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님의 기고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와 관련, 독자 김영환님이 반박 기고를 보내주셨습니다. 관련 논쟁은 미디어오늘 토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eta.mediatoday.co.kr/topic/613589/ - 편집자주

사실상 정의당은 더 이상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과 그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해당 사건의 여파로 협의 없이 작품연재가 중단된 웹툰 작가가 있었고, '메갈리아4'에 대한 민원들이 쏟아져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던 운영자가 당일 권고사직 처리 되었으며, 게임방송 캐스터는 마이크를 빼앗겼고, 여성 게임 개발자들은 현재 자기가 속한 회사를 SNS에서 지우거나, 페이스북에 혹시라도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해서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다. 프리랜서의 계약해지는 회사와 "원만한 합의"를 거쳤기 때문에 더이상 문제시해서는 안 된다. 당일에 이루어진 권고사직은 부당하나, 당사자가 잘못한 일이니만큼 응당 감수해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메갈리아이며, 메갈리아를 옹호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니까.

정의당, 그리고 진보진영이 이 같은 말들을 쉽사리 내뱉는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지난 삶을 부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논평을 철회한 정의당의 선택은 실망스럽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군가 따로 비판해야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이선옥의 글, 그리고 진보진영 전반에 깔린 문제와 남겨진 과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다.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면 안 된다

오랜 시간동안 한국사회가 굳건하게 지켜온 단 하나의 관습이 있다. 바로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을 아주 손쉽게 한 덩어리로 퉁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하여 진보활동가들을 괴롭혀왔다. 지난 4년 동안 정의당은 통합진보당과 다른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써야만 했다. 이미 서로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뒤끝도 좋지 않게 헤어졌지만, 시장에서 만나는 유권자들은 여전히 "이정희네 당 아니야?"라고 묻는다. 진보운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NL과 PD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운동권', 아니면 '빨갱이'로 퉁치면 간단하다.

이는 이선옥 역시 동일하게 지적하는 부분이며, 이는 현실 속에서 몸으로 부딪혀야하는 활동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실제로 정의당은 지난 4년 동안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노동당이나 민중연합당의 지지자라면 기겁을 할 만한 '군복 입은 심상정', 그리고 안보전문가 김종대의 영입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선택은 실제로 나이브하거나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진보진영의 외교안보정책을 상당부분 보완하고, 정의당을 극단주의자들의 정당이라고 평가하지 않게끔 도움을 주었다. 물론 필자는 정의당의 이 같은 행보가 당이 지향하는 가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더 폭넓고 다양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여성주의 노선에 있어서도 극단주의를 선택하지 않고, 그들과 선을 그음으로서 오히려 여성주의적 이상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의 존재로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를 부정하는데 시간을 빼앗긴다면, 여성주의가 발 딛고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 있다는 판단은 어느 정도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보다 대중들에게 손쉽게 가치를 전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논란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선옥의 글은 문제의 핵심을 완전하게 빗나가버렸다. 논란이 일어난 배경과 사실관계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메갈리아가 요즘 문제가 되고, 진보진영이 싸잡혀 욕을 먹게 되니 일단 선을 긋고 보자"는 동기 아래에서 글을 급하게 작성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선옥은 메갈리아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근거하여, 이번 사건을 기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잇따른 혐오발언으로 논란이 되어온 옹달샘과 메갈리아의 사례들을 비교한 것을 예로 들어보자. 옹달샘은 잇따른 발언들로 일부 광고에서 하차하거나, 공개적인 사과를 계속해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연예활동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유상무를 제외한 나머지 2인은 여전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김자연은 '클로저스' 외에도 '최강의 군단'에서 하차했으며, '괴리성 밀리언아서'는 김자연의 연기분량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희화화 하는 발언을 한 것도 아니며, 그저 크라우드 펀딩으로 티셔츠 하나 구매해서 SNS에 인증한 것의 책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임에 불과하다. 문제가 되었던 네티즌과의 언쟁과정에서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 또한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밝혔을 뿐이다.

여기서 다시 필자의 글 바로 앞으로 되돌아가보자. 넥슨의 결정에 반대하고, 김자연의 하차에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메갈이냐"는 질문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징계절차를 건너뛰고 직장을 잃어버린 게임 운영자와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이유 하나로 근신처분을 받고 출근을 하지 못하는 게임 원화가의 사례가 등장했다. 프리랜서 노동자의 갑작스러운 계약해지 과정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주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가 작용하지 않고, 마냥 '원만하게' 계약해지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그리고 논란을 통한 계약해지는 해당 노동자의 향후 직업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다. 이 모든 문제들은 우리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선옥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운동의 모습들을 알지 못하면 운동을 바꾸지 못한다

그리고 이선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이런 규탄이 내외부에서 터져 나오는지 헤아리지 못하고 반동의 물결 앞에 선 지사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한 진보진영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고립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문제는 대단한 대의에 근거한 것도 아니며, 정의당과 녹색당의 논평은 대단히 급진적인 주장을 늘어놓은 것 또한 아니었다. 앞에서 열거했던 수많은 사례들은 '메갈리아'만 엮이지 않는다면 누구나 분노할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경영상의 이유', 그 밖의 수많은 핑계로 해고를 일삼는 고용주들에게 분노한다. 우리는 가게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상인과 점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손님들에게 분노한다. 그런데 왜 '메갈리아'가 엮이면 우리는 그냥 입을 다물고 "원만한 계약해지" 혹은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하는가? 독자의 클릭을 통해 먹고사는 웹툰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생각 그 자체에 대해 공격이 들어왔을 때도 마땅히 친절하게 응대해야하는 특별한 의무가 부여되는가? 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하는 듯한 이선옥의 주장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었던 자신의 삶 자체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선옥은 '메갈리아', 정확히는 '디씨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각종 커뮤니티들에서 크고 작게 벌어진 문제들이 이 문제의 씨앗이며, 마땅히 고려해야한다고 말한다.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이선옥은 이번 문제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이 유감이지만, 3개 정당의 논평들이 가진 차이를 굳이 고려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자기 생각만 이야기하고 있다. 이선옥의 글에서도 지나가듯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의 논평은 제각기 다른 포인트를 향하고 있다. 그중 정의당과 녹색당의 논평은 그냥 '양심의 자유'는 지켜져야 하며, 그것이 직업활동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선 두 정당의 논평, 특히 정의당의 논평이 너무나 나이브하게 느껴져 불만이었을 것이다.(정의당의 경우, "역시 해일이 오면 조개를 줍지 않는 당이라 논평도 그 모양이다"라는 비난도 들을 법 했다.)

사실 이선옥의 글 전체에서 비판하는 내용은 "금지된 언어를 더 크게 말해야한다"는 노동당 여성위원회의 논평에 해당한다. 실제로 노동당 여성위원회는 '메갈리아' 계열 커뮤니티들이 갖는 '미러링'이 주는 문제점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왜 운동방식을 타인에 허락 받아야하는 입장이냐"고 반문하는 쪽이다. 그런데 노동당은 이 논평에 뒤이은 당내 논쟁이 정의당만큼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논평에 대한 당원들의 반발을 이야기할 때가 되니, 갑자기 정의당의 논평을 끌어다 비판을 한다. 정의당에서 논평을 두고 당내 논쟁이 일어난 이유는 중앙당의 논평 철회 공지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논평의 내용이 본래 취지대로 읽혀지지 않은 상황에 있었다. 비슷한 듯한 세 정당의 논평은 비교하기에 너무나 다른 내용들이었고, 그에 따른 반발도 비슷한 듯 달랐다.

이선옥은 진보정당 3당의 논평과 논평에 뒤따른 논란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공론의 장은 현실의 구체적인 인식과 개별존재들 사이의 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할 때, 건전하게 유지된다. 이선옥의 글은 그 단계를 내려놓고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개별 현상들을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문화예술노동, 창작자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논점들을 남겼으며, 다른 한 편으로 '메갈리아'에 대한 반감들에서 나타나는 운동의 한계,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 그 자체에 대한 반감이라는 과제를 서로 다른 부문의 활동가들에게 안겨주었다. 당연히 글 하나로 모든 논쟁의 장이 열리지 않는다. 토론을 하고 싶다면 각 쟁점들을 분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한다. 결론을 지어놓고 주장을 펼치는 소모적 논쟁이 아닌, 개별 쟁점과 현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운동의 모습을 제대로 알려하지 않는데, 바꾸려는 운동의 모습이 잡힐리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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