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폄하, 막말이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실수라면서 부정적 뉴스에 노 전 대통령 사진이나 영상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심지어 극우 성향 ‘일베 사이트’에 올린 부정적 사진을 인용하면서까지 노 전 대통령을 희롱하고 모욕했다.

이번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이 박연차씨로부터 수백만불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을 하고, 그날 밤 혼자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 책임이란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서 그 한을 풀겠다고 지금 이 난장을 벌이는 것인가”라며 “적폐청산 내걸고 정치보복의 헌칼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을 즉각 중단하라”고 썼다.

▲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과 이정현 의원. ⓒ 연합뉴스
▲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가운데)과 이정현 의원. ⓒ 연합뉴스
정 의원은 노대통령의 죽음이 부부싸움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적시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불법, 탈법에 대한 수사를 ‘망나니 굿판’이라고 폄하했다. 드러나고 있는 국정원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를 하지말라는 주장이다.

정 의원은 자신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이 논란이 되고 법적대응에 직면하게 되자 부랴부랴 해명을 내놓았다. 그 해명의 논리가 궁색하고 설득력이 없다. 사회적 비난이 커지자 그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반박이지 노 전 대통령과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

해명이 나온 과정은 이렇다. 정 의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정원 제압문건이 드러난 것과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한 것’이라고 밝힌 것을 문제삼았다. 그는 “이 말은 또 무슨 궤변인가”라며 “노무현을 이명박이 죽였단 말인가. 노무현의 자살이 이명박 때문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여기서 그는 엉뚱하게 ‘부부싸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해명은 번지수가 틀렸다. 정 의원은 박 시장의 ‘정치보복’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부부싸움’이라는 허위사실을 제시했다. 반론도 되지 못했을 뿐더러 이는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유가족들에 대한 명예훼손이기도 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정 의원을 편들고 나섰다. 왜 이런 무모하고도 사회분열적인 현상이 반복될까. 적어도 세 가지 심각한 근본 원인이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 연합뉴스
첫째,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막말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봤을 때 손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기반은 대구 경상도 지역이다. 이 지역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까닭없는 증오가 여전하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말이 통용되는 곳이다.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까지 향하자 적폐청산에 대한 의제 분산용으로 여론압박을 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정 의원 스스로 이명박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어 사실과 다른 주장을 검증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이라면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흥분부터 하는 조중동도 있다.

둘째, 조중동의 허위보도로 득보다 실이 더 크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 이전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이미 심각한 명예훼손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2010년 3월 일선 기동대장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허위주장했다. 현직 경찰청장의 이런 주장은 삽시간에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에서 크게 다뤘다. 문제는 조 전 청장이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뒤에도 조중동의 보도는 계속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동아일보다. 동아는 2012년 5월4일자 보도에서 “조현오 전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 명의인지’ 다 까겠다”는 식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았다. 동아일보는 또 같은 날짜 다른 지면을 할애해서 “조현오 까겠다 발언 사실로 드러나면”이라는 가정법을 이용해 “조현오 파일 실제 존재한다면 대선판 전체 흔들 ‘뇌관’”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동아는 그 다음날인 2012년 5월5일 “노무현 차명계좌 다 밝히겠다” 발언 파문을 이어갔다.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과 동아의 희망은 조현오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허망하게 끝났다. 조현오는 8개월 징역이라도 받았지만 허위보도를 일삼은 동아는 아무 탈없이 더 과감하게 전임 대통령의 인격권을 말살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 2012년 5월9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 2012년 5월9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동아는 2012년 5월 14일 “노 차명계좌에 20억… 2004년 입금, 퇴임때 인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크게 다뤘다. 이것도 부족해서인지 채널 A를 동원, 단독영상이라며 “조현오, 권양숙 여사 비서계좌서 10억 발견”이라는 내용의 리포트를 보도했다. 결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인식에는 더욱 확고한 증오심을 심어줬다. 이런 터무니없는 정치적 주장을 했던 조중동에 대해선 법적책임도 묻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에 관한 한 인색하기 짝이 없다. 언론의 과다한 혹은 허위보도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그 사회에 매장되다시피 했지만 판결을 보면 하나같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 미디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법관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좁은 틀에 갖혀 사는 것 같다.

과거의 미디어는 잘못 보도한 매체에 대해 정정을 하는 식으로 정리됐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랐든 언론이 뉴스로 다뤘든 그 전파력은 이미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다. 한 언론사에 정정을 요구했더라도 이미 다른 매체, 해외로까지 퍼졌을 가능성도 있다. 지울 수도 없어 ‘잊혀질 권리’마저 사라졌다. 

전파의 속도와 범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여 더욱 신중한 보도가 요구되지만 판결을 보면 전임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도 겨우 실형 8개월, 여론 때문에 차마 집행유예는 해주지 못했을 정도다. 민사로 가서 승소하더라도 500~2000만 원 정도에서 덮어버린다. 판사나 검사가 허위보도로 피해를 한번 당해보면 판결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다. 

미디어 환경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3차산업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판결은 2차산업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판사들이 게으른 것인지 사법부가 언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법부 개혁은 또 다른 차원에서 숙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후진적 사회 구조와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조현오, 정진석 같은 혹세무민형 무책임한 인간들의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오염’ 당사자와 그를 부추기는 무책임한 언론 조직, 법 기관에 대해 동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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