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매체의 무분별한 미성년자 얼굴공개 보도가 도를 넘고 있다. 미성년자 보호법이나 언론윤리강령은 공인이 아닌 미성년자의 신원 또는 얼굴을 공개할 때 보호자나 후견인의 명시적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 최진실씨 딸은 대중매체의 흥미로운 먹잇감이 된 것 같다. 최근에는 ‘학대논란’으로 수사를 받고 최진실씨 어머니 정옥순씨는 무혐의 처리 됐지만 이 과정에서 KBS, 연합뉴스 등 주요 매체는 14살 최○○양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다. 단순 공개를 넘어 홈페이지에 눈에 띄도록 처리하는 천박한 상업주의를 드러냈다.

곧 이어서 세계일보는 홈페이지 좌측 상단에 “고 최진실 딸 최○○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 엄마’ 심경 고백”이란 제목으로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며 기사화했다. 인터뷰 내용으로 본인이 직접 기자의 카메라앞에 선 내용인가 확인했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 고 최진실씨
▲ 고 최진실씨
최 양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17년 10월 2일 우리 엄마 안녕. 나 되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라며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세계일보가 기사화 한 것이다. 기자 입장에서 뉴스가 된다고 판단하면 인터넷 글도 인용, 뉴스 작성에 나서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언론윤리강령과 언론중재법, 미성년자 보호법 등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을 지켜주는 선은 지켜야 하는 게 법치사회의 기본이다.

제목도 자극적으로 뽑았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를 잃은 어린 자식의 “살아가는 게 참 힘들다”는 고백은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한다. 여기다 얼굴 사진까지 덩그렇게 부각시켜 클릭해서 보라고 권하고 있다.

KBS, 연합뉴스, 세계일보 등 한국의 언론사들은 최양의 보도에 관한한 적어도 5가지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첫째, 불법보도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있어도 ‘이 정도는 괜찮다’는 오만한 태도다.

일반인의 사생활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더구나 미성년자의 얼굴사진 공개는 신중해야 하며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기자들도 안다. 그런 불법인식을 넘어서는 것은 바로 ‘장사가 된다’ ‘많이 본다’는 상업주의다. 특종이라면, 클릭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도한다는 상업주의가 한국언론에 만연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다.

둘째,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신력 있는 언론사는 취재기자의 보도를 다시 한번 점검, 보완, 수정하는 ‘데스크 과정’을 거치게 한다. 이를 서양에서는 ‘게이트 키핑’으로 부르며 오보나 왜곡보도를 최소화하며 당연히 불법성 보도는 걸러낸다. 하지만 최진실씨의 딸 관련 보도에선 이 과정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데스크, 부장, 국장들도 무지하거나 오만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얘기다. 언론사 입장에서 뉴스가 되느냐 안되느냐만 따질 뿐 피보도자의 인권이나 인격권 보호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행태가 세월호 보도에서도 반복된 것일 뿐이다.

셋째, ‘공인’(public figure)의 개념을 자기편의대로 해석하는 한국언론의 잘못이다.

각종 판례는 부모가 공인이라고해서 그 자식도 공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유명 배우가 이혼한다는 뉴스를 내보내면서 어린 자식과 함께 찍은 가족화보를 확대하여 홈페이지에 올리는 무식한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유명 배우 최진실은 당연히 공인이었지만 그 아들 딸은 공인이 아니다. 더구나 ‘아동학대’ 등의 사건에 연루됐을 때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신원공개가 아닌 신원보호를 해야 하지만 한국언론은 과감하게 신원공개, 얼굴공개 모두 한다. 언론사 입장에서 공인을 자기멋대로 해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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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스스로 제정한 언론윤리강령을 지키지 않고 있다.

각 언론사는 공통적으로 미성년자의 신원은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법에도 명시된 것이라 자율적으로 보도윤리강령을 만들어 준수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기자들은 물론 언론사 간부도 윤리강령을 장식품으로 전락시켰다. 이보다 더한 불법 징계, 인사횡포도 횡행하는데 이런 정도의 윤리강령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킬 것을 지키지 않을 때,스스로 만든 언론윤리강령을 종이조각으로 만들 때 언론 전체에 대한 신뢰와 권위는 상실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심의기관의 실종이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불법성 보도에 대해서는 자사의 심의기관 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심의위원회를 통해 영상물, 뉴스, 광고 등 심의를 하여 잘못된 보도를 막고 심각할 경우 징계까지 내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명무실하여 제 때 심의도 하지 못하고 적정한 징계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 운영된다. 언론사나 방송통신위원회나 그럴 듯한 법과 제도, 윤리강령까지 두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다면 시스템의 붕괴라기보다는 인간의 오만과 무지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부모없는 어린 소녀의 인권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언론이 무슨 거대한 권력 감시 한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처절한 반성이 필요할 때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는 필경 지혜롭게 되리라.”- 잠언 19장 20절

(Listen to advice and accept instruction and in the end, you will be w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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