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확정한 ‘내년 4월말 퇴진’을 받아들이는 것, 오늘자 조선일보의 가이드라인이다. 조선일보는 1~2면에 걸친 소설가 이문열의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대통령이 4월 퇴진론을 받아들 필요가 있고, 그것이 보수세력이 새롭게 태어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비슷한 입장이다.

야권은 조기대선 등 향후 예상되는 정국의 주도권을 다투기 위해 서로 싸우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다른 야당과 협의 없이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회동했지만 퇴진시점에 합의하지 못했다. ‘공조’를 깼다는 걸 빌미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표결에 제동을 걸었고, 비난이 일자 5일 표결로 진화에 나섰다.

‘4월 퇴진론’에는 특검 결과를 기다려본 뒤 공소장에서 반전의 기회를 찾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캐스팅보트를 쥔 비박계까지 탄핵에 가세할 경우 대통령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날 수 있고 보수세력 입장에서는 향후 대선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게는 4월까지 버티며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려는 의도도 보인다.

다음은 2일자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덫’에 걸린 탄핵…분노한 민심 “가자, 여의도로”>
국민일보 <“탄핵한다 카는데 여는 와 오노?”>
동아일보 <촛불 민심에 떠밀린 野, 탄핵 우왕좌왕>
서울신문 <野‘오늘탄핵’ 불발…與‘4월 퇴진’ 당론>
세계일보 <멈춰선 ‘탄핵시계’>
조선일보 <탄핵 2일→9일→5일?…혼돈의 野>
중앙일보 <‘개인’ 박근혜 35일 만의 외출 탄핵 정국 속 서문시장 방문>
한겨레 <촛불에 등돌린 정치>
한국일보 <꼬여버린 탄핵 정국…오늘 처리 무산>

▲ 2일자 경향신문 만평

야권 분열, 덫에 걸린 탄핵

야3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기로 했던 2일 상황을 요약해주는 것은 오늘자 경향신문 3면 기사 제목인 “야, 조기대선 주도권에 눈멀었나…청 ‘계략’ 알고도 휘말려”이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로 (야권에) 함정을 찼다”고 말하며 이 상황을 예견했다. 많은 언론도 이 상황을 우려했지만 현실화됐다.

야당이 탄핵소추안 본회의 의결을 계획했던 2일 오전 추 대표와 김 전 대표는 한 호텔에서 깜짝 회동을 했지만 추 대표는 1월말 퇴진, 김 전 대표는 4월말 퇴진으로 이견만 확인했다. 국민의당은 추 대표를 향해 야3당 공조를 무시했다며 반발했고, 비박계가 9일 탄핵안 표결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낮다며 민주당의 2일 표결안을 부정했다. 이에 경향신문은 “탄핵 이후 조기 대선경쟁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 ‘4월 퇴진’ 받을까

조선일보는 사설 “박 대통령 ‘4월 퇴진’ 표명하면 국가 위기 고비 넘는다”를 통해 “4월은 여야를 망라한 정계 원로들이 정한 퇴진 시한”이라며 “남은 것은 대통령이 새누리당 요구대로 9일까지 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해 밝히느냐 여부”라고 주장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비박계에서 ‘4월 퇴진·6월 대선’에 합의했으니 탄핵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점도 강조했다.

▲ 2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야당을 향해 “박 대통령이 자진 퇴진하겠다고 하고 여당이 그 퇴진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하고 야당과 퇴진 시기를 협의하자는데 그것마저 거부한다”며 “협상마저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여야 타협으로 문제를 푼다’는 모습 자체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야당이 여당과 타협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시위세력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하지만 “대중은 책임이 없다”며 “책임있는 정당, 집권을 목표로 한 정당은 이런 반발을 짊어지고 국회에서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안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조선일보는 “며칠 더 있어도 야당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그때는 국민 앞에 ‘4월 퇴진’을 밝혀 국정 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며 “국회 추천 거국 총리에게 대선까지 국정 전반을 맡기겠다는 뜻도 함께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박 대통령이 이 선택을 실제 받아들일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제 촛불도 필요가 없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4월 퇴진’을 받더라도 “야당은 공격할 것이고 촛불 시위도 계속될 것”이라며 “그러나 그 이후의 시위와 공격은 더 이상 순수한 시민들의 평화적 항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본심은 1~2면에 걸쳐 기고한 소설가 이문열의 칼럼에서 엿볼 수 있다. 이문열은 “죽어라, 죽기 전에.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 힘들여 자라가기를. 이 땅이 보수세력 없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너희 시대를 만들 수 있기를”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을 향해 ‘죽이기 전에 사심을 내려놓으라’는 말로 해석된다. 목표는 보수재집권이다.

중앙일보도 사설 “야, 즉각 협상…박 대통령 4월 하야 선언하길”을 통해 “박 대통령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애국적 결단을 해야한다”며 “박근혜 정권은 이미 수명을 다했지만 대한민국은 포스트 박근혜 체제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2일자 중앙일보 사설

온도차는 있지만 서울신문도 사설 “수용할 만한 ‘선 4월 퇴진, 후 9일 탄핵’”에서 “박 대통령은 지금 질서 있는 퇴진과 탄핵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화합을 위해서도 탄핵보다는 질서 있는 퇴진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4월 퇴진, 왜?

그렇다면 4월 퇴진론의 배경은 무엇일까? 세계일보는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에게 ‘질서 있는 퇴진’의 문을 열어주는 동시에 초읽기에 몰린 ‘탄핵정국’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며 “탄핵을 통한 불명예 퇴진은 박 대통령과 운명공동체인 집권여당에도 대선 기간 내내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청와대와 친박의 교묘한 역습”이라고 표현했다.

4월 퇴진론을 통해 탄핵정국에서 벗어날 경우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여당은 시간을 벌 수 있다. 경향신문은 “현재 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다 합쳐도 10%가 안된다”며 “내년 1월 중순쯤 귀국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보수진영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 국내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 신문은 “탄핵이 불발되면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벌면서 탄핵정국을 단숨에 개헌정국으로 바꿀 수 있다는 노림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에게도 기회가 생길 여지가 있다. 국정조사 기간은 내년 1월15일까지 60일이지만 국회의결로 30일 연장이 가능해 2월 중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이 수사를 마무리하는 시점은 내년 3월말이다. 경향신문은 “특검과 국정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혐의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고 봤다.

▲ 2일자 한겨레 만평

조기대선의 단점들

경향신문은 야권이 조기대선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눈이 멀어, 대통령 3차담화 이후 야권 분열을 예견했음에도 막지 못했다고 봤다. 조기대선이 야권에게 유리하고, 바꿔말하면 보수진영에서는 조기대선을 막을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는 5면에서 조기대선의 단점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원래 대선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꾸려 이듬해 2월25일 취임직전까지 약 두달간 운영된다. 하지만 조기대선은 공직선거법 14조 ‘궐위로 인한 선거에 의한 대통령의 임기는 당선이 결정된 때부터 개시된다’는 조항을 근거로 인수기간을 만들기 부적절하다는 게 조선일보의 설명이다.

대선 전에 예비내각을 구상해야 하고 장관 임명 등 조각과정이 한달은 걸릴텐데 급하게 정권이 창출되면 공백이 생길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때까지 국무회의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 장관들이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또한 대선을 보궐선거 형태로 일찍 치른다면 현행법상 재외 국민은 투표할 수 없다고도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질서있는 퇴진’이 합의돼 내년 6월쯤 대선을 해도 선관위로선 (재외국민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촉박하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이 1월말 퇴진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설명했다. 추 대표가 1월말 퇴진을 언급한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내년 1월말이면 탄핵 심판의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수웅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조선일보에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때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둘러싼 사실관계에 다툼이 적었고, 노 대통령 측도 부인하지 않아 헌재가 따로 확인할 부분이 거의 없었다”며 “그랬는데도 63일이 걸렸는데 사실관계가 복잡하고 박 대통령이 범죄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이번 사건은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도 한 인터뷰에서 “밤새워서 하면 두 달 안에 이룰 수 있다고 본다”고 한 것도 전했다.

시간 번 정권, 국정교과서에 힘 싣기

조선일보는 8면 “주체사상 넣고, 천안함 빼고…左편향 검정교과서 계속 써야하나” 기사를 통해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내년 신학기부터 적용한다는 원래 계획을 재검토하면서 내년에는 결국 좌편향 논란이 있는 기존 검정 교과서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 2일자 조선일보 8면 기사

색깔론을 통한 정치공세를 통해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일부 교과서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체제 선전용 자료를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며 “6·25전쟁 원인을 오해할 수 있게 서술한 교과서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좌편향’ 교과서를 채택하고 국정교과서를 금지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비판이 따라붙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조 교육감은 내년 1학년 역사 과목을 편성한 18개 중학교 교장들을 불러 1시간 동안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유했다. 광주와 전남교육청도 “학교들이 내년에 역사 과목을 편성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는 사설 “조희연, 새 역사 교과서 읽어나 보고 원천 봉쇄 나선 건가”를 통해 “새 교과서 검토본을 한쪽에서는 ‘박근혜 교과서’라고 비난한다”며 “검토본에서 1960~70년대 서술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박정희만을 특별히 미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우려먹기다. 조선일보는 “현재 상당수 고교가 쓰고 있는 한 검정 교과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딱 한 장 나온다”며 “반면 다른 어느 대통령 사진은 민주화 운동 때나 남북정상회담 때의 활짝 웃는 모습 등 4장이 실렸는데 이는 공정하고 균형있는 서술인가”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조 교육감에 대해 “교육과정 편성·운영권과 교과서를 선정할 권한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가 갖고 있는데 서울 교육청이 이미 주문한 교과서를 주문 취소하도록 한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고, 조선일보는 교육계 관계자의 말을 빌어 “교육부가 진보 교육감들의 월권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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