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이야기다.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 영화는 1997년 제작됐다. 거의 이십년 전 작품이지만 여전히 여론조작과 미디어 정치의 부작용을 다룰 때 언급된다. 제목 ‘왝 더 독’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객전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선물(先物) 거래가 현물(現物) 거래를 뒤흔드는 현상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가짜 현실이 진짜 현실을 압도하는 모습을 빗댄다.
‘최순실’을 숨겨라! 새누리당 버전의 ‘왝 더 독’
2016년 한국사회에서도 ‘왝 더 독’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까지 불리는 최순실 씨를 숨기기 위해서다. 물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영화만큼 치밀한 작전을 구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의지와 간절함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이 불거지고 여기에 최 씨가 연관된 정황이 일부 드러나자 새누리당은 그를 엄폐(掩蔽)하기 위한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다. 국회의장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국정감사 보이콧에 나서는가 하면, 이정현 당대표는 헌정사상 최초로 여당 대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명분 없는 단식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비장함은 국민의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일주일 단식은 최순실로 향하던 대중의 관심을 자신에게 묶어두는 성과를 거두었다.
앞서 8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물러나게 된 것도 ‘최순실 지키기’였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시에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위 행위를 조사하던 것으로만 알려졌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 의혹을 내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는 그가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한 것을 두고 “감찰 내용 유출”, “국기문란”으로 규정해 끝내 물러나게 했다.
시민의 저항, ‘#그런데최순실은?’
이처럼 최근 몇 달간 정부 여당의 납득할 수 없는 무리수 뒤에는 ‘최순실’이라는 인물이 연루돼 있다. 언론이 최 씨의 존재나 그를 둘러싼 온갖 의혹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권력형 비리 의혹이라는 핵심을 뚫고 들어가려는 언론은 극소수다. 여야 간 공방으로라도 최순실 씨를 언급하면 다행일 정도다. 영화 ‘왝 더 독’ 속 언론이 권력의 여론조작에 속아 넘어갔다면, 현실의 한국 언론은 여론조작 의도를 알면서도 공범 역할을 하는 꼴이다.
해시태그 붙이기는 최순실 씨 의혹을 이대로 덮고 가서 안 된다는 진상규명 촉구이자, 여론조작에 속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영화 속의 대중은 무기력했지만, 현실의 시민들은 권력과 언론의 ‘최순실 숨기기’를 꿰뚫어보고 저항에 나섰다. 전통적인 시민운동 조직이 생각하지 못했던 창조적인 방식으로.
새누리당은 다시 ‘문재인 종북몰이’ 카드를 꺼냈다. 진짜 대결은 이제부터다. 잊지 말자 ‘#그런데최순실은?’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