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와 영유아 집단 사망의 원인이 밝혀진 2011년부터 4년 넘게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해 온 옥시레킷벤키저는 최근에야 태도를 바꿨다. 피해자들에 대한 뒤늦은 사과에 나서는 한편, 자신들이 옥시를 인수한 것은 2001년이며 PHMG 성분이 들어간 살균제가 판매된 것은 2000년 10월부터라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옥시의 태도 변화는 검찰수사와 여론 악화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PHMG로 변경한 것이 레킷벤키저의 책임인지, 그 이전에 이뤄진 것인지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옥시 한국법인의 신현우 전 대표는 검찰에서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기 전까지는 PHMG가 아닌 ‘프리벤톨 R80’을 사용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영국 본사를 사태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옥시레킷벤키저가 이미 2001년부터 고객상담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용자들의 피해 호소를 접했고 PHMG 성분의 유해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판매를 계속했다는 증거도 드러났다. 따라서 이들은 응당한 처벌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뒤에야 정부는 관보에 원료 유독물질에 대해 "흡입하면 치명적임" " 반복 노출시 장기 손상" 을 표시하도록 공고했다. 자료제공=송기호 변호사
문제는 검찰이 주도하는 가습기 살균제 수사 국면에서 정부의 책임이 완전히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여론은 좀 다르다. 돌직구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와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조사가 지연된 책임에 대해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의견이 49.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조사인 옥시’는 24.0%, ‘국회’는 13.8%였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정부의 책임은 옥시 보다 가볍지 않다. 옥시가 흡입독성에 대한 동물실험 조차 없이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PHMG로 변경할 때, 정부는 기존 카페트 항균제로 승인된 이 성분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하지 않았다. 정부는 PHMG가 사용될 당시엔 화학물질의 용도가 변경될 경우 유해성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법조항이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역시 변명에 불과하다. 송기호 변호사는 “당시 국립환경과학원 고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 등에 관한 규정’은 흡입될 가능성이 큰 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추가 자료를 요구하도록 했고, 주 노출 경로가 흡입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도 급성 독성에 대한 시험 성적서를 심사 신청시 제출하도록 했다”며 정부가 이런 절차들을 준수했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GH(세퓨 등)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유해성 심사 당시 기업이 PGH의 배출경로를 “제품에 첨가(spray or aerosol 제품등/항균효과)”라고 명시했음에도 정부는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즉 기업은 2003년 규정에 따라 흡입 및 경피 독성에 관한 시험성적서를 제출해야 하며, 정부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제8조 제2항에 따라 제출을 명령해야 했다.

CMIT/MIT는 1998년 미 환경청(EPA)이 흡입 독성 자료를 발표해 “실내 사용이 실외 사용보다 더 심대한 급성 흡입 독성을 유발할 수 있다” “EPA는 단기간의 흡입 노출에 우려하고 있다”며 유해물질로 지정했음에도, 한국에선 2012년 9월에야 유독물로 고시됐다. 환경부는 20년간 ‘기존화학물질 고시’만으로 이 물질의 유해성 심사를 면제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의 강찬호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본질적으로 정부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며 “가습기살균제 인허가 과정 등에 개입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고발조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실시될 예정인 가운데, 야당은 기업들이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했는지의 여부와 함께 가습기 살균제 인허가 과정과 관리, 피해대책, 검찰 수사 등 정부 책임 부분도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딸을 잃은 아버지 최승운씨는 9일 더민주의 가습기살균제대책특위에 출석해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는 책임이 없다. 억울하면 가해기업에게 소송하라’고 얘기를 했다. 지난 5년간 정부는 소송 피고의 하나로서 저희를 방치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노력도 없었다”며 “독성물질 관리와 정부의 안일한 직무유기에 대해서 이번 청문회를 통해서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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