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수습책으로 내놓은 개각이 오히려 정치권에 ‘하야’ 논의를 불 붙이며 더 큰 반발을 부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4일 의원총회가 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3일 공석이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한광옥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정무수석에 허원제 전 의원을 임명했다. 앞서 2일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에 임명한 것에 이어 또 다시 여야와 협의 없는 일방통행식 인선을 실시했다.

일방통행식 인선이 거듭 반복되면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하야 및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3일 열린 더민주 의원총회는 하야를 주장할지 거국내각안을 고수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도착, 취재진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의총에서는 여러 의원들이 이제 하야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희 의원은 “지금은 하야냐 거국내각이냐를 결정할 시기도 이미 지났다. 국민의 뜻은 이미 모아졌다”고, 유승희 의원은 “거국중립내각 운운은 이미 때가 지나갔다. 하야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병훈 의원은 “하야라는 말도 쓰지 말자. 퇴진”이라고, 남윤인순 의원은 “하야가 아닌 퇴진이다. 당이 공식화 할 순 없으니 개별의원별로 그룹화해서 목소리를 내자”고 밝혔다고 한다.

개별그룹들의 행동은 시작되고 있다. 민주당의 안민석, 홍익표, 한정애, 소병훈, 금태섭 등 6명의 의원들은 3일 오전 공개성명을 내고 “더 이상 국정혼란과 국정파탄을 일으키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조속히 퇴진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거듭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더 이상의 집권 연명은 극심한 국정혼란과 국정파탄을 초래하고 국민만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잔여임기 1년 5개월에 집착하고 퇴진하지 않을 경우 그 기간 내내는 물론 그 이후까지 엄청난 국가적 재앙이 초래될 게 뻔하다”며 퇴진 후 60일 이내 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의사를 집단적으로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현재 이들 의원들이 퇴진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서에 동참할 의원들을 추가적으로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하야’를 촉구한다 해도 박 대통령이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야당이 무작정 하야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것. 윤후덕 의원은 의총에서 “탈당도 안 하는 대통령이 무슨 하야를 하겠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민주의 한 재선 의원은 “대통령이 하야하면 총리가, 총리가 없으면 경제부총리가 국정을 맡아야 하는데 지금 총리도 경제부총리도 없다. 야당이 새 총리와 경제부총리를 통과시켜줄 리 없으므로 지금 하야하면 국정을 총괄할 사람이 없다”며 “뒤집어 말하면 이런 인선은 대통령이 하야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총에서는 하야 및 퇴진을 주장하되 단계를 밟자는 의견도 나왔다. 설훈 의원은 “거국 내각을 구성하고 수사 받으라고 요구하고, 대통령이 받지 않으면 하야로 가자”고, 표창원 의원은 “이 모든 의혹을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무제한 티비 토론을 요구해야한다. 만약 이 모든 걸 거절한다면 탄핵소추, 하야를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영선 의원 역시 “하야나 퇴진을 당론으로 추진하기 전에 우리가 합리적 조건을 제시하고 그걸 받지 않으면 퇴진을 추진하자”며 “조건은 여야가 합의하는 총리를 세우라는 것이고, 여야 시국회의를 만들어서 현 상황을 풀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격론이 이어지면서 결론은 나지 못했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도부에서 논의를 진행하겠다. 최소 80~90명이 모여야 결정한다”며 “오늘은 결론을 못 내린다. 그러나 이번 주를 넘기진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의원총회에는 68명의 의원이 참석했다. 11월5일 하야 촉구 관련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4일 의총에서 더민주의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의원들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공개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더민주의 한 의원은 “원래 의원들 의견은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정도로 모아졌는데, 김병준 총리 지명 이후 ‘하야를 말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쏠리는 모양새”라며 “공감대는 있지만 문제는 그냥 하야를 바로 이야기할지 아니면 조건을 제시한 뒤 하야를 주장할 것인가 정도다. 아마 의총에서도 단계별 하야 주장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탄핵 및 하야 주장이 무책임하다고 했던 국민의당도 점점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당내 대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이미 하야를 촉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정배 의원은 3일 회의에서 “박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하야는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부디 이승만 대통령의 전례에서 배우기 바란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야권의 하야 주장에는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행보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이 내민 ‘거국중립내각’ 카드를 사실상 박 대통령이 걷어차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황교안 총리마저 인선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듣지 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3일 “신임 총리가 국정의 상당 부분을 수행하게 되면, 거대야당이 말하는 거국중립내각과 책임총리 요구에도 부응하게 될 것”이라며 “야당의 대승적 이해와 협조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야당은 이미 총리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비박 계는 개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2일 최고·중진 연석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사전에 야당에 동의를 구하는 것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께서는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에 맞게 국회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역시 분수령은 4일 의원총회다. 비박 계가 박 대통령의 기습 개각 이후 집단행동을 본격화하고 있으며 4일 총회에서 이정현 대표 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전환에 대한 요구를 쏟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비박 계 정병국 의원은 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친박이) 끝까지 (입장)고수를 하고 여론에 반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하면 (분당할 수도 있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싸워야 하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46회 국회(정기회) 11차 본회의에 참석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일각에서는 거세지는 하야 요구를 막기 위해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통령 수사가 불가하다고 했던 김현웅 법무부장관 역시 3일 예결위원회 회의에서 “대통령도 엄중한 상황임을 충분히 알 것”이라며 “수사 진행결과에 따라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면 수사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검토해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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