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좀 해! 어떻게 이런 게 나갈 수 있어?”
“똑바로 좀 해! 어떻게 이런 게 나갈 수 있어?”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비망록’… “길환영 전 사장이 ‘넣으라-빼라, 올려라-내려라, 늘려라-줄여라’ 요구”, 길환영 “사실 무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자신의 징계무효소송 중인 법정에 제출한 비망록에는 길환영 전 사장이 일상적으로 9시뉴스의 주요 아이템에 개입한 흔적이 엿보인다.

김 전 국장은 지난달 12일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13부에 준비서면에 첨부한 증거자료로 ‘보도국장직을 수행하며 작성했던 비망록(국장업무일일기록)’을 제출했다.

김 전 국장의 비망록에는 자신의 보도국장직 수행지침과 길환영 전 사장에 대한 평가, 길 전 사장이 개입해 9시뉴스 편집안이 바뀐 내역(표)으로 구성돼 있다. 길 전 사장은 김 전 국장으로부터 매일 오후 5시경 팩스로 가편집안(큐시트)를 받은 뒤 약 30여분 뒤 전화통화로 수정사항을 요구했다고 김 전 국장이 10일 전했다.

비망록에 기록된 표 내용을 분석해보면, 길 전 사장이 큐시트에 추가로 뉴스를 넣으라고 지시한 사례가 모두 7건이며,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이 3건, 애초 배치한 비슷한 유형의 뉴스 꼭지 수를 늘리라는 지시 4건, 줄이라는 지시 1건, 큐시트 순서를 앞쪽에 배치하라는 지시 5건, 뒤쪽으로 빼라는 지시 4건 등 사장의 지시가 반영된 사례 24건이 들어있다. 이밖에 김 전 국장이 길 전 사장의 큐시트 수정 요구를 거부하거나 설득해 원안을 고수한 사례가 5건, 방송 이후 사장이 김 전 국장에게 항의한 사례 1건, 청와대가 항의한 사례 1건, 뉴스 방향성 지시(또는 의견) 관련 기록 2건 등이 담겨있다.

큐시트에 이른바 ‘넣으라-빼라’, ‘올려라-내려라’, ‘늘려라-줄여라’ 등 크게 6가지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넣으라’는 지시의 사례로 김 전 국장은 지난 2013년 1월11일 9시 뉴스에서 애초 ‘인수위 국방부 업무 보고’ 뉴스를 톱뉴스로 편집하려 했으나 길 전 사장이 ‘박 당선인, 글로벌 취업·창업 확대’를 추가하라고 지시했다고 비망록에 썼다. 길 전 사장이 요구한 이 뉴스는 톱뉴스로 방송됐다.

또한 그해 3월8일과 9일에도 각각 사장의 지시로 ‘3월 국회 개점휴업... 정부조직개편 협상 난항’(14번째)과 ‘새 정부 출범 2주… 정치실종 국정 파행’(10번째) 뉴스가 9시뉴스에 새로 추가돼 방송됐다고 김 전 국장은 썼다.

7월17일엔 편집에 없던 “국가기록원서 남북정상대화록 못 찾아”라는 리포트가 사장의 지시로 새로 추가돼 톱뉴스로 방송됐다고 김 전 국장은 썼다. 이날 MBC·SBS는 이 뉴스를 방송하지 않았다.

10월20일자 9시뉴스에서 3번째 뉴스로 방송된 ‘국회 법사위, 국정원 댓글 공방’에 대해 김시곤 전 국장은 “일요일임에도 사장은 전화를 걸어와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발언했는데 촬영기자들이 촬영해 놨을 거라며 뉴스에 다루라’고 지시했다”며 “결국 정치부에서 급조해 방송됐다”고 썼다.

▲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지난달 법정에 제출한 보도국장 재임시절 국장업무일일기록(비망록) 이미지.
빠진 사례로 김 전 국장은 2013년 10월3일 정치부에서 기획한 ‘감사원 연말 몰아치기 예산 사용...내가 하면 문제없다’라는 뉴스아이템을 들었다. 애초 이 아이템을 사장에게 전달한 가편집안에는 몰래 빼놓았으나 길 전 사장이 이를 찾아내 방송하지 말라고 지시해 결국 방송하지 못했다고 김 전 국장은 비망록에 기록했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의 직무배제 소식이 나온 그해 10월19일 9시뉴스에 이 소식을 뉴스 맨 뒷부분의 ‘띠단신’(단신 모음)에 넣으려 했으나 길 전 사장이 절대 다루지 말라고 지시해 여기에도 못 내보냈다고 비망록에 나온다.

이밖에 대통령 주재 첫 국무회의 뉴스(2013년 3월11일)는 애초 1건이었으나 사장지시로 2건으로 늘어났으며 어린이날 청와대행사와 대통령 방미 소식(그해 5월5일)을 묶어 한 건의 리포트로 준비했으나 사장 지시로 각각 1건 씩 2건의 뉴스로 방송했다고 김 전 국장은 썼다. 비망록에 따르면, 그해 대통령 8·15 경축사(8월15일)의 경우 2건에서 3건(톱뉴스~세번째뉴스)으로 늘어났다.

그해 한창 문제가 됐던 윤창중 성추행 사건 속보의 경우 5월14일 9시뉴스에 애초 3건을 톱뉴스부터 세 번째 뉴스까지 방송하려 했으나 사장과 보도본부장 주문으로 ‘정부, 북한에 대화 제의’ 뉴스와 ‘대화 제의 배경’이 각각 톱뉴스와 두 번째뉴스로 방송됐다고 김 전 국장은 비망록에 적었다. 대신 윤창충 속보는 2건으로 줄어 세번째와 네 번째 뉴스로 밀렸다는 것.

그 다음날인 15일에도 윤창중 사건 속보가 애초 8번째 뉴스였으나 사장 지시에 따라 9번째 뉴스로 밀렸고, ‘청와대, 후속조치하겠다’는 뉴스가 추가돼 10번째뉴스로 이어서 방송됐다고 비망록에 나온다.

그해 8월10일 ‘민주당 두 번째 장외집회+여 “구태정치”’ 소식을 톱뉴스로 준비했으나 사장 지시로 네 번째로 후진배치됐다 제작까지 늦어지는 바람에 8번째 뉴스로 밀렸다고 김 전 국장은 기록했다.

이밖에도 방송 이후 길 전 사장이 제작진에 항의한 사례도 비망록에 나온다. 비망록에 따르면, 2013년 8월21일 오전 편집회의 중 보도본부장과 자신, 정치부장, 사회2부장등 4명이 6층 사장실로 올라오라는 전화가 와서 휴가중인 사회2부장 대신 민필규 법조팀장과 함께 4명이 6층 사장실에 올라갔다. 당시 길 전 사장은 민필규 팀장에게 전날 나간 ‘국정원 댓글작업 11개 파트 더 있다’ 방송이 적절하냐고 다그치자 민필규 팀장이 “팩트인 이상 어떻게 방송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며 너무도 당당하게 반발하자 사장은 “민 팀장은 나가”라고 명령했다. 민 팀장이 나가자마자 길 전 사장은 보도본부장과 나 그리고 정치부장에게 버럭 화를 내며 “똑바로 좀 해~ 어떻게 이런 게 나갈 수 있어?”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고 김 전 국장은 비망록에 썼다.

이에 대해 KBS측은 사실관계를 길 전 사장과 김시곤 전 보도국장에 확인하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길환영 전 KBS 사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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