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하청공장에서 벌어진 상상초월의 산업재해
삼성전자 하청공장에서 벌어진 상상초월의 산업재해
“유령 노동자들, 70년대도 아니고 메탄올 중독이라니”… 드러난 건 처음, 추가 피해 가능성도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품을 제조하는 3차 하청업체 노동자 4명이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한 가운데 추가 조사를 통한 피해노동자가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주목된다.

이번 사태는 다단계 하청과 파견근로가 빚어낸 직업보건 사각지대가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휴대전화 부품 제조 사업장 A회사와 B회사는 알루미늄 절삭작업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는 용매로 메탄올을 사용했다. 피해노동자 4명은 에어건 등으로 제품 표면에 묻은 메탄올을 제거하는 작업 등을 맡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 과정에서 메탄올 증기를 흡입해 급성중독이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3명은 시력이 손상돼 실명 위기에 처해 있고 1명은 시력 결손 증상이 발견돼 추적검사 중이다.

▲ 노동건강연대가 만든 카드뉴스. 사진=노동건강연대 제공

메탄올은 ‘관리대상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는 고위험성 물질임에도 이를 다루는 노동자에 대한 안전관리대책은 없었다. 해당 사업장에는 제대로 된 환기장치가 마련돼있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안전교육과 보호장비를 모두 받지 못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배한 것이다. 현장 조사에 참여한 안전보건공단은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었으나 효율이 매우 낮았고 메탄올 증기가 작업장 내부로 확산·체류했다”면서 “작업장 내 고농도의 메탄올 증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호흡용 보호구를 미지급·미착용해 메탄올 증기를 그대로 흡입했다”고 밝혔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필수인 안전교육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해가 ‘메탄올 중독’이라는 점을 놀라워했다. 피해노동자 2인의 산재보험 신청을 지원한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메탄올이 중추신경계, 소화기계, 시신경에 손상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이라는 사실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노동건강연대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도 2016년에 메탄올 중독 산업재해가 일어날 거라곤 상상을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도 “산업현장에서 메탄올 중독은 처음 접수된 일”이라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을 정도로 이번 사건은 한국 산업현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며 “누구도 이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구조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다단계 하도급 불법파견 문제를 보지 않으면 문제는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불법파견 노동자는 유령과 같아, 직업안전 사각지대 더 심각해

해당 회사는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는 3차 하청업체였다. 알루미늄판을 끊어내는 CNC 절삭작업 공정이 다단계 구조로 외주화된 것이다. 피해노동자 4인은 모두 불법 파견 근로자였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근로가 금지돼있다. 일시적·간헐적인 필요에 한해 3개월 또는 6개월 파견을 가능케 했지만, 정규직의 출산·질병 등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박 노무사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경우 회사의 상당수 직원이 영세파견업체에서 파견된 노동자였다. 전형적인 ‘다단계 하청 불법파견 노동’의 모습이다.

박 노무사는 “전자제품, 조선소, 제철, 건설업을 막론하고 다단계 하청은 내려갈수록 중간에서 비용이 다 떼여 인건비와 작은 콩고물만 가장 아래의 사람들이 먹어가는 구조”라며 “(회사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영세파견업체에서 사람을 부른다. 고정직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공장의 매뉴얼도 없는 형편이고, 안전은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쉽게 예산이 깎인다”고 설명했다.

다단계 하청 구조가 직업안전의 사각지대를 넓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회사들도 배기장치 설치, 보호장치 지급,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건강진단 실시, 안전교육 실시 등을 안전 비용으로 여기고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에탄올, 이소프로필알콜 등 메탄올보다 위험성이 덜한 대체물질이 존재함에도 해당 업체들은 메탄올을 택했다. 메탄올은 에탄올보다 값이 3배 저렴해 셋 중 가장 값이 싼 물질이다.

▲ 노동건강연대 카드뉴스 중. 사진=노동건강연대 제공

다단계 하청업체를 중심으로 만연해지고 있는 불법파견 근로자에 대해서도 박 노무사는 “고정 직원도 아닌데 (회사가) 많은 관심을 쏟을 리는 없고, 파견노동자는 금방 잘리거나 그만둘 수 있어 어느 사업장에서 몇 일, 어느 사업장에서 몇 개월 등으로 일하며 언제 어디서 직업병을 얻었는지도 증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가장 아래의 파견노동자는 유령과 같다. 회사든 정부든 관리 자체가 되지 않는 현실”이라며 “당장 파견업체에 전화해 성별, 나이, 건강 여부만 말하면 바로 다음 날부터 일할 수 있고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 사안은 이처럼 변화해가는 노동시장구조에서 언제든 이런 산업재해가 다시 반복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지난 2013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안산·시흥지역 공단의 파견노동 실태를 조사해 약 200개 파견업체 소속으로 2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전국 기준으로는 약 2천 개소, 파견노동자는 12만 명을 넘어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박 노무사는 “현재까지도 파견 노동 수는 증가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는 이들의 근로조건이나 직업안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대 청년노동자 전자제품 제조업 진입 활발, 또 다른 산재 우려

다단계 하청 불법파견 문제를 꾸준히 관찰해 온 노동현장의 활동가들은 20~30대 구직자들이 파견업체를 통해 주로 안산, 성남 등지의 전자제품 제조업으로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 노무사 또한 “요새 파견업체에 20대로 등록하면 바로 열에 아홉은 PCB,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 등 전자제품 산업으로 간다”며 ““이번 피해자들도 모두 20대였다”고 지적했다. 즉 다단계 하청이나 불법으로 파견된 20대 노동자들이 직업안전 사각지대의 위험에 놓이고 있다는 뜻이다.

박 노무사는 “메탄올 급성중독이 발생할 것이라 누가 예측했겠느냐. 전자산업엔 이같이 제대로 관리되거나 파악되지 않은 화학물질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어디서 어떤 제품을 쓰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성남 공단의 한 휴대전화 제조업에서 일하는 20대 청년 노동자가 ‘본드를 어마어마하게 사용하는데 이 본드가 뭔지도 모르고 무슨 약품으로 조합돼있는지 모른 채 쓴다. 마스크나 다른 보호 장비도 없다’는 말을 했다”면서 “젊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위험에 노출되고 있지만,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잠재적 피해 고려하면 피해 규모 가늠하기 힘들어

이번 사건의 경우 은폐된 피해자나 잠재적 피해자에 대한 문제도 있다. 노동자가 재해를 당해도 직업병인지 인식을 못하기 때문에 산업재해 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나 신체가 손상됐으나 아직 증상이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피해노동자가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 노무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은폐될 수 있었던 산재”라고 언급했다. 산업재해 사실이 최초로 인지된 피해노동자 ㄱ씨의 경우도 담당 의사 덕분에 우연히 발견됐다. 직업환경의학의였던 담당 의사는 응급실에서 ㄱ씨를 진찰하던 중 시력 손실이 직업병임을 의심하고 곧장 직업환경의학과에 협진요청을 해 메탄올 급성중독 증세임을 밝혀냈다. 이 덕분에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이 시작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 3명이 더 있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해당 회사 내에 잠재적인 추가 피해자나 산재 사실을 모르고 피해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22일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을 인지하고 25일부터 작업공정이 유사한 회사 8곳에 대한 감독을 진행했고 이 중 특별히 건강진단이 필요한 5곳에 대해 임시건강진단을 실시했다. 오는 3월까지 전국 메탄올 취급 사업장 3100곳에 대해서도 긴급점검을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김정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서기관은 1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아직 건강진단이나 문제 회사의 작업환경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추가 피해자, 과거 피해자 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자신의 부품이 어떻게 만들어져 오든 상관이 없다는 건가”

박 노무사는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감독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것으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산업안전보건 담당 근로감독관은 300명이고 이들이 담당해야 할 사업장의 수는 이백십만 개가 넘는다. 1명이 7200여 개의 사업장을 담당해야 하는 수치다. 박 노무사는 “감독관을 확충하고 제도를 정비한다고 해도 다단계 하도급 불법파견이 해결되지 않는 한 사각지대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원청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변화의지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선진국의 경우 한국처럼 다단계 하청이 보편적이지 않다. 고용하는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한국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외주화시키는 일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삼성이 자신의 휴대전화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물건을 어떻게 만들어도 상관없다는 거다. 훔친 부품이라도 그대로 쓴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전 현대 제철에서 아르곤 가스 사고로 하청노동자 5명이 사망한 적이 있다. 노동부가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니 최대주주가 헬기를 타고 곧장 현대 제철에 갔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할 때 안전을 가장 많이 깎아내리는데 기업의 이윤을 통제하면 안전관리를 할 수 있다”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직업안전 사각지대를 줄이게끔 해야 하고 그 정점에 대기업 원청이 있다”고 강조했다.

*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02-469-3976)는 파견알바, 전자제품 제조 하청 노동자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