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회 대표의 행보가 당 안팎에서 정체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당내 반발은 크지 않다. 선거와 공천을 앞둔 상황에서 의원들이 일단 엎드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공천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 그리고 공천 이후다.

김종인 대표의 행보를 두고 ‘당 정체성’ 논란이 발생한 계기는 ‘북한 궤멸’이었다. 지난 2월 9일 경기도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한 김종인 대표는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더민주가 내세운 햇볕정책과는 거리에 있는, ‘북한붕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새누리당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국민의당은 햇볕정책을 부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18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 일각에서조차 북한체제의 붕괴나 궤멸을 이야기한다”며 김 대표의 발언을 새누리당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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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논란은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영입으로 인해 발생했다. 더민주는 18일 노무현 정부 때 한미FTA의 주역이던 김현종 전 교섭본부장을 영입했다. 불공정, 불평등 해소를 내세우는 더민주의 행보와 맞지 않으며 2011년 이명박 정부 때 한미FTA 비준을 반대했던 입장과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었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의 신정훈 더민주 의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당은 국내산업을 고려하며 개방을 탄력적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물론 당 지도부가 바뀌면서 정체성과 정책은 변화할 수 있지만, 반농민적이고 당의 정책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를 아무런 해명과 검증없이 데려온 것은 당 정체성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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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장하나 더민주 의원이 20일 ‘김현종 전 본부장 영입을 철회해야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커졌다. 이런 논란에도 김종인 대표는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김 대표는 22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그 많은 국회의원 중에 그 사람 하나 이야기하는 것 가지고 신경 쓸 게 뭐가 있겠나. 더민주에는 그런 사람이 많이 들어와야 종전의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더민주에 중도 색채를 더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 대표는 “김현종 같은 사람은 노무현 정권 때 통상본부장도 했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배제하면 어떻게 하려고 하나. 그게 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략적 접근이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적응하고 살아야지. 특히 정당은 세상이 변하는 것에 따라 국민들이 변하면 국민을 쫓아다녀야지 ‘나는 과거에 이랬기 때문에 영원히 이렇게만 산다’고 하면 영원히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한 ‘김현종 전 본부장 영입은 일관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일관성은 무슨 놈의 일관성. 세상이 바뀌면 당도 바뀌어야지 무슨 일관성이 밥먹여주는 줄 아느냐”라고 반문했다. 김 본부장은 또한 “더민주를 지지하는 사람은 민주당이라 지지하는 거지 김현종 한 명 데려왔다고 철회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어 “정당이란 걸 하다보면 말이 원래 말이 많은 거다. 그걸 일일이 다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 골치 아파서 아무것도 못한다”며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는 사람, 저런 소리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당내 반발에도 생각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이다.

▲ 김현종 전 UN대사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을 열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임당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 대표는 국민의당의 공세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투다. 정동영 전 의원은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며, 그리고 현재도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북한 궤멸론으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며 “한술 더 떠 18일에는 300만 농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한미FTA 추진 주역을 당당하게 영입했다. 민주 야당의 얼굴이자 대표가 될 수 있는 분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에 김 대표는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심심하니까 글 한 번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라”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22일 기자들과 오찬 자리에서 “무슨 예의를 지키나. 쓸데없는 소리하니 그런 소리를 듣는 거지”라며 “상황에 따라 막 말을 바꾸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뭐라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만약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 궤멸’ 발언을 했다면 당내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반면 김 대표가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는데도 당 내에서는 거의 반발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민주 혁신위원을 지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표 체제 하에서 대표의 모든 행위에 발목을 잡으면서, 대표의 권한에 통제를 가하려한 혁신안을 대표에게 공천권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황당한 왜곡을 하며 반대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며 “더민주 내 '친문'이건 '반문'이건, 다른 것은 몰라도 햇볕정책와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당 지도부의 '우클릭' 기조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영입된 '계몽절대군주'의 판단에 충실히 따르면 만사 오케이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대표가 우경화 행보에도 당내 반발을 물리칠 수 있는 이유로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공천 심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 꼽힌다. 더민주는 당 혁신위가 만든 혁신안 중 하나인 ‘현역의원 20% 컷오프’를 실시할 예정이다. 오는 23일 ‘하위 20%’에게 이를 통보한 뒤 48시간 내 이의 신청을 거쳐 25일 최종 발표한다.

더민주는 또한 컷오프 20%와 별개로 ‘3선 이상 중 절반 정밀심사’라는 초강수를 내놨다. 정장선 더민주 총선기획단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역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 현지조사 등을 토대로 한 경쟁력 지수를 산출해 3선 이상 현역 하위 50% 대상으로 공천관리위원회 위원 전원이 가부투표실시할 것”이라며 “재선 이하 현역 하위 30%를 대상으로 가부투표 실시하고 심사에서 미달되는 사람들을 일차적으로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의 윤리심사도 진행된다.

이 심사를 통과한 현역 의원만이 면접을 볼 수 있다. 정 단장은 “(심사에서 면접으로 가는) 비율은 알 수 없다”고까지 했다.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3선 이상 50%, 재선 이하 30%에게는 ‘피바람’이 불 수 있다는 뜻이다. 정 단장의 발표를 들은 기자들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재차 수치를 물어볼 정도로 강수였다. 정 단장은 발표 직후 기자들을 향해 “내가 공천신청 안 하길 잘했지”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당장 3선 의원들의 반발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장선 단장은 ‘공감대를 위해 3선 의원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 있나’라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단언했다.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만 했다. 정 단장는 “외부에서 온 분들이 굉장히 깐깐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포커스뉴스

공천 전까지는 김종인 체제에 반기를 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정동영 전 의원은 “예전 같으면 초재선 그룹이나 개혁적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영입 반대나 퇴진 성명'을 내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 정권 저 정권 왔다 갔다 하는 철새 대표는 안된다'며 식물 대표로 만들어놨을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총선 공천권을 쥔 고양이 앞에 납작 엎드려 일제히 입을 닫아버렸다”고 비판했다.

김종인 체제 이후 당 지지율이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은 22일 통화에서 “의원들이 (김 대표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니고 총선 전이니까 분열된 모습 최대한 자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훈 의원 역시 “많은 의원들이 겁 먹고 문제제기를 안 하는 건 아니고 다만 김종인 지도부가 당의 정체성을 재검토한다, 내지는 여러 가지 질서를 새롭게 재편해가는 과정이라 지켜보는 눈들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문제는 공천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다. 경쟁력 심사, 윤리심사, 면접 과정에서 탈락이 우려되는 인사들이 먼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컷오프나 현역 정밀심사 결과를 두고 잡음이 나올 수도 있다.

김종인 대표는 이에 대해 “원래 공천하고 나면 자연적으로 말이 조금 나오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지 뭐”라고 했다. 김종인 대표의 ‘마이웨이’ 행보가 공천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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