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SBS는 메인뉴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선물로 받은 시가 1억 원 상당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단독 보도했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를 인용한 해당 보도는 노 전 대통령의 유죄를 암시했다. 1주일 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6년 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논두렁 진술은 나온 적도 없으며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언론플레이였다고 주장했다.

과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최순실 게이트 같은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 기업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일상에서 접하는 대형사건의 시작점과 종착점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지휘권·영장청구권·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있다. 검찰은 각종 오명 속에서도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조뉴스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법조뉴스 ‘수준’은 검찰을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 ⓒ연합뉴스
MBC기자협회장과 방송기자연합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박성호 MBC해직기자(고려대 언론학과 박사과정)와 윤영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한국방송학보 2016년 7월호에 실은 논문 ‘방송 법조뉴스의 품질 연구’에서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간 KBS·MBC·SBS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에 등장한 법조뉴스 710건의 품질을 △정확성 △심층성 △불편부당성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측정한 모든 항목에서 기사 품질이 부실하게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해당 논문에서 “실명 취재원 수, 사운드바이트(인터뷰나 현장 육성의 수), 기사의 관점 항목은 국내 방송뉴스의 일반적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보도 시점과 취재원의 활용, 기사의 톤에서 나타난 치우침의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입’에 주로 의존하는 법조뉴스는 검찰이 선택적으로 제공한 피의사실을 유통시키고, 형사사법기관의 처벌 위주 가치관을 전달하며 편향된 여론을 형성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법조뉴스 실명취재원 1.93명
실명취재원 대다수는 검찰

▲ 2007년 검찰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가운데 많은 취재진들이 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수사결과 발표를 취재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이창길 기자
해당 논문에 따르면 토대정보가 확실하지 않은 술어(‘알려졌습니다’, ‘~로 점쳐집니다’)가 없는 ‘정보 확실’ 기사는 64.4%였다. 논문은 “방송뉴스 문장이 7~10문장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사 문장의 토대 정보와 주체가 확실한 술어가 60%대에 머문 것은 그만큼 정확성이 떨어지는 표현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리포트 당 평균 실명취재원 수는 1.93명이며 평균 익명취재원 수는 0.55명으로 나타났다.

논문에 따르면 실명 취재원 수는 선행연구(이완수·박재영, 2013)에서 파악한 방송뉴스 전체 평균(2.03개)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는 실명 취재원의 대다수가 검찰이라는 점도 문제다. 논문은 “사회부 기사에서도 복지, 노동, 교육, 환경 분야 뉴스들은 출입처 취재원과 함께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시민, 전문가들을 실명 취재원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법조뉴스의 기사는 오로지 검찰을 주요 화자이자 등장인물로 삼는 방식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층성 항목 측정 결과 이벤트 중심 보도가 93.2%로 압도적이었으며 분석 중심보도는 6.8%에 그쳤다. 사운드바이트는 평균 0.82건으로 1건이 채 안됐다. 방송뉴스 전체 평균 2.45개(반현·홍원식, 2009)에 비춰보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논문은 “단일한 견해가 기사를 지배하며, 다양한 육성을 들려주지 않아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6.8%에 그친 분석 중심 기사 비율도 신문의 대선보도 분석 중심 기사 비율 32.9%(박재영 외, 2014)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법조뉴스의 복합적 관점 또한 방송뉴스 전체 평균으로 조사된 23.3%(박재영·이완수, 2007a)의 절반 이하인 11.7%에 그쳤다.

취재원·기사톤의 편향도 지적됐다. 재판기사를 제외한 636개 기사에서 검찰 취재원이 등장한 기사는 619건(97.3%)이었으나, 비검찰 취재원이 검찰 취재원과 동시 출현한 기사는 382건(61.7%)으로 나타났다. 636개 기사 중 기사 톤이 유죄 추정인 경우는 54.1%, 무죄 추정인 경우는 35.5%였다. 논문은 “3사가 무죄추정보도 최저수준(2000년, 2004년, 2014년)을 보인 해가 겹쳤다”며 “특정 시기의 사건을 유사한 방식으로 보도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 검찰. ⓒ연합뉴스
“검찰의 일거수일투족 이벤트 중심으로 보도
법조뉴스의 방식은 사건 수사의 사건화”

보도시점의 경우 사건기소 이전인 경우가 89.6%로 시점 편향을 나타냈다. 논문은 보도시점이 기소 이전인 경우가 대다수인 점을 지적하며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법원 기사보다 수사기관조차 혐의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는 수사단계 뉴스에 집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연구진이 “지금과 같은 수사 중계보도 수준의 검찰 뉴스라면 굳이 일일이 다루지 않고 비중을 줄이겠다는 편집 판단부터 세워야 할 것”이라고 제언한 이유다.

논문은 또한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벤트 중심으로 보도하는 법조뉴스의 방식은 사건 수사의 사건화”라고 정의하며 “해설과 비판보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법조뉴스가 감시비판 기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고 우려했다. ‘검찰은~라고 밝혔다’, ‘검찰은~로 보고 있다’는 식의 보도행위의 경우 “검찰이 기사의 주어이자 관점을 지배하는 단일한 주체로서 법조뉴스가 출입처의 시각에 상당 부분 동화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방송사의 한 법조출입기자는 “법원 취재는 재판과정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고 판결문도 볼 수 있어 정보가 열려있지만 검찰 취재는 구속 수사 받는 사람에게 접근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검사가 입을 닫고 있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며 구조적인 취재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이 기자는 “언론사들 간 경쟁보도에서 타사보다 더 앞서나가려면 무리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 2014년 '비선 실세'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논란 당시 서초동 대검찰청 내부 모습. ⓒ연합뉴스
법조기사는 대게 압수수색 기사를 시작으로 온갖 의혹기사가 쏟아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검찰은 기자들과 티타임에서 실제 수사방향과 집중하고 있는 혐의와 관련해 기자들에게 팁을 주는 식으로 ‘가지치기’를 하고, 기자들은 검찰이 알려지기 원하는 방향대로 대게 기사를 쓰게 된다. 검찰이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법으로 금지된 피의사실을 사전에 공표하는 문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언론인권센터·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수사했던 이준검 차장검사를 피의사실공표혐의로 2012년 검찰에 고발한 적 있다. 당시 이 차장검사는 “노건평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주변인 계좌에서 수백억 원대 뭉칫돈이 발견됐다”고 밝혔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3일 뒤 검찰은 “노씨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입장을 바꿨다. 언론단체들은 “검찰이 필요에 따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관행, 검찰 권력만 키웠다
검찰발 기사의 최후를 기억하자

법조뉴스의 문제는 비단 방송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법조를 오래 출입한 종합일간지 논설위원은 “과거보다 법조기자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법조출입들이 이슈를 따라가기에도 급급한 상황”이라고 전한 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전문성이다. 검찰의 감시자로서 역할을 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최소 5년 이상 추적해야 하지만 보통 2년 정도 법조를 출입하다 다른 출입처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논설위원은 “신문도 재판으로 넘어가면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법정에서 다투고 밝혀야 할 문제가 많은데 수사 당시에만 보도가 쏟아지는 언론의 관행은 검찰의 언론플레이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검찰 권력을 더욱 강화 시킨다”고 우려한 뒤 현장기자들이 기자정신을 갖고 검증에 있어 투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2심 재판부가 오보로 인정한 2009년 6월15일자 중앙일보 기사.
법조기자들은 검증이 부족했던 검찰발發 기사의 최후를 기억해야 한다. 중앙일보는 2009년 6월15일자 ‘빈슨소송서 vCJD(인간광우병) 언급 안 돼’ 기사에서 익명의 검찰관계자 말을 인용해 MBC ‘PD수첩’ 제작진이 2008년 광우병 편 방송에서 “아레사 빈슨이 vCJD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한 것을 두고 “(검찰이 확보한 아레사 빈슨의) 소장과 재판기록 등에 따르면 고소인과 피고소인(아레사 빈슨 유족과 의료진) 모두 빈슨의 사인과 관련해 vCJD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아레사 빈슨은 vCJD 의심 진단을 받고 사망했고, 빈슨의 재판기록에도 이 사실이 나와 있었다. 이에 ‘PD수첩’ 제작진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14년 6월 항소심 재판부는 중앙일보에게 정정보도와 함께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 계류 중이다. 재판부는 “제보자가 검찰 고위관계자이니 신빙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 상당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으며 “이 기사는 수사기관 제보에서 비롯된 허위의 공표, 공소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의 폐해를 모두 갖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비판은 못할망정, 사실상 ‘사건의 당사자’였던 검찰 말만 의심 없이 받아쓰면 이렇게 탈이 난다.

언론계는 검찰을 비롯해 정부기관 관계자를 통한 정보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의존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비단 법조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1949년~1999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정부기관 소속 취재원은 평균 68.8%(임영호·이현주, 2001)로 나타났다. 다양한 취재원의 부족도 법조뉴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뉴욕타임스의 대통령 관련 기사 취재원은 평균 7.5명이지만 조선일보의 대통령 기사 취재원은 2.1명(이재경, 2006)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기자들이 가장 의존하는 취재원은 관료조직들이다. 언론노동자들이 객관성의 신조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일상화된 작업과 관료조직에의 의존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다(옥선미, 1989)는 주장도 곱씹어볼 지점이 있다. 법조기자들에게는 그 누구보다 끝없는 의심과 검증, 그리고 다양한 취재원을 통한 심층 취재가 요구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임 대통령을 사지로 몰았던 그 비극적 뉴스가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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