또는 이들의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 또는 정신장애”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사회, 민주화됐지만 노동의 세계는 암 투성이”

과로사 개념 정립은 과로사예방센터의 목표 중 하나다. 센터는 노무사·변호사·의사 등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과로사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 지원 및 사건 지원 활동, 블랙리스트 기업 발표 등을 통한 과로 예방 활동, 언론 기고 등을 통한 공론화 작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과로사 등 예방법’ 입법 촉구 활동도 주요 활동 계획에 포함돼있다. 국회에도 지난 3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과로사 등 예방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돼있다. 일각에선 이 법안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나 피해 유족들의 참여가 반영돼있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센터는 피해 유족과의 연대, 문화개선 활동, 과로 방지 홍보 및 교육 활동 등을 통해 근로기준법 개정 및 과로사 예방법 입법 활동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현재 과로사예방센터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변호사, 노무사, 안전보건활동가 등 52명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전국 네트워크를 구성해놓은 상태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일본에서 과로사방지법이 먼저 만들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 사회가 더 과로노동이 심한데 여긴 아무 것도 없었으니”라면서 “그때부터 (활동가·전문가들이) ‘우리도 공부를 해보자’ 라고 모여 2년 동안 준비해 설립한 것”이라 말했다.

강수돌 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사회 과로 문제는 개인적·조직적·사회적 차원으로 유지·강화되고 있다”면서 “과로사회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은 전 사회적 일중독으로 인한 불감증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적 요인은 △생활비 부족 △인정 욕구 및 탈락에 대한 두려움 △경쟁의 내면화 등이고 조직적 요인으로는 △낮은 기본급 △성과주의 중심 인사제도 등이 지적됐다. 근면 성실 이데올로기, 빈부격차, 사회적 안전망 부실 등의 이유는 사회적 요인에 포함됐다.

강 교수는 “(악순환되는) 과로 게임의 끝은 죽음”이라며 “살아있을 때 게임을 끝내서 죽기 전에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가 됐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일상생활, 노동의 세계는 죽음과 암 투성이가 돼있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서 “근본 혁신을 위해선 전 사회적 일중독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 성과주의, 경쟁 지상주의를 극복하고 주거·교육·노후 문제의 안전망을 확충해야 비로소 일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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