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전 KBS 사장의 보도개입을 폭로했다 중징계를 받은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현 KBS 방송문화연구소 공영성연구부 연구원)이 ‘정당한 징계였다’는 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 전 국장은 재판부가 길 전 사장의 보도개입이 있었다는 자신의 폭로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폭로한 행위 자체는 징계받을 일이라고 판결한 대목이 모순이라며 끝까지 가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을 인정하면 청와대와 사장의 KBS 보도개입에 굴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전 국장은 자신의 변호인을 통해 지난 18일 서울남부지법 민사13부(재판장 김도현 부장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김 전 국장은 20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반박했다.

재판부는 “외견상 폭로를 통해 보도의 독립·자율성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표행위여도 오로지 자신에 대한 사직 압박 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진 것이면 보도자율성 수호 자체는 진정한 목적으로 볼 수 없다”며 “길 전 사장이 회견 30분 전에 김 전 국장에게 ‘퇴사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해 김 전 국장이 그동안 지시에 따라 움직였음에도 버림받았다는 강한 배신감에 충동적으로 폭로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 연합뉴스
이를 두고 김 전 국장은 “법정에 제출한 ‘비망록’의 경우 이것을 작성한 것 자체가 저항의 증거”라며 “비망록의 내용을 봐도, 나름대로 내 위치에서 부당한 지시에 거부하고, 애초 편집팀이 작성한 큐시트 원안대로 방송하려고 노력한 대목들도 있다. 가짜 큐시트를 보낸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국장은 “이미 2013년 윤창중 사건 때부터 퇴직한 선배 해직언론인에게 ‘내가 보도개입을 폭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자문을 구한 일도 있다”며 “하지만 참으라고 해서 당시엔 하지 못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폭로할 생각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은 “부당한 보도개입을 폭로하는 것은 부당한 일들이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도달할 때 폭발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라며 “왜 처음에 안했냐는 건 참다참다 폭발한 내부고발자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이 보도국장의 사표를 받으라 압력을 행사했는지 증거가 부족하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서도 김 전 국장은 반박하고 나섰다.

길 전 사장이 지난 2014년 5월9일 기자회견 직전에 청와대로부터 김 전 국장의 사표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길 전 사장이 기자회견 직전 김 전 국장에 사직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사실과, 당시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이 KBS측에 ‘사안이 심각하니 노력해 달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하지만 (이 정도의) 인정사실만으로는 길 전 사장이 청와대로부터 김 전 국장의 사직을 지시받았다거나 압력을 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시곤 전 국장은 “사표를 요구한 것은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박준우 수석이 KBS에 전화를 넣어 그 결과로 김시곤 보도국장이 그만뒀다고 박영선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서 말하고 다녔다”며 “그런데 이것이 증거가 없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 전 국장은 특히 청와대 정무수석이 KBS에 전화걸어 보도국장의 사표를 받으라 한 것은 KBS 사규에도 위반될 뿐 아니라 심각한 보도 독립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청와대의 하수인으로 전락할 수 있으므로 폭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김 전 국장은 전했다.

▲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 사진=노컷뉴스
김 전 국장은 “내가 사적인 목적으로 폭로했다는데,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볼 때 내가 당시 폭로한 것은 내게는 최악의 선택지였다”며 “이후 문책인사에 징계까지 실제로 받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가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은 자신에 대한 징계이유서의 핵심이 ‘왜 외부에 기자회견하고 폭로내용했느냐’였다는 점을 들어 “재판부는 정작 내가 폭로한 내용은 맞다고 해놓고 징계는 정당했다는 모순된 판결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항소까지 하려는 이유에 대해 김 전 국장은 “내 명예회복 뿐 아니라 KBS 명예회복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라며 “언론기관이 권력에 대한 굴종을 보여준 사건이 아니냐. 굴종을 정당화시키는 판결로 해석될 수 있다. 가만히 있지 왜 폭로하느냐는 식의 판단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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