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 SBS회장이 지난 11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소유와 경영의 완전분리도 선언했다.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사실이 노조를 통해 공개된 지 6일만이다. 윤 회장 사임 선언은 평가할 대목이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우선 소유와 경영 분리 ‘선언’만 있을 뿐 이를 구체화시킬 ‘실천방안’이 부족하다. 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일 뿐이다. 제도를 통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윤 회장은 소유·경영 분리 선언을 하면서 아들인 윤석민 SBS 이사회 의장이 SBS미디어홀딩스 비상무 이사직을 유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진정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윤석민 이사가 SBS 대주주인 SBS미디어홀딩스 비상무 이사로 있는 한 소유·경영 분리는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SBS 이사 임면권을 윤석민 이사가 행사하는 상황에서 소유·경영 분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구조라면 보도본부 간부들이 대주주 눈치를 보는 ‘관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가 윤 회장 사임 선언을 “미봉책에 불과한 대주주의 눈속임”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점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사임 선언이 처음이 아닌 것도 진정성 논란이 불거지는 또 다른 이유다. 이미 윤세영 회장은 지난 2005년과 2008년, 2011년에 소유와 경영 분리를 선언했다. 재허가 국면이나 지주회사 전환처럼 수세적 상황이나 본인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마다 윤 회장은 소유와 경영 분리를 매뉴얼처럼 들고 나왔다.

이번 선언 역시 올 연말로 예정돼 있는 지상파 재허가 심사를 의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보도·제작 중립성과 자율성을 중점 심사하겠다는 이효성 방통위원장의 발언을 고려한 ‘2선 후퇴’라는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반복해 왔던 소유·경영 분리 선언에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이 왜 나오는 지를 윤 회장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한계가 분명한 윤세영 회장의 소유·경영 분리 선언이지만 그래도 평가할 대목은 있다. ‘보도지침’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는 점이다. 윤 회장은 “우리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부득이 당시 정권의 눈치를 일부 봤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런 충정이 돌이켜보면 공정방송에 흠집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BS대주주 자격으로 구성원들과 시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사과입장을 밝힌 것이다.

윤 회장의 사과와 ‘2선 후퇴’를 KBS MBC 두 방송사 사장은 어떻게 봤을까. 공영방송 정상화를 요구하며 구성원들이 파업 중이지만 이들은 시청자는 물론이고 구성원들에게 사과는커녕 최소한의 유감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KBS와 MBC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도가 그나마 나았다는 평가를 받았던 SBS에서도 대주주가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BS가 이 지경이었다면 KBS MBC 상황이 어떠했을 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지 않을까.

그러나 KBS MBC사장과 경영진이 보여주는 행보는 매우 실망스럽다. 고대영 KBS사장은 사퇴를 촉구하는 직원들을 피해 다니느라 바쁘다. 사과는커녕 대화 자체를 피하고 있다. 그러면서 파업 관련 뉴스는 자유한국당 주장을 반영한 리포트를 내보냈다. MBC는 어떤가. 파업 관련 뉴스를 내보내면서 회사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 반영했다. 근거가 희박한 ‘정권의 방송장악’ 주장도 전파를 통해 일방적으로 내보냈다. 파업으로 방송차질이 빚어지고 있지만 사태를 해결할 수습방안도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 이들이 진정 공영방송사 경영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고대영 KBS사장과 김장겸 MBC사장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시청자와 구성원들에게 사과하고 하루 빨리 자진사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자유와 보도공정성을 후퇴시킨 ‘언론인’이 뒤늦게나마 국민에게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