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아, 니가 먼저 갈래 내가 먼저 갈까.”

지난 4월26일 성주에 사드가 들어오고 난 후 어느 날, 마을 주민 한 사람이 말했다. 소성리 마을회관에서 밥을 먹고 그릇을 반납하려는 차였다. 행주를 빨던 다른 주민이 그 말을 듣고는 그런 말 꺼내지도 말라며 주민을 향해 행주를 팡팡 털었다. 무슨 말인가 했는데, 그들의 씁쓸한 얼굴을 보곤 뒤늦게 이해했다.

대통령이 바뀌고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시름에 찼던 소성리 주민들의 얼굴은 이제 기대 반 불안 반으로 바뀌었다. 길을 막던 경찰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밭에 갈 때도, 묘지에 갈 때도 신분증을 내라던 경찰은 주민들의 인권위 진정에도 꿈쩍 않더니, 검경 수사권 논란이 일자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평생 다니던 길을 막던 경찰에 가슴이 답답하던 주민들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누그러트렸다.

사정이 나아졌다고는, 말 못 하겠다. 여전히 매일같이 헬기가 뜬다. 여전히 국방부는 주민들이 호소하는 여러 피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깜깜이 사드 운용 때문에 불안에 떠는데도 주민들을 찾는 책임자는 없다. 마을회관 앞 감시초소를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기엔, 돌아갈 일상이 없다. 이제는 사드가 안방 주인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는 이미 들어와서 기름을 먹고 있는데, 환경영향평가를 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감시를 그만두면 군인들은 트럭으로 거침없이 기름을 나르지 않을까. 그것은 사드를 묵인하는 것은 아닐까. 주민들의 고민이 꼬리를 문다.

주민들은 키를 쥐고 있는 국회를 믿고만 있을 수도 없다. 사드 보고 누락 사태로 대통령의 권위가 무시되자 여론은 분노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사드 특위가 관련 국회 청문회를 요구하긴 했지만, 당 차원의 요구는 아니었다. 5일 더불어민주당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사드 보고 누락 사태의 책임자 처벌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태의 원인인 사드 배치 자체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7월 사드 성주 배치 발표 이후 단 한 번도 당론으로 사드 배치에 대해 입장을 밝힌 적 없다.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적법한 환경영향평가를 지시하는 와중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보고 누락 사태에서 ‘발을 뺀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 갈피를 못 잡는 동안에도 주민들은 사드 배치가 발표된 지난 7월13일부터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우고 있다. 최근 들어 뒤바뀐 여론과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도 머리 맞대고 고민 중이다. 사드를 막기 위한 성주의 싸움은 단지 성주 안의 다툼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은 미 대사관으로, 국회로, 청와대로 가서 호소한다. 김천 어린이들과 부모 50여 명이 지난 3일 청와대를 향했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전했다. 한반도에 사드가 필요 없다고 호소한다. 그 호소에 대한 답을 ‘환경영향평가’로 갈음할 수는 없다. 사드 철회를 원하는 이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이유다.

지난 대선 이후 성주의 투표 결과에 분노하는 이들이 많았다. 사드에 반대하는 성주 주민들은 그 분노를 이해하고 함께 가슴 아파했다. 시간이 지나며 이제 그 분노는 엉터리로 사드를 들여온 국방부를 향해 있다. 사드에 올라타서 웃으며 주민들에게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댄 주한미군을 잊어서도 안 된다.

▲ 박중엽 뉴스민 기자
▲ 박중엽 뉴스민 기자
주민들은 지난 정부를 뒤집은 촛불의 힘을 기억한다. 박근혜 정부의 권력에 맞서 함께 뭉친 시민의 힘을 체감했다. 사드 반대가 옳다면, 옳은 것을 행하면 된다. 옳은 것을 행하는 시민들의 힘이 셀 때, 주민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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