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는 언론 참사라고 불리며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언론은 사고 원인보다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행적을 쫓는데 혈안이 됐으며 해경 구난에 대한 비판 보도는 청와대가 앞장서서 재갈을 물렸다. ‘전원 구조’ 오보 등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받아썼던 보도는 유가족의 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특조위)에 언론 보도의 공정성·적정성에 대한 조사 권한을 부여한 이유였다.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세월호특조위 3차 청문회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자 언론에 책임과 반성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그러나 ‘유병언 보도 및 수사 관련 등 언론 이슈 전환 및 왜곡’ 세션의 증인 출석을 요구받은 김회종 창원지검 진주지청장(참사 당시 인천지검 2차장검사), ‘언론통제 및 세월호 참사 보도 문제’ 세션과 관련한 증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길환영 전 KBS 사장, 안광한 MBC 사장, 김장겸 MBC 보도본부장 등은 불출석했다. 세월호특조위는 불출석 증인에 대한 고발 여부를 추후 전원위원회 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세월호 3차 청문회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리멤버0416 회원들이 김대중도서관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팅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검찰의 “돼지머리 수사”
앞뒤 안 가렸던 언론보도

세월호 참사 직후 김진태 검찰총장은 대검 검사장 회의에서 “이런 사건에는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때문에 혐의가 확인되기 전 표적을 정해놓고 혐의를 확인해가는 식의 ‘표적수사’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검찰 수사는 전방위로 진행됐다. 유병언에는 현상금 5억 원이 걸렸고 검사 15명, 수사관 110명, 경찰 145만명이 투입됐다. 밀항에 대비해 해경 2100여 명, 함정 60여 척이 동원됐다.

이에 발맞춰 언론의 ‘실황 중계’ 보도로 국민의 관심은 유병언 개인의 행방으로 쏠렸다. 세월호 참사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8만6000여 건의 보도가 쏟아졌고 2014년 기준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된 조정신청 건수만 1만6000여 건에 달했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인 김서중 세월호특조위 비상임위원은 “세월호 참사 구조 관련 보도가 유병언 보도에 의해 밀려났다”고 말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인천지검의 ‘백브리핑’이다. 백브리핑은 백그라운드브리핑(Background Briefing)의 줄임말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대신 사건 배경 및 구체 사항을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기자들에게 수사와 관련된 정보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특조위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부터 그해 6월5일까지 인천지검에서 27차례 백브리핑이 있었다. 보통 20~30분 정도 진행됐고 참여했던 기자 수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을 출입했던 한 기자는 특조위에 “당시 출입 기자들이 검찰에 요구해 기자단과의 협의 하에 진행했던 브리핑”이라며 “기자들이 오전에 질문지를 주면 검찰이 오후에 답변하고 자체적인 전달 내용을 더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진술했다. 반면 또 다른 기자는 특조위에 “당시처럼 수사 과정 매순간마다 브리핑을 한 적은 없었다”며 “수사기밀을 이렇게 말해줘도 되냐고 (검찰 측에) 물었지만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당시 취재하던 기자들은 유병언 일가 수사가 ‘돼지머리 수사’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의 잦은 백브리핑은 유병언 수사 보도가 세월호 참사 구조 보도를 밀어내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자료=세월호 특조위)
백브리핑의 효과는 어땠을까. 유병언의 도피를 도운 구원파 협력자들에 대해 “오랫동안 고함을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거나 진술을 묵비하고…(중략)…시비를 거는 행태가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사전에 교육을 받고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백브리핑은 “묵비권에 성추행 시비까지…‘조직적 방해’”(YTN, 2014년 5월29일자) 등을 통해 기사화됐고, “미국 FBI와 공조해서 유혁기(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등의 소재파악과 강제소환을 강구하고 있다”는 검찰의 수사 계획도 브리핑을 통해 “검찰, 미국 FBI와 공조 강제 송환 검토”(KBS, 2014 5월6일자) 등의 기사로 쏟아졌다.

인천지검을 출입했던 노현웅 한겨레 기자는 증인으로 청문회에 나와 “인천지검이 언론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중요한 수사 내용을 알려주는 등 과잉 친절을 보였고, 준비없이 수사에 들어간 검찰은 언론을 통해 구원파에 대한 ‘기선잡기’ 효과를 노린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그런 식의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이 수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며 “(세월호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목포지청의 경우 백브리핑은 거의 매일 있었지만 중요한 팩트를 알려주지 않아 기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컸다”고 밝혔다. 김서중 위원은 “인천지검의 백브리핑과 맞물려 유병언 관련 기사들이 늘어났다”며 “특히 금수원 압수수색, 박근혜 대통령의 유병언 체포 지시 등 외부적 요인이 있을 때 관련 보도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27차례 검찰의 유병언 백브리핑
세월호 구조 실패에서 프레임 전환
TV조선 “일부 선정적 보도 인정”

▲ 세월호특조위가 지난 1일 공개한 ‘언론사별 유병언 및 구원파 관련 보도 건수’를 보면, 3696건을 보도한 TV조선이 1위를 기록했고 이어 연합뉴스(3127건), YTN(3016건), 조선일보(2513건), KBS(2026건) 순이었다. 경향신문은 647건, 한겨레는 380건으로 상대적으로 보도 수가 적다. (사진=세월호특조위)
‘6209’건 쏟아낸 조선일보‧TV조선

6209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이 유병언 및 구원파와 관련해 쏟아낸 보도 건수다. 특조위가 이날 공개한 ‘언론사별 유병언 및 구원파 관련 보도 건수’를 보면, 3696건을 보도한 TV조선이 1위를 기록했고 이어 연합뉴스(3127건), YTN(3016건), 조선일보(2513건), KBS(2026건) 순이었다. 경향신문은 647건, 한겨레는 380건으로 상대적으로 보도 수가 적다.

증인으로 출석한 이진동 TV조선 기획취재부장(세월호 참사 당시 사회부장)은 “당시 TV조선의 시사와 뉴스 프로그램이 다른 언론사보다 많았을 것”이라며 “3600여 건으로 집계됐지만 같은 기사가 두 번씩 나가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동일한 기준으로 집계된 것이라 ‘시사와 뉴스가 많다’는 TV조선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TV조선 보도의 상당수는 유병언의 사생활 등 세월호 침몰사고 본질과 무관한 것들이었다. “철저한 통제 속 ‘그들만의 왕국’”, “‘비서’ ‘엄마’… 유병언의 여인들”, “유병언이 마지막에 걸친 명품에 ‘관심’”, “유병언, 또 다른 ‘30대 여성과 은신’”, “장남은 고급시계 수집가” 등이 대표적인 보도였다. 

이 부장은 ‘관련 기사들이 보도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유병언이 도피하다가 죽는 바람에 공소 기각이 돼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며 “만약 유병언이 살아서 그를 비호했던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면 기사 가치가 떨어지는 보도가 많다는 문제 제기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선정적인 보도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유병언 압수수색 등 생중계가 많았다. 생중계는 원래 선정적인데, 선정적인 보도가 많았다고 해서 유병언 보도가 가치없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현웅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에서는 유병언 수사 보도는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방침이었다”며 “참사의 본질을 흐리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장 기자들이 관련 발제를 하지 않았고 데스크도 그런 기사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 직후 4개월 동안 시청률 추이. 유병언의 사체가 발견되고 유대균이 체포된 7월 마지막주, 채널A와 MBN, TV조선 등은 주간 단위 역대 최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자료=닐슨코리아)
이날 참고인으로 참석한 언론 전문가들은 유병언 수사 보도에 대해 “본질을 희석시키는 보도”라는 평가를 내놨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들의 규제 완화, 해경 구난의 실패와 지휘 체계 부실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한국 언론들은 유병언이라는 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했다”며 “특히 이단 종교 교주의 문란한 사생활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기초한 보도가 많았다. 유병언만 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프레임이 전환됐다”고 밝혔다. 

조승호 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장은 “본질을 희석시켰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검찰이 백브리핑 등을 언론플레이로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들은 권력의 크기에 따라 뉴스 가치가 비례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결과 정부와 같은 공식적인 취재원이 뉴스를 지배하게 된다. 미디어수용자 입장에서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정환 편집국장은 이날 종편의 시청률을 분석한 자료(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종편이 주간 단위 역대 최대 시청률을 기록한 시기는 2014년 7월21일에서부터 27일까지였다. 7월21일에는 유병언 사체가 발견됐으며 25일에는 장남 대균씨가 체포된 날이다. 

이 국장은 “출범 당시 1%도 안 되는 애국가 시청률이라고 폄하되던 종편이 대선을 넘으면서 1%를 넘어섰고 세월호 보도를 계기로 2%를 넘는 종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세월호 직후인 6월 종편의 통합 평균 시청률이 6%를 넘어갔는데 여기에 공헌했던 것이 유병언 관련 보도”라고 밝혔다. 시청률이 솟구치는 상황에서 종편이 실황중계식으로 유병언 수사 보도를 쏟아냈다는 것이다.

박근혜 지시에서 비롯된 유병언 보도?

김서중 특조위원은 여기에 한 가지 의혹을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 수사 지시로 검찰에 ‘가이드 라인’을 내려보냈고 이에 검찰이 이례적인 백브리핑을 통해 언론의 주목을 끌며 ‘여론몰이’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서는 두 번(세월호 침몰사고 원인 규명, 책임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의 지시만 하달했지만 유병언 수사에 대해서는 △유병언 일가 검거 및 법에 의거한 처리(2014년 5월27일) △유병언 검거 총력(2014년 6월10일) △유병언 수사 관련 조치 사항(2014년 8월5일) △유병언 측근 수사(2014년 9월16일) 등 4차례의 지시를 내렸다.

김 위원은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특정사건에 대해 수사를 지시하는 건 드문 일”이라며 “법무부가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검찰청에, 검찰청이 인천지검에, 인천지검이 언론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병언 수사와 보도는 정부가 주도한 ‘여론 공작’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이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은 청문회에 불참하거나 함구하고 있다.

▲ 이진동 TV조선 기획취재부장(세월호 참사 당시 사회부장)은 지난 1일 세월호특조위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유병언 관련) 일부 선정적인 보도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진동 TV조선 부장은 “(유병언 보도와 관련해) 외압이나 윗선의 지시는 없었다”며 “기자들은 자율적으로 취재‧보도했고 데스크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유병언 보도가 가치없다거나 침몰원인과 무관하다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며 “평형수를 빼고 과적을 한 문제, 선박 안전 점검 문제 등 침몰 원인이 유병언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불출석한 김회종 검사는 지난 7월6일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통해 “유병언 일가 비리를 수사하는데 있어 국민의 알권리와 수사 효율성 및 피의자 인권침해 방지라는 원칙을 조화롭게 적용해 공보활동을 진행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길환영, 대통령 보도 ‘전진배치’ 지시”

이날 ‘언론통제 및 세월호 참사 보도 문제’ 세션에서는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사장의 보도개입을 입증하는 문자메시지를 추가 폭로했다. 그가 공개한 문자메시지는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17일과 23일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주고받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보도 아이템을 놓고 사장의 ‘전진 배치 지시’와 국장의 ‘임무 이행’ 증거가 담겨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먼저 4월17일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장님~ 말씀하신대로 그 위치로 올렸습니다.”(김시곤) “수고했네!”(길환영)

KBS 메인뉴스 ‘뉴스9’은 세월호 참사 직후인 4월17일 “구조 활동 독려… 실종자 가족 위로”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7번째 순서로 내보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을 방문해 구조 활동을 독려했다는 내용이다. 원래 13번째 보도였지만 “이것보다 더 올려라”는 길 전 사장의 지시를 받고 7번째 뉴스로 ‘전진 배치’했다는 것이 김 전 국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길 전 사장이 박 대통령 뉴스를 다룰 때 원칙은 20분 내에 다루라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는 뉴스라고 생각해서 7번째로 올렸다”고 말했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지난 1일 세월호특조위 3차 청문회에서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추가 폭로했다.
두 번째 4월23일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장님, VIP 아이템 오늘은 뒤로 배치하고 내일부터 자연스럽게 올리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자칫 역풍이 불게 되면 VIP께도 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김시곤)

김시곤, 사장과의 문자메시지 공개
“VIP에게 누가 될 수도”
특조위 “진실의 가닥 잡아”

마찬가지로 KBS ‘뉴스9’의 2014년 4월23일자 보도를 보면, KBS는 뉴스 말미인 32번째 꼭지에서 “북핵 중단 中에 설득 요청”이라는 제목으로 박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북핵 중단을 설득해달라고 했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김 전 국장은 “세월호 참사를 주로 앞부분에 편집했고 이 아이템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뉴스 50여분 대인 32번째로 편집했다”며 “길 전 사장은 이 아이템도 ‘위로 올려라’라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 올리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공개한 문자처럼) 설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길환영 사장은 항상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고 하면 제 말을 잘 들었다”며 “실제 저렇게 문자를 보냈고 내 뜻을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세월호특조위는 청문회에 불출석한 길 전 사장이 특조위 조사에서 “내가 그동안 김시곤과 주고받은 메시지 몇 달치를 가지고 있다”면서도 “지금은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사장의 황당 지시,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길환영 전 KBS 사장은 2014년 5월5일 김 전 국장을 포함해 KBS 보도본부 간부 4명(보도본부장, 보도국장, 편집주간, 취재주간)을 보도본부장실로 소집한 뒤 ‘해경 비판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 김 전 국장에 따르면, 당시 길 전 사장은 당일 큐시트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해경 비판 보도가 배치돼 있는 걸 보고 ‘아이템을 빼라’고 압박했다. 김 전 국장은 이때 상황을 청문회장에서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는 “길 전 사장이 해경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는 이유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이 내게 전화를 걸어 한 말과 같았다”며 “‘해경이 한창 구조작업 중이니까 사기를 꺾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이정현의 말과 똑같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지난 1일 세월호특조위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2014년 4월21일과 30일 두 차례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 대표와의 두 차례 통화 육성은 지난 6월 ‘이정현 녹취록’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바 있다. 이 때문에 KBS 보도와 관련해 이 대표와 길 전 사장간 ‘사전 조율 및 입맞춤’이 의심되나 둘 사이의 통화 내용이나 회동 등이 공개된 적은 없다. 세월호특조위는 지난 6월 방송법 위반 혐의로 이 대표와 길 전 사장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당시 보도본부장실에 있었던 임창건 전 KBS 보도본부장은 세월호 특조위에 “사장이 직접 본부장실로 찾아와 진행 중인 현안에 대해, 그것도 해경을 지목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진술했다. 김 전 국장도 1일 청문회장에서 “사장의 주문이 매우 황당해서 참석자 4명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 말도 못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KBS 기자협회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작성한 ‘청와대·길환영 사장 보도개입 의혹 진상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날 예정돼 있던 KBS ‘뉴스9’ ‘해상 구조 시스템 재정비 시급’ 리포트 가운데 해경이 구조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대목이 삭제된 것으로 나온다.

길 전 사장은 특조위에 “(2014년 5월5일 발언은) KBS 보도본부가 너무 고생하니까 격려한 것이고 오늘은 무엇을 취재하나 물어본 것”이라며 “의견 제시 차원이었고 사장이 큰 틀에서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국장은 길환영 전 사장의 보도 개입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도 더했다. 그는 “보도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길 전 사장은 ‘큐시트’를 팩스로 보내라고 요구해 매일 오후 5시 정도 팩스로 보냈다”며 “주말이나 해외출장 등 길환영 사장이 없는 날엔 휴대전화로 큐시트 사진을 찍어 문자메시지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참고인으로 출석한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일일이 팩스 기록을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심 기자는 KBS 기자로 재직할 때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 진상조사단 실무자였다.

▲ 세월호특조위 3차 청문회 마지막날인 2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격려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증인이었지만 불출석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김 전 국장에게 압박 전화를 한 것에 대해 “정부 입장을 바로잡아달라는 항의 차원”이라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청와대 수석의 전화를 압력으로 느꼈다”면서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통화는 보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전화가 온 이후에도 취재 기자의 현장 보고를 그대로 반영해 리포트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번 청문회에 증인들이 대거 불출석하며 일부 언론에서는 ‘반쪽청문회’라는 지적을 제기했지만 세월호특조위는 김 전 국장의 문자메시지 등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는 성과를 남겼다. 

이석태 세월호특조위원장은 “청문회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걱정이 있었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진실의 가닥은 잡았다고 생각한다”며 “언론 분야를 보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우려스럽다. 앞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김서중 특조위원은 “세월호 참사의 본질이 언론에 의해 어떻게 왜곡됐는지 밝히기 위해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세월호특조위는 강제 종료될 수 없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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