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일컫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론 언급하기 싫은 단어 중 하나다. 모두가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적절한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선 의미가 없는 까닭에서다. 최근 농업 분야에서도 문제 해결 시기를 놓쳐 큰 사건이 발생했다. 계란 살충제 파동이다. 사실 이 문제는 지난해부터 알을 낳는 닭(산란계)을 키우는 농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8월 산란계 농가를 취재하던 중 경기도 내 일부 농가들이 닭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를 사용했고, 이를 친환경 약품을 판매하는 업체가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산란계 농가들이 정부에 효력 있는 친환경 닭 진드기 방제 약품 개발을 요구한다는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정확히 1년 뒤, 국내산 계란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제주도 관계자들이 8월21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의 한 농장창고에서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경기도산 ‘08광명농장’ 표기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제주도 관계자들이 8월21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의 한 농장창고에서 살충제 성분인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경기도산 ‘08광명농장’ 표기 계란을 폐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언론에서는 경쟁적으로 계란 살충제 검출 사태를 다뤘고, 국민의 불안감과 배신감은 커졌다. 결국,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출석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산란계 농가의 위생관리 강화를 약속했다.

이를 보는 산란계 농가들의 심정은 복잡했다. 산란계 농가들은 그동안 살충제 살포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와 국회에 해결 방안을 꾸준히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들은 안전하지 못한 계란을 생산한 부도덕한 집단이 됐기 때문이다. 또 이를 무시했던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이 불거질까 봐 산란계 농가에 더 큰 압박을 가했고, 농가들은 죄인인 까닭에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언론에선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동물복지 농장이다. 밀집형 케이지 사육이 닭 진드기 문제를 일으켰지만, 닭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키우는 동물복지 사육은 닭 진드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도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현행 전체 사육 대비 8% 수준의 동물복지 인증을 3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산란계 농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할뿐더러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란계 농가들은 동물복지 인증 비율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지금의 밀집 사육이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가들이 섣불리 동물복지 사육으로 전환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동물복지 사육 시 지금보다 계란 가격이 3배가량 높아지는데 소비자들의 지불 용의가 불확실하고, 제과나 제빵의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내산 계란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 계란 수입량이 증가하면 자급률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환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게 농가들의 반응이다.

농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은 채 여론에 휩쓸려 실효성 없고 단발적인 정책만 내놓는 정부의 행태다. 어느 산란계 농가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문제의 핵심인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닭 진드기를 제거할 방안 마련은 빼놓고 부차적인 요소에만 집중하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 안형준 한국농어민신문 산업부 축산팀 기자
▲ 안형준 한국농어민신문 산업부 축산팀 기자
이번 계란 살충제 검출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또다시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쳐 국민의 먹거리 안정성은 물론 산란계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결과를 낳았다. 부디 이번 정부에서는 골든타임이 의미 없는 단어가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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