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씨에 대한 검찰수사와 함께 새누리당의 역공이 본격화됐다. 특검 수용에 이어 야당의 제안이던 ‘거국중립내각’까지 수용하면서 거꾸로 야당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탄핵 및 하야론'에 선을 그은 야당의 스텝을 꼬이려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30일 최고위원회의를 거쳐 야당에서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수용하기로 했다.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오늘 새누리당은 야당이 주장하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했다”며 “이미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전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을 포함해 야당에서 거국내각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김성원 대변인은 그러면서 “불안과 혼란을 부추기는 자세가 아니라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태도가 우선”이라며 “위기를 심화시키려는 태도는 금물이다. 정파를 넘어선 태도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양보했으니 야당이 더 이상 박근혜 정부를 흔들지 말고 협조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거국중립내각의 총리 후보자로 손학규 전 민주당 상임고문,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김병준 국민대 교수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정책실장과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야당이 거부하기 힘든 인물들을 총리 후보자로 올려 거국중립내각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런 선택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야당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최순실 게이트가 대선 국면까지 이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수습책이라고 할 수 있다.

▲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씨의 검찰 소환을 앞둔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최씨가 설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포커스뉴스

‘거국중립내각’을 카드로 정부와 여권을 압박하던 야권은 스텝이 꼬였다. 민주당이 거국중립내각 카드를 받기 어려운 이유는 현재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상규명이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씨가 30일 귀국했으나 ‘기획된 귀국’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고,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수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검사 출신 최재경 민정수석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새누리당이 상설특검을 고집하면서 특검이 바로 도입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국중립내각을 수용하면 내각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로 국면이 전환되고, 그 사이 증거가 인멸되고 검찰이 꼬리자르기용 수사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다.

보통 거국내각 인사를 여야가 협의해서 결정한다는 점에서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야당 인사 이름을 먼저 거론하는 것도 ‘꼼수’라 할 수 있다. 개헌에 관심 있는 야권 인사들의 이름을 먼저 던져 야권 내 분열과 논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실제 새누리당의 제안 이후 김종인 의원이 거국내각의 총리직에 뜻이 있다는 언론보도와 그렇지 않다는 언론보도가 동시에 터져 나오며 야권 내부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은 “진상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할 집단이 거국내각을 입에 올리면서 야당인사를 징발해 발표한다. 새누리당은 거국내각을 말할 자격조차 없는 집단”이라며 “거국내각은 무엇을 전제로 하던 진상규명이 먼저여야 한다. 거국내각 이전에 국권을 유린시키고 헌정질서를 교란시킨데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작정 거부만 하기도 쉽지 않다.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거국내각 구성은 문재인 전 대표 등이 먼저 제안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일각에서 제기되는 박 대통령 탄핵 및 하야론에 대해 선을 그은 상황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은 자기들이 먼저 제안했던 거국중립내각을 우리 당이 수용하니 바로 걷어 차버리는 딴지 걸기,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야당이 제안한 개헌, 받아들이니 걷어 차버렸다. 야당이 제안한 특검, 받아들이니까 걷어 차버렸다. 야당이 제안한 거국중립내각, 받으니 걷어 차버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정 원내대표는 또한 “야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슨 대안이 있는가”라며 “대통령 끌어내려서 하야정국, 탄핵정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 아닌가. 헌정중단, 국정중단, 아노미 상태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야당을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정치세력으로 만들려는 의도라 볼 수 있다.

더불어 야권 일각에서 야당이 탄핵 및 하야 여론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성남중원지역위원회(위원장 은수미)는 31일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 자리를 유지할 경우 앞으로 1년간 대한민국은 심각한 갈등과 분열에 휩싸일 수 있다”며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아래서는 탄핵 및 하야 요구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에, 새누리당으로부터는 ‘그럼 하야하자는 거냐’는 압박을 받게 된 셈이다.

▲ 안호영,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비선 실세' 의혹의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포커스뉴스
대안으로 더민주가 새누리당이 제시한 거국중립내각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위한 거국중립내각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혁신가 최병천 전 더불어민주당 보좌관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거국내각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대통령이 범죄의 당사자이고 국가의 공적 권위가 통째로 무너진 상태”라며 “따라서 거국중립내각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규명과 국가의 정상화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제안을 받은 게 아니라 증거은폐와 시간벌기용으로 정치적 역공 차원에서 거국내각을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전 보좌관은 “따라서 야권은 새누리당의 제안에 대해 ‘진짜 진상규명할 생각 있으면 이 정도는 내놓으라’며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예컨대 거국내각을 구성하면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지명권을 야당에 달라고 하는 방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더민주도 새누리당의 공세에 맞서 추가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는 모양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그러면 특검부터 받으라. 세월호 진상규명부터 같이하자”며 “야당이 하자고 한 내용들을 받아들여줄 의사가 있을 때 같이 내각도 구성할 수 있는 것이지 야당이 지난 1년간 주장해왔던 내용들에 대해서는 모르쇠하면서 내각만 같이 구성하자는 것인가. 그런 국면전환용 카드에 야당이 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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