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신 고객님 댁으로 머슴을 빌려드립니다. 인터넷 관련 전기선 정리, 몰딩 작업을 무료로 해드립니다.”

KT가 홍보 전단지에 인터넷 설치·수리기사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오독될 수 있는 ‘머슴’ 표현이 기재돼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관계자는 오해라고 해명을 했지만 일부 기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현장 기사들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8월31일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5단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견된 KT세종지점 홍보전단지.
▲ 8월31일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5단지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견된 KT세종지점 홍보전단지.

문제의 전단지는 31일 세종시 보람동 호려울마을5단지 아파트 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KT 통신서비스 가입을 홍보하는 전단지로 하단에 ‘KT 세종지점’ 명의가 박혀있었다. ‘머슴’ 문구는 ‘아로마 수제 비누세트 증정’, ‘최신 휴대폰 교체 지원’ 등 가입 고객에게 주는 혜택 사항 아래에서 발견됐다. ‘인터넷 관련 전기선 정리’, ‘무료 몰딩작업’ 등의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가입하신 고객님 댁으로 머슴을 빌려드립니다”고 적은 것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오후 동안 KT 설치·수리기사들은 분노로 부글부글 끓었다. 현장기사 간 논의 사항을 전해 들은 손일곤 KT새노조 사무국장은 “카카오톡 단체방 등에서 ‘이런 대접 받아야 하냐’ ‘엔지니어가 노예냐’ ‘조선시대도 아니고’ 등의 말이 오갔다”며 “현장 직원들이 분개 중”이라고 말했다.

한 현장기사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그는 진정 후 부여받은 번호를 현장기사 단체 카카오톡 방에 공개하며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냐. 내가 먼저 넣을 테니 다들 진정을 넣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단지를 제작한 A씨는 “영업을 하는 개인사업자를 지칭한 것이지 설치기사들을 지칭한게 절대 아니”라고 해명했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KT 세종지점으로부터 인터넷 가입 홍보 업무를 도급받은 A씨는 “영업자 동료 중 한 명이 전기일을 했다. 뭐가 더 경쟁력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전기일을 할 줄 아니 우리가 케이블타이로 전기선을 정리해주고 몰딩 작업을 해드린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 한 KT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사진=KT 관계자 제공
▲ 한 KT 인터넷 설치·수리 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사진=KT 관계자 제공

해당 전단지는 개인사업자들을 관리하는 KT세종지점 직원이 확인한 전단지였다. 이와 관련해 KT 관계자는 “KT지점이 제작한 게 아니라 판매점에서 합의없이 자체 제작한 전단지로 확인됐다”며 “그렇다해도 관리 책임이 있으니 현재 모든 전단지를 회수했고 사칭한 판매처에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계자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장 기사들의 흥분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일부 현장 기사들은 이번 논란으로 열악한 처우, 살인사건에 대한 미흡한 대책 등으로 누적돼 온 불만이 동시에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기사들이 스스로를 ‘한노자(외국인노동자 비하어인 외노자에서 한국인을 붙인 조어)’라고 부르는 분위기가 형성된 와중에 사측에 대한 괘씸함이 배가됐다는 것이다.

손 사무국장은 “현장 기사들이 불만이 집중적으로 터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름에 장마가 오면 (통신 설비) 고장이 많이 발생한다. 토·일요일을 다 일하고 그 다음주 토요일까지 일할 때가 발생하는데 13일을 스트레이트로 일하는 것”이라며 “평일에도 저녁 8~9시까지 일하는데 초과 근무에 대한 대가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17일 충주 인터넷 설치기사 살해사건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도 불만을 키운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손 사무국장은 “이런 상황에서 (기사들이) KT 그룹에 인권이나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불만으로 ‘무급봉사’라는 말이 나도는데 거기다 대놓고 머슴이라는 비하 문구가 나오니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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