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은 ‘팩트체크 대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JTBC 대선자문단 8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 따르면 ‘후보선택을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많이 고려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9%가 ‘팩트체크 등 언론보도’라고 답했다. ‘가짜뉴스’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불거졌고, 언론은 앞 다퉈 후보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는 ‘팩트체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후보들은 토론에서 “팩트체크를 보라”며 팩트체크 결과를 공격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팩트체크’는 만능이 아니다. 의혹이 불거지면 ‘사실’과 ‘거짓’으로 단정하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으며 통계의 경우 ‘대상’과 ‘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누구의 발언을 팩트체크할 것이냐’부터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검증은 필요하지만 한 언론사의 팩트체크를 신봉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함정1. 누구의 발언을 ‘팩트체크’할 것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결정하는 건 언론이다. 어느 후보의 발언을 검증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기사가 나오기도 한다.

지난달 20일 SBS와 JTBC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70억 달러를 북에 줬다”는 홍준표 후보의 문제제기를 검증해 ‘거짓’이라고 결론 냈다. 반면 조선일보는 21일 “‘北에 준 돈,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더 많았다’는 文의 주장은…”을 통해 “오히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준 돈이 더 많다”는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검증했고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조선일보의 팩트체크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 후보 ‘팩트체크’가 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홍준표 후보 17건, 안철수 후보 14건, 유승민 후보 10건, 심상정 후보 3건으로 나타났다. 지면보도 반영 비율 역시 문 후보가 41%(9건)에 달한 반면 두 번째로 많았던 홍준표 후보는 3건에 그쳤다.

▲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TV토론회에 앞서 투표참여 독려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국회사진취재단.
▲ 문재인(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TV토론회에 앞서 투표참여 독려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국회사진취재단.

민언련은 “조선일보가 ‘검증하려고 한 이슈’ 자체가 편향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 ‘팩트체크’ 사이트는 안철수 후보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부인 특혜 채용’은 다루지 않은 반면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예비 내각 명단 관련 지라시’, ‘전두환 표창’, ‘여론조사 양자구도 비판’ 등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주목받지 않은 이슈까지도 집중적으로 검증했다는 것이다.

함정2. ‘모호’한 걸 노리는 후보와 이를 이용한 언론

토론회 때마다 ‘가짜뉴스’에 가까운 문제적 발언을 쏟아낸 홍준표 후보의 주장은 막상 검증하게 되면 ‘완벽한 거짓’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컨대 “동성애가 국방 전력을 약화시킨다”는 홍 후보의 발언은 사실은 아니지만, 판단하기 모호한 측면이 있어 JTBC는 ‘판단유보’를 내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대학 등록금을 자율화해서 등록금 113% 올랐다”는 홍 후보의 주장은 거짓과 사실을 섞은 것으로 조선일보는 ‘사실 반 거짓 반’을, 중앙일보는 ‘일부만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애초에 대선 토론회에 나온 주장이나 각 캠프의 네거티브는 △정황은 있지만 명백하지는 않은 상태에서 의혹을 제기하거나 △사실과 거짓을 뒤섞거나 △단순화해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이나 ‘거짓’으로 명백하게 결론을 내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 후보도 이 같은 점을 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 SBS 8뉴스의 팩트체크 코너 '사실은'
▲ SBS 8뉴스의 팩트체크 코너 '사실은'

상황이 모호한 만큼 언론의 ‘자의적 판단’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는 점도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았다”, “권양숙 여사가 받은 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는 식의 홍준표 후보의 잇따른 발언은 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수사가 종료돼 명확한 사실을 알 수 없다. TV조선은 “수사기록을 다시 꺼내봐야만 확인할 수 있다”면서 유보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당시 수사진행 상황, 증언 등을 토대로 ‘가능성’이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홍 후보는 지난달 25일 “일심회 간첩단 수사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장을 불러 수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면서 “(관련자가) 문 후보 측 진영 사람들이 많아서 수사를 못 하게 한 것”이라고 말하며 위키리크스를 근거로 들었다. JTBC·동아일보는 위키리크스에 이 같은 주장을 단정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정황이 있다는 이유로 ‘일부만 사실’이라고 결론 냈다.

함정3. ‘기간’ ‘대상’에 따라 춤추는 통계

지난달 19일 토론회 때 홍준표 후보의 대북송금 문제제기가 논란이 됐다. 홍 후보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70억 달러를 북한에 돈을 줬기 때문에 그 돈이 핵이 돼서 돌아온 것”이라며 “DJ 시절에 북에 넘어간 돈이 현물과 달러 등 22억 달러,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현물하고 현금하고 넘어간 게 44억 달러”라고 주장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홍 후보의 주장은 ‘사실’이자 ‘거짓’이다. 지난달 20일 JTBC는 홍 후보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JTBC는 “김대중 정부 때는 약 16억 3000만 달러, 노무현 정부 때는 약 23억 3000만 달러”라며 “홍 후보가 언급한 22억 달러와 44억 달러는 부풀려진 수치”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21일 조선일보와 23일 한국일보는 홍 후보의 말이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근거는 통일부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자료다. 김대중 정부 시절 24억7065만 달러, 노무현 정부 시절 43억5632만 달러로 홍 후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JTBC는 통일부가 2010년 발표한 자료를 바탕으로 ‘팩트체크’를 했지만, 통일부는 토론 다음날인 20일 다른 수치를 내놓았고, 언론이 이를 바탕으로 다시 ‘팩트체크’하면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통일부는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서 이전과 달리 ‘북한과의 민간 교역, 위탁 가공 금액 약 20억2천만 달러’를 새로 포함시켰다. 민간 교역, 위탁 가공금액은 국내 민간기업들이 북한 기업과 이뤄진 상거래 금액을 말한다. 또한 70억 달러에는 현물까지 포함된 것이어서 돈이 넘어갔다고 말하긴 어려워 정확히 말하려면 액수를 39억 달러로 조정해야 한다는 팩트체크(SBS)도 있었다.

▲ 조선일보의 팩트체크 사이트.
▲ 조선일보의 팩트체크 사이트.

조선일보는 “통일부가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통일부가 대선 국면에서 이전과 다른 통계를 발표한 것도 문제지만, 이 사안은 ‘통계’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북한에 준 돈’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기관도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초 JTBC 토론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원책 변호사가 ‘법인세 실효세율’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법인세율을 책정하는 여러 기준 중 각자의 논리에 맞는 통계만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함정4. ‘맥락’이 빠진 단편적 사실의 왜곡

‘팩트체크’가 단순히 후보자 발언의 사실여부만 판단하면서 맥락을 함께 전달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과도한 대북송금’ 논란의 경우 액수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정부에서 북한에 ‘퍼주기’했다는 홍준표 후보의 프레임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발언을 ‘팩트체크’를 한다고 해도 무역 교류로 인해 한국이 얻는 효과를 비롯해 평화유지를 통해 얻는 무형의 이익은 계산되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소득대체율 인상 여야 합의여부’ 논쟁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 조선일보, KBS는 ‘합의한 적 없다’고 주장한 유승민 후보의 입장을 ‘사실’로 판단했지만 한국일보는 정반대인 ‘거짓’으로 판단했다. 여야의 최종 합의문에는 소득대체율 관련 내용이 없어 한국일보가 틀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회 합의’ 당시에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내용이 합의문이 담겼다. 이후 정부가 반발한 후 자유한국당이 입장을 번복해 최종안에는 빠진 것이다. 한국일보는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문 후보의 주장을 ‘사실’로 판단했다.

지난달 23일 홍준표 후보는 “문 후보는 왜 성완종을 두 번이나 사면을 해줬느냐” “맨입으로 해줬나”고 공격했다. 그러나 당시 성완종씨의 사면을 요구한 건 다름 아닌 자유한국당이다. 조선일보 역시 총평에서 “자민련·한나라당·이명박 당시 인수위 등의 요청에 따라 사면 대상에 대한 ‘여야 균형’을 이룬 것이란 설명이 많다”면서 맥락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2번 사면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홍 후보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판정됐다. 마치, 참여정부가 대가를 바라고 성완종씨를 사면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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