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웹툰을 올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해고됐던 권성민 MBC PD가 대법원으로부터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았다. 권 PD가 지난해 1월 사측의 해고처분 후 불과 1년4개월 만에 1·2·3심에서 모두 승소하면서 MBC 경영진의 ‘증거 없는 해고’ 논란이 또다시 불거질 전망이다. 

지난 1월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백종문 녹취록’에서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은 2012년 ‘공정방송’ 파업 때 해고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에 대해 “이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해고한 거다. 해고해 놓고 나중에 소송을 제기해 들어오면 그때 받아주면 될 거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MBC 사측은 지난해 1월21일 권 PD가 자신의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웹툰이 미디어오늘 등 언론사에 노출된 상황이 취업규칙 제3조(준수의무)와 제4조(품위유지) 등 MBC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공정성과 품격유지를 위반했다는 등의 사유로 해고를 통보했다. 이후 MBC는 전례 없던 ‘웹툰 해고’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권성민 MBC 예능PD가 직접 그린 만화 '예능국 이야기'의 한 장면. ⓒ권성민
12일 대법원 재판부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MBC가 권 PD에 대한 해고무효 확인소송 항소심 패소 후 상고한 것에 대해 상고의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해버린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권 PD가 그린 웹툰이 “MBC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 판결은 정당하므로 MBC의 항소는 이유가 없다”고 기각했다. MBC의 해고 사유는 재론한 여지도 없이 무모했다는 판단이다. (관련기사 : “만화 그렸다고 해고…지금이 전두환 시대인가”)

법원은 또 MBC가 권 PD의 6개월 정직 기간이 끝난 후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전보 조치한 것에 대해서도 “전보 발령은 권 PD의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전보로 인한 권 PD의 불이익이 크고 사측이 신의 성실의 원칙상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권 PD가 1심에서 승소한 정직처분 취소소송은 아직 항소심 변론 절차가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권 PD에 대한 징계 사유는 일부 인정되나, 정직 6개월 징계는 지나치게 무거워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권성민 MBC 예능PD. 사진=김도연 기자
권 PD는 징계해고를 당하기 전에도 2014년 5월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오유)’ 게시판에 ‘MBC의 세월호 보도 참사’에 대해 개인적 사과를 담은 글(엠병신 PD입니다)을 올렸다는 이유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권 PD는 해당 글에서 “MBC의 뉴스 결정권을 쥔 이들은 모든 비판으로부터 두 귀를 틀어막은 채 자화자찬하기에 바쁘다”며 “세월호 참사의 MBC 보도는 보도 그 자체조차 참사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번 보도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떠들었다”고 비판했다.

권 PD는 회사로부터 ‘찍히기’ 시작한 오유 글에 대해 “파업 때 우리가 왜 싸웠는지 공공연히 알려졌음에도 밖에 사람들은 ‘결국 먹고 살아야 해서 변했구나’ 하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며 “그래서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 회사 동료와 선배들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왜 그런 방송과 뉴스가 나가야 하는지 책임을 확실히 알리고 싶어서 내부가 이런 상황이라며 이해 구하고 싶다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 권성민, “복직하면 소외·빈곤 다루고 싶다”)

지난 1월25일자 뉴스타파 보도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갈무리.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로 권 PD는 이제 MBC 예능국으로 복직할 예정이지만, 사측이 권 PD에 대해 “기형으로 난 떡잎은 잘라내야 한다”고 밝힌 것처럼 제작부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사표를 낸 이상호 기자에게 했던 것처럼 추가 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 PD에 대한 해고무효 판결 이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조능희 본부장)는 13일 “‘백종문 녹취록’에서 백종문 본부장이 떠들었던 얘기처럼 회사는 소송을 하면 질 게 뻔해도 일단 본보기로 해고시키겠다는 괘씸죄, 해고를 당한 당사자와 그 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나는 알 바 아니라는 심보였다”며 “무리한 징계와 해고를 밀어붙였던 안광한 경영진은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권 PD의 해고무효 1심 선고에 반발해 MBC 사측이 낸 성명을 그대로 돌려주며 “기형으로 난 떡잎은 잘라내야 잡초로 자라지 않고, 피를 뽑아줘야 벼가 잘 자라듯, 사과와 해고 철회의 기회를 줬음에도 계속해서 권 PD와 노조를 조롱하고 비웃은 경영진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요구는 퇴진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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