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국 수습책으로 내놓은 김병준 총리 지명이 야권의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다. 하야와 탄핵론에 선을 그으며 신중한 접근을 중시했던 민주당과 국민의당도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그간 특검 등을 주장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라.  더 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당신에게 더 이상 헌법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당신에게 더 이상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을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청와대가 오늘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발표했다. 국민께 헌법파괴 사건의 죄를 고백하고 백배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버젓이 총리를 지명했다”며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뒤에 숨어서 인사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분노한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모욕이자 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국민들을 조롱한 폭거”라고 비판했다.

▲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한 뒤 퇴장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박 대통령은 2일 오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신임 총리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지명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인사로 거국 중립내각을 이끌 책임 총리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경제부총리에는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국민안전처 장관에는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을 내정했다.

하지만 새누리당도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한 마당에 박 대통령이 야당과 협의조차 없이 총리를 임명함에 따라 야권을 중심으로 큰 반발이 일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교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등은 유임시키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비대위 회의에서 “오늘 아침 황교안 국무총리를 만났고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신라호텔에서 이야기하다 함께 차를 타고 국회까지 왔는데 그분들도 총리 내정을 전혀 몰랐다”며 박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총리 인선발표에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2일 오후 회동에서 김병준 신임 총리 내정 등을 포함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분 개각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고,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국회 절차 보이콧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하는데, 각당 원내교섭단체에서 참여를 하지 않을 것이고 특위구성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개각을 철회하지 않고 하야 및 탄핵 목소리가 커질수록, 야당 지도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일 오전 열린 민주당 비공개 의총에서 몇몇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너무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흥분하면 안 된다”고 하자 같은 당 설훈 의원이 “지금은 흥분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은 탄핵으로 가는 국면”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민 의원도 “당이 너무 판단이 느리고 방향성을 못잡고 있다”고 밝혔다.

▲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안 의원을 포함해 야권의 대권 주자들도 하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일 긴급성명을 내고 “경제위기, 민생도탄, 남북관계위기 등을 ‘식물대통령’에 맡겨둘 수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야당으로서는 이제 대통령의 주도권을 인정하든가, 아니면 하야 투쟁으로 나서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은 셈”이라며 “대통령은 야당의 하야 투쟁을 강요하는가”라고 강조했다.

▲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촉구 시민촛불집회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 참석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일 오후 국회에서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 주최로 열린 ‘박근혜 정권 하야와 탄핵,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도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직선제를 파괴한 것이다. 내가 뽑은 대통령이 (주권자를) 배신했기에 더 이상 이후에 신임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 있는 집권세력이 주도하는 해결책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대통령의) 통치권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인데, 이 권한을 국민의 동의와 이 절차없이 사인에게 무단으로 양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헌정질서 파괴행위”라며 “양도해서는 안 되는 권한을 자기 멋대로 양도해 국민주권을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민주주의 원리 자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무력화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준우 민변 사무차장은 “행정수반이 권한 없는 자들의 개입을 묵인하여 통치행위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사실은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 규정을 훼손하는 것이다. 각종 대기업으로부터의 자금 출연 및 특혜의혹은 정경유착으로, 헌법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을 부정하는 행태”라며 “나아가 행정수반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헌법 제66조 제2항의 헌법수호의무, 헌법제69조의 헌법선서 준수에 따른 요청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이번 총리 인선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오늘 대통령께서 일방적으로 김병준 총리를 지명하는 방식은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고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는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고, 거국중립내각의 취지에 맞게 국회와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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