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번 촛불집회 국면에서 흥을 돋우는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민석씨의 '이게 나라냐ㅅㅂ' 뿐 아니라 조PD, MC메타, 산이 등 래퍼들도 ‘시국랩’을 통해 이 행렬에 가세하고 있습니다. 힙합음악을 즐겨 듣는 입장에선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발매된 산이의 신곡 ‘나쁜X’ 을 두고는 말들이 많습니다. 헤어진 연인 관계에 빗대 ‘최순실 게이트’를 풍자하는 내용인데, 여성혐오적 요소의 가사가 있습니다. “충혈된 네 눈 홍등가처럼 빨개” “그와 넌 입을 맞추고 돌아와 더러운 혀로 핑계를 대고” “병신년아 빨리 끝나 제발” 등입니다.

▲ 산이. 사진=브랜뉴뮤직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이슈가 늘 그렇듯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역시 문제를 제기한 쪽에 ‘프로불편러’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게 왜 여성혐오냐. 그러면  다이나믹듀오의 ‘죽일놈’은 남성혐오 노래냐”는 비아냥도 있고요. 

이 노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여성을 욕해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남성’일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적용되는 차별적인 표현들이 문제입니다. 왜 ‘홍등가’라는 비유를 한 걸까요. 그와 입을 맞추고 돌아온 게 “더러운 혀”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관념이 전제된 것이죠. 대통령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이 같은 콘셉트로 곡을 만들지도 않았겠죠.

권력자를 비판하는 건 용감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언사를 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혐의가 심각한 건 맞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따라서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이 같은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고 평등집회를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병신년’이라는 비유는 장애인과 여성을 모두 비하한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자제해야 할 표현이 됐고요. 

“힙합문화의 특수성”이라는 반박도 있습니다. 쇼미더머니에서 송민호와 블랙넛의 가사가 문제 됐을 때도 같은 주장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화가 말하는 ‘자유로운 표현’은 혐오발언까지 무조건 용납한다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특정문화의 특수성이 보편적인 가치에 우선할 수 없기도 하고요.

“미국에서는 허용된다”는 얘기도 이제는 철 지났습니다. 미국과 우리는 사회적 맥락도 다르고, 지금 미국에서도 그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강일권 리드머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60~197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이 차별받는 상황에서 갱스터가 이상적인 직업처럼 여겨지게 되고, 남성성이 부각됐다. 갱스터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적다. 이 때문에 여성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이 흑인사회에서 널리 쓰였다는 맥락이 있다. 그러나 이 마저도 80년대 이후 힙합이 대중에게 부각되면서 문제가 됐고 비하나 혐오발언이 비판받기 시작됐다. 닥터드레는 과거 여성폭력에 대해 사과를 했고, 스눕독 역시 여성비하 가사에 대해 사과를 했다.” 

‘힙알못’이 ‘훈장질’한다는 비판이 돌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힙합에서 말하는 ‘펀치라인’도 단순히 동음이의어 말장난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메시지가 담길 때 더욱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슈의 본질보다 여성성에 집중한 산이의 가사는 힙합적인 면에서도 좋은 표현인지 의문이 듭니다.

산이는 가사에서 “넌 그저 꼭두각시 마리오네트였을 뿐”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합니다. 어쩌면 사회적 편견이라는 마리오네트가 더 강력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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