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혼자 이 프로(리얼스토리 눈)를 할 수 있다고? 내가 있는데 어떻게 해 인마”  

“강남 아줌마들은 내 관점에 환장을 해”

“섹스하다가 여자가 막 헐레벌떡 침 흘리면서 흥분해, 근데 깨는 소리하는 거야 저게. 그런 그게 사정이 되냐? 어? 왜 느낌을 못살려 느낌을”

“해 오는대로 적당히 내버려두고 월급 받아 처먹고 사니까 좋냐?”

이는 19일 오전 한국독립PD협회와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가 목동 방송회관에서 공개한 녹취내용이다. MBC ‘리얼스토리 눈’의 한 정규직 PD가 외주제작사 취재진에게 내뱉은 욕설 중 일부다. 해당 발언은 2014년 3월부터 방송한 ‘리얼스토리 눈’의 시사실에서 녹음한 것으로 신분상 불이익 탓에 여러 루트를 통해 협회에 제보됐다고 협회 관계자는 전했다. 반말은 기본이고, 끊임없이 외주업체 취재진의 결과물에 대해 폄하하며 인신공격을 했다. 해당 프로그램 시사는 방송 3일전부터 하루에 3~5시간 정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독립PD협회가 배우 송선미씨 남편 장례식장에서 MBC ‘리얼스토리 눈’ 정규직 PD가 외주제작사에 ‘과잉취재’ 지시를 했다고 지난달 말 폭로했다. 그러자 MBC 측은 지난 1일 “‘리얼스토리 눈’ 제작진”명의로 “지난 3년6개월 동안 외주 제작사와 MBC의 협업 시스템을 통해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시사보도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 왔다”며 “무리한 취재를 지시하고 책임을 전가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에 19일 최영기 ‘방송사 불공정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방불특위)’ 위원장은 “제작진이라 함은 프로그램을 만든 모든 제작사·방송사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제작진 일동의 정체가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MBC 측이 함께 방송을 만든 외주제작사를 제작진으로 보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MBC는 입장문에서 이들을 “감정적 표현으로 (MBC를) 매도하고 있는 일부 단체”라고 표현했다.

▲ 독립PD협회와 MBC PD협회, 한국PD연합회 등은 1일 오전 서울 MB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리얼스토리 눈' 담당 CP가 과잉취재논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차현아 기자.
▲ 독립PD협회와 MBC PD협회, 한국PD연합회 등은 1일 오전 서울 MB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리얼스토리 눈' 담당 CP가 과잉취재논란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차현아 기자.

최 위원장은 ‘리얼스토리 눈’에서 벌어진 일을 폭로하기에 앞서 “우리는 특정 방송사의 특정 프로그램만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며 “대한민국 방송사 전체에 깔려있는 것 중 극히 일부분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수 방불특위 미디어연대분과장은 리얼스토리 눈에서 벌어진 부당한 일을 정리했다. 우선 취재처의 승인이 없는 곳에서도 촬영을 유도했다. 한 분과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는데도 끝까지 취재를 요구하면 무리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며 배우 송씨 남편의 장례식장에서도 몰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해당 프로그램은 716회 방영됐는데 다시보기가 삭제된 경우가 10%가 넘는 75건에 달한다. 예민한 부분을 무리하게 취재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그는 노동강도 역시 살인적이었다고 전했다. 해당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 당일인데 오전 시사 후에 수정, 심지어 추가취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한 분과장은 “신문으로 비유하면 초판 인쇄가 다 끝났는데 레이아웃을 다 교체하고 추가취재를 지시하는 것”이라며 “이런 일이 매주 반복됐다”고 말했다.

외주제작을 맡은 독립PD·방송작가 등은 업무만 떠안는 게 아니라 책임도 떠안아야 했다. 다음은 ‘리얼스토리 눈’ 외주제작 계약서 중 일부다.

“프로그램 제작부터 완성까지 제작의 전 과정에서 ‘을’의 귀책사유로 발생하는 모든 민형사상의 책임은 을에게 있다.”

외주제작사인 ‘을’이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제재조치를 받을 경우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의’ 조치를 받으면 300만원 ‘시청자에 대한 사과’의 경우 건당 3000만원 등을 ‘을’이 부담해야 한다. 법적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방송사의 태도는 냉랭하다.

MBC ‘리얼스토리 눈’ 독립PD들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모두 교정시설을 몰카로 촬영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복진오 방불특위 부위원장에 따르면 MBC 건은 재판이 금방 진행돼 독립PD들이 지난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SBS는 회사가 전사적으로 달라붙어 지난 13일 무죄판결이 나왔다. 같은 법원에서 난 다른 결과였다. 복 위원장은 “정권교체 이후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전제한다”면서도 SBS의 경우 본사 정규직 PD가 포함됐지만 MBC 건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외주제작사들을 경쟁시키는 행태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MBC의 한 PD는 독립PD협회 쪽으로 익명의 글을 보냈는데 “‘리얼스토리 눈’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거의 다 만들어온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회사는 그저 보류를 이야기하며 책임을 피했지만 이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외주사는 불방을 스스로 선택하고 적자를 떠안아야 했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도덕한 방식으로 취재해 더 재밌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라고 썼다.

실제로 배우 송씨 남편의 장례식장에 MBC는 두 팀의 외주제작사를 보냈다. 조금 더 선정적인 내용을 만들어오는 제작사의 것을 취하겠다는 의도였다고 이날 참가자들은 비판했다. 세 팀의 외주제작사를 한 현장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현장엔 갔지만 방송을 내보내지 못한 나머지 제작사들은 제작비를 받지 못했다.

MBC 측은 프로그램 경쟁력 확보를 이유로 다른 식의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다음은 ‘리얼스토리 눈’ 외주제작 계약서 일부분이다.

“프로그램 완성도 및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예정일시를 탄력적으로 조종할 수 있다. 신규제작사는 경쟁 방송사가 시청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요일 중 하루를 배정받아 방송을 진행한다.”

한 분과장은 ‘리얼스토리 눈’의 외주제작사는 평균 8개 내외였다고 했다. 하지만 8개 제작사가 규칙적으로 방송할 수 없었다고 한 분과장은 전했다. 계약서에 따라 외주제작사들은 언제 방송이 나갈지 모르는 상태로 과당경쟁을 버텨야 했다. 제작사가 교체될 경우 신규제작사는 시청률이 좋은 요일에 투입됐다. 그 시청률을 감당하라는 뜻이다. PD, 작가들이 3~4개월을 못 버티고 교체됐고, 심지어 한 번 작업을 하고 해당 프로그램을 떠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그는 전했다.

정규직 PD의 인신모욕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이를 용인하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익명의 글을 보낸 한 PD는 “(MBC 내 시사실에서) 욕설과 폭언이 한 시간 넘게 들린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며 “이런 게 현재 방송사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고 썼다.

김옥영 ‘방송 불공정관행 청산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제작사특대위)’ 상임고문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동반자적 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라며 “이 시점에 외주제작 생태계의 대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 콘텐츠를 우리가 모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MBC가 리얼스토리 눈 관계자를 중징계하고, 관계자들은 그간 프로그램을 제작한 모든 제작진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MBC가 향후 이런 갑질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MBC 내에서 외주제작사 언론인들은 MBC PD의 부당한 언행을 녹음해 여러 통로로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측에 제보했다. 다음은 개인정보를 제외한 녹취파일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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