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재단이 설립한 선문대학교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통일교의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을 제기한 학내 대자보를 일방적으로 철거한 후 작성자 신원 조사에 나선 것이 확인됐다.

지난 1일 오전 8시30분경 선문대 학생 A씨는 학교 본관 건물 입구 기둥에 '#하야해_박근혜! 민중의 힘을 보여줍시다!'란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대자보는 박대통령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하야할 것과 더 많은 학생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 통일교 재단이 운영하는 선문대학교. 사진=선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

대자보엔 통일교가 최순실씨를 비호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포함됐다. 지난달 27일 세계일보가 단독으로 진행한 최씨와의 인터뷰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서유럽 특명총사를 역임한 사아무개씨의 조력으로 가능했다는 의혹이 일부 보도를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세계일보는 통일교 재단에 소속된 언론사기도 하다.

A씨는 "이번 일에 통일교도 연루됐던데 현대사상과 통일사상(선문대 수업 중 하나)에서 그리 강조하던 애인·애천·애국이 국정농단에 일조하는 것이었나"라고 적었다.

또 다른 학생 B씨도 오전 9시 경 A씨의 대자보가 게시된 건물 벽에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두 대자보는 B씨의 대자보가 게시된 지 10분 여 만에 철거됐다. 대자보 게시 후 인근에 있었던 B씨는 학교 관계자가 게시물을 떼는 것을 목격했다.

▲ 철거된 대자보.

문제는 이 날 오후 학교 측이 두 학생의 신원 파악에 나선 점이다. B씨가 소속된 학과 사무실 관계자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A, B씨의 이름을 거론하며 대자보 작성 여부를 확인했다. 학생지원처가 해당 학과에 작성자 신원을 문의한데 따른 것으로 학과 사무실 관계자는 학생지원처에 '모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학과 관계자와 전화통화 후 '단순히 찔러보는 게 아니라 확인사살을 하는 뉘앙스였다', '과사에서 이번에는 모른 척하고 막아 주지만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언급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B씨에게 전화를 건 학과 사무실 관계자는 "미허가 게시물이어서 연락을 한 것이다. 학생지원처가 문의한 거라 그 이상은 모른다"고 답했다.

A, B씨는 학교 측의 신원 파악 시도를 전해 듣고 이날 오후 대자보를 재게시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A씨는 "(자보 게시) 허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도 웃기지만 보통 대자보를 철거해도 작성자를 찾는 경우는 없다"면서 "게시자를 추적하려고 했다는 행위는 추적해서 뭔가 불이익을 주려 했다는 의도로 여길 수밖에 없으며 학생들의 민주적 방식에 의한 의사 표현과 건전한 비판을 방해하는 반민주적 행위"라 말했다.

학교 측이 통일교와 최순실 게이트 연루 지적에 필요 이상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도 있다. 두 대자보는 게시된 지 각각 40분, 10분 만에 철거됐다. A씨는 "통일교 교수님들이 강조하는 애국은 국정농단에 통일교가 개입하고 시국을 걱정하는 학생들의 민주적 의사표시를 억압하는 시도들인가"라 반문했다.

▲ 지난 10월27일 세계일보 1면.

이와 관련해 학생지원처 관계자는 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학교 규정에 따르면 대자보는 이름이나 단체명이 없는 불법게시물이었다. 동창회 등의 자보는 철거하지 않는다"면서 "이름을 썼으면 철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썼는지 확인해 이름을 쓰고 붙이면 된다고 전달하려고 한 것이지 제재하려고 한 건 전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학교 측이 대자보 작성자를 굳이 알 필요가 있냐는 지적에 그는 "이름을 쓴다면 다시 게시할 수 있다. 학생지원처에서 해당 대자보를 보관해놓고 있다"고 답했다.

문제가 된 대자보 내용은 주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에 집중돼있다. A씨는 대자보를 통해 "순실공화국도 공화국인가? 최근 뉴스를 보면 사이비 종교와 무당, 일개 민간인이 지배하는 샤머니즘 국가에 살고 있었다"면서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이제 그만 하야하라. 국민·헌정·민주주의를 유린·우롱한 죄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 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어르신, 노동개악, 성과퇴출제, 입금피크제, 사드 등 국민들은 협박받고 안전이 지켜지지 않을 때마다 우리의 안전, 생명, 평화, 생계를 지켜달라고 권리를 빌려준 대통령을 찾았지만 늘 불통이었다"면서 "학우들에게 '애국'의 진정한 실현을 위해 대자보는 적극적 참여를 제안한다"고 적었다.

대자보엔 "3일 뒤 자진철거 하겠다"는 약속도 명시돼있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