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탈북한 북한 식당 종업원·지배인의 인신구제청구소송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가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최근 국정원장이 직접 13명의 탈북 식당 종업원 등에 대해 보호결정을 한 뒤 6개월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이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탈북자지원법)과 법 시행령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채희준 민변 통일위원장은 23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24일 오전 경기도 시흥경찰서에 국정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통일부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국내에 입국한 뒤 국정원 관할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합동심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고 2~3개월 안에 통일부 소속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로 이송된다. 장소도 협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통일부 정착지원과 담당사무관은 전했다. 이 때 대부분 통일부장관이 해당 탈북자에 대해 ‘보호결정’을 한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는 국정원장이 직접 ‘보호결정’을 했다. 또한 이들을 하나원으로 인계하지도 않은채 국정원이 6개월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통일부 정착지원과 담당사무관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엔 국정원장이 보호결정을 한 경우”라며 “이달(6월) 초 국정원장이 (탈북 종업원들이) ‘북한이탈주민’으로 보호결정을 했다고 통일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서면으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관은 “북한이탈 주민에 대한 ‘보호 결정’은 통일부 장관이 하게 돼 있으나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사람에 대해서는 국가정보원장이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과거에도 이런 전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 지난 21일 민변의 채희준(왼쪽) 천낙붕 변호사가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보호법상 구제 청구 소송을 마친 후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같은 국정원장의 결정에 민변 통일위원회 측은 탈북자지원법을 위배했다고 비판했다. 탈북자지원법 제8조 1항은 “통일부장관이…심의를 거쳐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며 “다만,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국가정보원장이 그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고 규정했다.

특히 탈북자지원법 시행령의 14조는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이적의 죄, 암호 부정사용죄 및 국가보안법 또는 군사기밀보호법에 따른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다가 전향의사를 표시한 사람 △북한 노동당·내각·군·사회안전성 및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북한체제 수호를 위해 적극 활동한 사람으로, 국가정보원장이 국가안전보장에 긴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지정했다. 이밖에도 △북한 최고권력자의 배우자 또는 그의 친인척 △국가안전보장에 밀접히 연관되는 첨단과학이나 그 밖의 특수전문분야에 중요한 첩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등 네가지 유형으로 열거돼 있다. 이 항목에 포함된 사람에 대해서만 국정원장이 보호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채희준 민변 통일위원장은 “탈북자에 대해 국정원장이 센터에 수용해서 수사한 뒤 통일부에 넘기면, 수사결과에 따라 통일부장관이 ‘보호여부’를 결정하고, 이후 해당 탈북자가 하나원에서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뒤 거주지와 정착지원금을 받고 나가는 것이 일반적”며 “국정원장이 보호결정을 하는 경우는 탈북자지원법률 8조1항과 시행령 14조에 의한 것에 한해서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채 위원장은 “식당에서 서빙하고 공연하는 사람이 ‘내란, 외환,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누설, 최고권력자 친인척’에 해당되지 된다는 것이냐”며 “이들이 국가안전보장에 영향을 현저히 줄 수 있느냐. 그런데도 국정원장이 이를 결정한 것은 위법”이라고 비판했다.

채 위원장은 “이 사람들은 국정원장이 정한 시설에 있을 이유가 없고 하나원에 가야 한다”며 “국정원장이 보호 결정한 뿐 아니라 이런 시설에 종업원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종업원들에 대한 접견거부, 이들을 법원에 출석시키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채 위원장은 전했다.

한편, 채 위원장은 탈북 종업원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위임장과 관련해 “법적 효력이 있느냐”, “실제 부모가 맞는지 확인해야”, “해당 부모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위임장을 작성했느냐”는 KBS의 22일자 9시뉴스에 대해서도 가족으로부터 투명하게 위임을 받았다고 밝혔다.

▲ 지난 22일 방송된 KBS <뉴스9>
채 위원장은 “피수용자(종업원들)의 인신구제 청구소송을 위해 가족으로부터 위임을 받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베이징의 정기열 칭화대 교수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이라며 “이후 민변 이메일로 보내줬다. 통일부에 사후 접촉신고를 양식대로 다 했다. 모든 과정은 투명한 절차로 진행됐다. 이런 사정은 조선일보에도 다 설명해줬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21일 인신보호 구제 청구소송에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낸 것에 대해 채 위원장은 재판부가 피수용자(종업원들)의 신문도 듣지 못한채 양쪽 대리인 진술만 듣고 재판을 끝내려 한 것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채 위원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이영제 판사가 종업원들을 다시 부르지 않겠다고 했으며, 종업원들 가족의 사진 대신 동영상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양쪽 대리인 진술만 듣고 끝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을 고려할 때 당국의 압력없이 위임장을 자의로 작성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KBS 보도에 대해 채 위원장은 “해당 부모들이 20대까지 키운 딸이 없어져서 확인해보니 남한에 들어갔다는 걸 알았을 때 딸을 찾고 돌려보내달라고 한 것”이라며 “이념과 체제를 넘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는 “당국이 강요를 했든 안했든 딸이 남한에 있다는데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였다.

▲ 지난 4월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지배인 13명이 집단탈북했다며 통일부가 제공한 사진. ⓒ 연합뉴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