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불황으로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중인 현대상선이 수 년 전 거액의 연수원 건축사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회사와 그룹에 아무 직함이 없는 이른바 ‘그림자 실세’로 알려진 인물이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광고대행업체 ISMG코리아를 운영하고 있는 황두연 대표가 이 사업 계약체결 및 공사 책임을 맡았으며, 이 과정에서 횡령의혹이 불거져 수사를 받기도 했다. 횡령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도주해 황 대표를 비롯해 관련 의혹에 연루된 인물들에 대해 검찰은 참고인중지로 불기소 처분한 상태이다. 현대상선의 대규모 투자 사업의 의사결정에 사외 인사가 관여해 책임경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부실의 한 요인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및 현대상선 측은 황 대표는 현대그룹 실세가 아니며 공사를 지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미디어오늘은 황두연 대표 측에 검찰 수사결과와 관련해 질의서를 전달하는 등 여러 차례 취재요청 및 질의를 했으나 7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7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지난 2014년 1월8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황의수·담당검사 정효삼)의 황두연 대표 등 피의자 9인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불기소결정서를 보면 이같이 나온다. 검찰은 황 대표가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 주력계열사(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가 출자한 현대종합연수원의 건립 공사를 주도한 책임자로 규정했다.

검찰은 황 대표에 대해 “현대그룹의 광고 대행업체인 주식회사 아이에스엠지코리아(ISMG코리아)의 운영자로 속칭 ‘현대그룹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며 현대그룹의 중요 경영현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자”라며 “공사비 1300억 원 규모의 경기 양평균 강하면 소재 현대종합연수원(블룸비스타) 신축공사의 업무를 총괄지휘하던 자”라고 썼다.

▲ 억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상선 본사 @ 연합뉴스
현대상선은 2012년~2013년 현대종합연수원 주식 매입과 유상증자 참여로 1209억 원 넘는 돈을 투자했다가 4년 여 만인 지난달 주식전량을 856억 원에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했다. 353억 원을 손해보고 판 사업에 해당된다.

검찰은 황 대표가 현대종합연수원 공사계약과 진행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황 대표가 공사관련자들과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제보자 현대증권 노조위원장 민경윤의 진술 △이 공사의 시공사였던 P사와 하도급계약을 맺고 공사진행을 맡은 H건설공영이 현대종합연수원에 발송한 ‘선급금 사용내역서 제출 및 계약해지 예정통보의 답변 체납기성금 청구’ 공문에 황 대표를 ‘현대그룹 사장 또는 현대그룹 대표’로 호칭하고 황두연에게 공사와 관련된 선급금지급 내역 등을 보고했다는 내용의 기재가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또한 검찰은 현대종합연수원 공사 시행사였던 L사 주주 황아무개, 박아무개가 2009년 5월13일 매도한 L사 주식 매도대금 56억 원 중 32억 원이 이틀 뒤 황 대표 및 처 윤아무개 명의의 계좌로 입금된 거래내역이 확인됐으며 황아무개씨는 황두연 대표가 소유한 O사의 직원으로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불기소결정서에 썼다.

또한 검찰은 녹취록 문건도 황 대표의 현대종합연수원 관여의 정황증거로 제시했다. 2012년 5월21일부터 그해 7월16일 사이 작성된 ‘WMI미팅내용정리’ 문건(민경윤 전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이 제출)에서 황 대표는 자신이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주)WMI인베스트먼트(이하 ‘WMI’) 회의실에서 WMI 강아무개 사장, 박아무개, 서아무개 이사 등으로부터 현대그룹 계열사 주요 현안 업무보고를 받고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하면서 ‘양평연수원 건’이라는 안건으로 (현대그룹) 계열편입과 관련된 업무를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 확인됐다고 검찰은 기재했다.

검찰은 “이 같은 민경윤의 진술, (주)HS건설공영의 공문, 주식양도대금 관련 계좌거래내역, ‘WMI 미팅내용 정리’ 문건을 종합하면 황두연이 본건공사와 관련된 계약체결 및 공사진행에 시행사 측으로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검찰 불기소결정문에 인용된 H건설공영의 공문(2012년 11월5일자)을 보면, 실제로 이회사가 현대종합연수원에 대해 황두연 대표를 “현대그룹 황두연 사장님 요구로 선급사용내역을 황 사장님께 보내드렸습니다”로 표현하는가 하면, “현대그룹 황두연 대표님과 당사 박아무개 대표님 사이에 양평 현대연수원 공사계약에 관해 사전 약속된 내용이 있었는바…”라고 나와있다.

검찰은 황 대표를 비롯한 시행사 대표, 시공사 대표, 도급업체 하도급업체 대표 등 공사 책임자들의 횡령의혹과 관련해 핵심 피의자가 도주하는 바람에 ‘참고인중지’ 결정을 통해 불기소처분했다. 검찰은 “시공사 등이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비자금 규모가 공사대금의 10%인 39억 원 대에 이르는 점, 하도급 업체가 31억 원의 허위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한 경위, 이에 따른 비자금 조성 규모 등을 확인해야 진상을 밝힐 수 있으나 현재 핵심 피의자 정아무개씨가 도주해 소재가 불(분)명(하다)”며 “2013년 11월14일 정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같은날 기소중지(수배)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황 대표 등에 대해 참고인중지 결정을 한 이후 아직 추가 수사를 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황 대표가 현대그룹의 그림자 실세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 지난 3일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아셈타워 건물 1층 엘리베이터에 붙은 ISMG 코리아 안내판. 사진=조현호 기자
이동열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3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한 사건이 맞다”며 “정아무개씨에 대해 기소중지가 된 이후, 수사 더이상 진행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 차장검사는 “수십만 건에 달하는 기소중지(수배) 사건의 피의자 검거를 위해 모두 검거반 편성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수배를 걸어놓고 기소중지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 지명수배까지 했는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두연 대표 등의 불기소결정문에 황 대표가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의 아무 직함이 없는데도 어떻게 현대종합연수원 공사에 책임을 맡게 됐는지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다는 지적에 이 차장검사는 “불기소결정서에 보면, ‘황두연 대표가 현대그룹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면서 주요 경영현안에 대해 의사결정을 해왔다’고 공사 책임을 맡게 된 근거가 설명돼 있다”며 “이는 피의사실로 설명돼 있지만 피의사실 자체가 우리가 조사하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황두연 대표의 횡령사건 연루 여부에 대해 이동열 차장검사는 “횡령여부나 비자금 조성 여부는 이를 전달한 정아무개씨를 조사해봐야 아는데 도주상태”라며 “비자금 조성을 (직접) 한 사람이 없어졌는데 어떻게 기소하겠느냐”고 말했다.

현대그룹과 연관 돼 있어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이 차장은 “현대 쪽에만 관대하게 처분해주기 위해 수사를 엉성하게 할 이유가 어디있겠느냐”며 “참고인 중지가 되면 수사진행이 안된다. 봐주기라는 표현은 과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황 대표가 현대상선 등의 경영에 관여한 일이 없으며 공사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1~3일 여러 차례 불기소결정문의 주요 내용을 전달해 입장을 문의하자 이 같은 답변서를 전달해왔다.

현대그룹은 답변서에서 “검찰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 내용을 현대그룹이 확인할 수 없으나, 만일 그런 내용으로 기재돼 있다면, 이는 시중에 떠도는 의혹을 검찰에 진정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검찰이 요약해 적시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며 “황두연 대표는 현대그룹의 실세가 아니며, 공사를 지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황두연 대표는 현대그룹 및 계열사의 주주, 임원, 직원 신분이 전혀 아니었으며, 현대그룹이 황 대표에게 현대종합연수원 공사 권한을 위임한 바 없으며, 황 대표도 공사를 지휘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가 현대그룹에 공사책임자로 검찰 자료에 적시된 사실, 횡령 의혹으로 수사를 받은 사실 등에 대해 현대그룹은 “검찰 수사사건이며, 아직 진위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며 “또한 검찰 수수사건의 피의사실에 대해 이를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하는 질문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답했다.

황두연 ISMG 코리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ISMG코리아에 여러차례 취재요청을 하고, 위와 같은 검찰 수사요지의 내용이 담긴 질의서를 지난 3일 비서에 전달했으며 회사 공식 이메일로도 전달했으나 황 대표 측은 8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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