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였던 최태민씨(1994년 사망)가 쓴 글이 발견됐다. 

월간잡지 ‘세대’ 1977년 4월호 176~177쪽에 실린 “충·효의 활성화운동(忠·孝의 活性化運動)”이라는 글이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구국여성봉사단 총재 최태민이다. 이는 최씨 관련 기록이 부족한 가운데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최씨는 “예로부터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의 백성임을 자랑하며 오늘까지도 민족적 긍지를 지니고 살아왔지만 때로 인간은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고 긴 세월동안 후회의 아픈 가슴을 달래야 할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며 “그중의 제일 큰 후회와 안타까움이 있다면 효도할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사실이며 이 슬픔만은 이 생을 마칠 때까지 그림자처럼 따른다는 것”이라고 글을 시작했다.

최씨가 박근혜에게 ‘현몽설(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딸 박근혜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는 소문)’로 접근했다는 증언이 다수 있다. 한 예로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장을 맡았던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최 목사가 꿈에서 육 여사를 만나 ‘근혜가 어리석어 슬퍼만 하고 있으니 그대가 도와달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씨가 육 여사를 빙의해 자신을 믿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박근혜 영애와 각별한 사이였던 최씨가 효도를 강조하는 글을 썼다면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 최태민씨가 쓴 월간잡지 ‘세대’ 1977년 4월호 “충·효의 활성화운동(忠·孝의 活性化運動)”

최씨는 “본인은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한평생을 살아오며 제일 큰 사랑 제일 고귀한 사랑이야말로 부모님의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며 “아픔이 없는 사회, 불우한 노인이 없는 사회를 위하여 내 진실의 불꽃을 튀기리라 다짐했다”고 적었다.

최씨는 부모에 대한 효가 국가에 대한 충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펼쳤다. 최씨는 “한 가정의 인화는 국가민족의 총화로 통하는 지름길”이라며 “새 기풍을 진작시키는 정신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고 썼다.

최씨와 영애 박근혜가 함께 활동한 구국여성봉사단에 관한 내용도 등장했다. 최씨는 “1977년 2월25일 우리 구국여성봉사단에서는 충, 효를 바탕으로 한 새마음 갖기 국민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것을 결의한다”며 “효도는 바로 사회 안녕질서의 지름길이며 국가에 충성하는 길임을 스스로 밝히게 된 것”이라고 알렸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에 대해 칭송하는 표현도 있다. 최씨는 “5천년의 가난을 새마을 운동으로 극복하여 경제라는 하나의 과제를 해결했다면 다음의 영구적 대책은 바로 정신 교육으로 다져진 민족성 재확립이 아닌가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근혜는 구국여성봉사단 명예총재 자리에 있었다. 최씨는 “정직 근면한 민족, 책임을 다할 줄 아는 민족이 되자는 박근혜 명예총재의 간곡한 호소에 힘입어 오늘 새마음갖기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며 “한 예로 불우노인의 부모맺기 운동을 우리 전국지부를 통해 국민운동으로 이끌게 됐다”고 적었다.

▲ 서울 용두동에 위치한 경로병원 개원식을 마치고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최태민(왼쪽에서 두번째)과 박근혜. 사진=1977년 3월23일자 대한뉴스 화면 갈무리

최씨는 해당 글에서 박근혜를 두 번 언급했다. 두 번째 언급한 부분은 이렇다. “노인이 외로와서는 아니되겠고 마음놓고 건강을 상담할 수 없는 불행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하며 박근혜 명예총재는 경로병원 개설을 촉구하였으며…”

최씨는 ‘사이비 종교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해당 글에는 종교인들이 사용할만한 표현도 있다. 최씨는 “효도하는 민족은 틀림없이 축복받는다는 것을 신앙을 통하여 본인은 확신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통일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했다. 최씨는 “정신면의 선진화를 촉구하여 세계의 으뜸 민족으로서 총화단결의 힘차고 늠름한 모습으로 조국 통일의 과업을 수행해야 되겠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이 실린 잡지 ‘세대’(창간발행인 오종식)는 1963년 6월에 창간한 종합월간지다. 일간신문사들이 월간잡지를 발행하면서 경쟁력을 잃었고, 1979년 12월호를 끝으로 폐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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