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이번엔 현대중공업의 기업분할을 위한 주주총회에서 찬성표를 행사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이어 또다시 재벌 지배력 강화에 동원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2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사를 현대중공업(조선·해양),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등 4개 법인으로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대중공업의 기업분할은 분사를 통한 구조조정의 우려와 함께 이른바 ‘자사주를 활용’해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확대하는 경영권 승계의 일환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문제는 현대중공업의 3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8.07%)이 이번에도 기업분할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28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앞서 27일 임시주주총회에 상정된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로봇 등 4개 회사로의 ‘분할계획서 승인’과 ‘분할 신설회사의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총 2개의 안건은 각 98%(3866만 주), 95%의 압도적 지지로 통과됐다고 문화일보 등이 보도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현대중공업측이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의결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기수 현중지부 정책부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후 알아보니 주총장 현장에서 투표할 때 국민연금 등으로부터 의결권 위임을 미리 받아놓은 것으로 안다”며 “회사 측은 기관투자자 중 외국인투자자, 대주주, 국민연금 등도 찬성했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박 부장은 “우리가 주총 2주 전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측에 가서 분할에 반대해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했다”며 “국민연금의 기금은 국민 노후자금을 위해 운용하는 것인데, 재벌 경영승계에 이용당하지 말고, 분할을 반대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찬성을 행사에 우리도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현대중공업 분할 찬성표 행사에 대해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국민행동과 민주노총, 한국노총은 2일 오후 성명을 내어 이번 회사 분할의 진짜 의도는 ‘경영 효율화’가 아니라 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여 지배체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이 놓여 있다며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정몽준 일가의 편법적인 현대중공업 지배력 강화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 지난달 27일 울산한마음회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주주총회. 사진=현대중공업 사이트
▲ 지난달 27일 울산한마음회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임시주주총회. 사진=현대중공업 사이트
특히 이번 현대중공업 분할은 이른바 기업을 분할하면서 동시에 갖게 되는 자사주를 통해 정몽준 일가의 의결권을 확대해주는 묘수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지부 측에 따르면, 이번 분할로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 13.4%에 대해 분할되는 기업 중 하나인 현대로보틱스가 인수한다. 이 현대로보틱스는 이와 함께 현대중공업의 부채 2조원도 함께 인수한다. 현대로보틱스는 분할되는 회사들의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공시했다. 자사주는 상법상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가진 자사주를 지주회사인 현대로보틱스가 인수하면 의결권이 생긴다. 현대로보틱스의 대주주는 정몽준 회장(10.15%)이며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에 대해 의결권이 없던 13.4% 만큼의 의결권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결국 정몽준 회장의 지배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연금행동과 민주노총 등은 “기업 분할 과정에서 대주주의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며 “분할된 6개사 중 현대로보틱스가 지주회사가 되면서 현대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13.4%를 그대로 넘겨 받는다. 최대 주주인 정몽준 일가의 현대중공업 지배력이 13.4%만큼 늘어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 같은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연금행동 등은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가입자, 가입자였던 자 및 수급권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신의에 따라 성실하게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하여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번에도 의결권 행사지침을 충실히 수행했는지 회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의 분할 찬성을 두고 이후 막대한 인력 구조조정, 분할사 이전으로 노동자의 삶을 뿌리째 흔들고 지역경제 침체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사회적 결정에 가깝다며 정몽준 일가의 기업 지배력 독점을 강화함으로서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지배구조 왜곡을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기업지배구조 투명성을 고려한 책임투자 원칙에도 반하는 결정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최경진 국민연금공단 노조위원장(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장)은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 입장은 재벌2세들이 자기 지배구조 강화하기 위해 합병 분할하는데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데에 우리가 수익만을 쫓는 결정에 반대한다”며 “의결권 행사를 수익률 위주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국민연금이 자꾸 재벌 편들면서 왜 돈은 우리한테 가져나갸는 국민저항이 커지기 시작하면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며 “향후 이 같은 의결권 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사진=현대중공업지부
▲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신문 1면에 실린 사진. 사진=현대중공업지부
구창우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국민행동 사무국장도 이날 “국민연금은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생기면 생길수록 가입자가 준다는 면에서 이런 구조조정이 우려되는 결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번 결정을 국민연금의 사회적 책임에 맞는 의결권 행사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외소통팀 관계자는 2일 “이번 건에 대해서는 내부적 방침이 개별 투자건 의결권 행사에 대해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찬성을 밝혔다는 것 자체도 언론에 보도된 것만 보고 찬성한 줄 아는 것일 뿐 주총 의결권 행사 보름 후 공시하기 전엔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 국민연금 홍보 영상 갈무리
▲ 국민연금 홍보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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