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 신문 갖다 바치고 방송 갖다 바치고 조카 구속시키고 겨우 얻은 자리가 청와대 특보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주어는 생략됐지만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을 겨냥한 발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는 지난 19일 공식입장을 내어 홍 전 지사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거부할 경우 법적 대응 방침도 밝혔다.

홍 전 지사 발언을 쉽게 풀면, 지난 대선에서 중앙일보와 JTBC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편파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선 이후 그 보답으로 홍석현 전 회장이 청와대 특보직을 얻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사실과 다를 뿐더러 근거도 없다.

▲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사진=중앙일보 제공
▲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사진=중앙일보 제공
몇 가지 여론조사만 보더라도 홍 전 지사 발언은 쉽게 반박된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2015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총 여덟 번의 방송사 신뢰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가장 신뢰도가 높은 방송사는 JTBC였다. 다른 여론조사도 결과는 비슷했다. 지난 4월 프레시안·리서치뷰가 실시한 조사에서 JTBC는 가장 공정한 방송으로 꼽혔고, 지난해 한국갤럽이 실시한 뉴스선호도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만약 JTBC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편파보도를 했다면 국민들의 이런 압도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신문 갖다 바치고 방송 갖다 바치고’라는 그의 발언이 얼마나 근거가 빈약한 정치공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과 다른 발언을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막말에 가깝다는 점이다. 대선까지 출마했던 유력 정치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뢰도 높은 언론사를 근거 없이 폄훼해도 되는 것일까. 홍 전 지사가 내뱉는 표현과 수위의 저급성은 이미 지난 대선을 거치며 일정 부분 확인된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대선 이후에도 그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인은 박근혜 한 명으로 족하다.

언론사 사주가 정치권으로 가는 것이 온당하냐는 지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만약 홍 전 지사가 이런 점을 지적했다면 최소한 귀담아 들을 여지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태블릿PC 보도 등 국정농단 사태를 집중 보도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던 JTBC 기자들을 사주를 위해 일하는 ‘하수인 정도’로 취급하는 발언을 했다. 그럼 JTBC에게 박수를 보낸 많은 국민들도 홍석현 전 회장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얘기인가. 홍준표 전 지사의 발언을 묵과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홍 전 지사보다 더 한심한 것은 언론이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홍 전 지사는 “여론조사는 자기들끼리 짜고 한다. 내가 집권하면 없애버린다” “종편 허가권이 정부에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 종편을 절반으로 줄여버리겠다”와 같은 상식 이하의 발언을 대놓고 했다. 물론 정치인도 여론조사와 종편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홍 전 지사는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사를 향해 협박성 발언을 했다. 차원과 맥락이 다르다는 얘기다.

▲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사진=노컷뉴스
▲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사진=노컷뉴스
이런 상황임에도 당시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홍준표 후보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많은 언론이 공방과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홍준표발 막말’을 유통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홍준표 전 지사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막말을 자신의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고 언론은 또 그걸 중계보도 하고 있다.

이번 홍 전 지사 막말 파문은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과도 다르고 근거도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점을 지적하면 된다. 하지만 상당수 언론은 홍 전 지사와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측의 입장을 공방으로 처리하고 있다. ‘양측 갈등 더 치열’과 같은 제목의 기사도 보인다. 중앙일보가 20일자에 한 면을 할애해 홍 전 지사를 비판한 것에 동의할 순 없지만 대다수 언론의 중계보도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정치인 막말’에 공정과 객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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