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유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SBS ‘논두렁 시계 투기 관련 보도’에 대해 노사가 최근 진상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뒤늦게나마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이용당한 ‘날조보도’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겠다는 의지를 밝힌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향후 진상조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정확한 진상조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외부인사로 꾸려진다고 하더라도 수사권이나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국정원이나 검찰 조사 등 접근에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SBS 내부 조사는 가능하지만 그것 역시 법적 강제력이 없어 어디까지 조사가 진행될 지 미지수다.

모처럼 SBS 노사가 진상조사 합의에 이른만큼 반쪽이든 부분이든 잘못된 ‘언론플레이,’ ‘정권에 놀아난 부도덕한 보도’에 대해 자체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정작 대책이 시급히 요구되는 부분은 따로 있다. SBS가 국정원과 검찰, 청와대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위를 꾸려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부분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일이다.

▲ SBS ‘8뉴스’ 2009년 5월13일자 보도.
▲ SBS ‘8뉴스’ 2009년 5월13일자 보도.
SBS는 한국의 고질적인 권언유착 폐해의 한 축을 지탱해왔다. 이는 부끄러우면서도 냉정한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SBS를 일컬어 언론기관이라기보다는 청와대 고위직에 직행하는 준정부기관처럼 정치적 집단이 됐다는 혹평까지 나왔다. 

청와대와 국회에 언론사 임원을 보냈던 또 다른 전통의 언론사, 조선일보가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SBS를 향해 쓴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정부시절, 신임 홍보수석에 김성우 SBS 기획본부장 출신이 임명된 것을 두고 “SBS가 홍보수석 배출기관 같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국회 등 수많은 정치언론인들을 양산한 조선일보가 SBS를 향해 ‘홍보수석 배출기관’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최금락 SBS 방송지원본부장은 청와대 홍보수석, 하금열 SBS 전 사장은 대통령실장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홍보수석 4명 중 2명이 SBS 출신이었다.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이런 퇴행성 新권언유착현상은 더욱 심화되는 모습이었다.

단순히 ‘논두렁 시계 조작 보도’라는 언론플레이에 한정시킬 일이 아니다. SBS는 정당도 아니면서 어떻게 대통령 실장, 홍보수석 등 청와대 주요 보직으로 자리를 이동할 수 있었는지, 앞으로도 이런 전통을 이어갈 것인지 등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SBS 등 방송사 주요간부가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이동하면 나타나게 되는 첫 번째 현상이 바로 자기 친정격인 방송사를 권력의 하부기관으로 전락시켜 언론플레이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청와대 대통령실장이나 홍보수석은 부도덕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진실을 왜곡해 왔다.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상황이 벌어졌을 때 피해자를 거꾸로 공격하고 이들을 비난하는 희한한 보도가 나왔던 이유가 뭘까. 이런 식의 청와대 홍보수석, 소통비서관 등의 언론플레이가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5월17일 이명박 대통령과 하금열 대통령실장, 어청수 청와대 경호처장(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2012 전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의 SBS 간부 청와대 행렬을 비판하는 뉴스를 소개하면서 이런 내용을 언급했다.

“2009년 5월13일 SBS는 ‘검찰에 소환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병우 중수1과장으로부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시계를 받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자기 몰래 시계를 받아 보관하다가 지난해, 박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자 시계 두개를 모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독 보도했다...그러나 최근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권양숙씨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해 큰 파장을 낳았다.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게 사실이면 SBS의 첫 보도 역시 국정원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SBS의 특종이 국정원 작품이라면, SBS는 진실을 외면하고 국민을 배반한 셈이다. 이것이 어찌 단순히 ‘논두렁 오보’ 하나에 국한되겠는가. 권언유착을 유지하며 언론사 간부에서 청와대, 국회로 직행하는 구조와 전통을 그대로 두고 개별 사안 하나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는 것은 본질을 외면하는 처사다.

논두렁 시계 보도에 대해 국정원 개혁위는 국정원과 SBS 취재기자 간 접촉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SBS는 미디어법 개정과 4대강 사업 등 현안마다 정권 편향적인 보도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이면에 언론인 출신 대통령실장, 홍보수석과 민정수석 그리고 그들의 언론플레이에 동원된 언론이 있었다면 이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과 대책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